A Study on the Spatiality of Ikuno Ward and the Memory of the Zainichi Korean Diaspora as Represented in Pachinko
* 국립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Pukyong National University, darkjedi73@naver.com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26.45.2.55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Osaka’s Ikuno Ward as represented in the Apple TV+ original series Pachinko, focusing on the ways in which this space organizes the memory and identity of the Zainichi Korean diaspora and on the meanings produced through this process. While previous studies on Pachinko have largely focused on character-centered narratives, intergenerational conflict, or representations of identity, this study takes Ikuno Ward as its object of analysis from the perspective that space constitutes a core condition through which narrative is structured. To this end, the study first examines the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of Ikuno Ward within the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of labor migr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structural exclusion in postwar Japanese society, and then analyzes the patterns through which Ikuno Ward is spatially represented in Pachinko. The analysis shows that Ikuno Ward in the series does not function merely as a background setting but operates as an “internal colony” in which the colonial experience and postwar exclusion of modern Japanese history have become fixed within the urban interior, thereby functioning as a structural condition that constrains the lives, choices, and identity formation of the characters. In addition, this space is represented as a site of memory in which poverty, labor, and communal solidarity and tension are multilayeredly accumulated, and it is presented as a field in which diasporic memory is continuously renewed through the repetition of everyday life and practices of survival. Through this analysis, this study seeks to reposition Pachinko beyond a narrative of a Zainichi Korean family, framing it instead as a text that spatially reflects on the structural contradictions of postcolonial Japanese society, and to contribute to expanding the importance of spatial analysis within diaspora studies.
Ⅰ. 서론: <파친코>를 다시 읽기 위한 문제 제기
드라마 <파친코>(Apple TV+ original series, 2022~)는 재일 한인 가족사를 다룬 작품으로 널리 이해되어 왔다.1)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전후 일본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을 다루면서, 재일 한인의 이주・정착・차별・저항・변모・수모・생존・공존이라는 민족적 경험과 고통의 역사를 가족 서사 형식으로 풀어내었다. 그런데 <파친코>의 서사적 추동력은 단지 인물의 감정이나 세대 간 갈등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또한 이 작품은 역사적 폭력의 의미와 사회적 배제 시선을 다룰 뿐만 아니라, 재일 한인이 살아가는 특수 형태의 공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접근하고 있다. 거대 서사를 다루면서도 삶의 기저 공간으로서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기지 않은 것인데, 이로 인해 주요 배경 중 하나이고 이주 초창기 삶의 기반이었던 이쿠노구(生野区)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하겠다.
<파친코>에서 일본 오사카의 이쿠노구[과거 명칭 이카이노(猪飼野)]는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핵심적 공간이다.2) 이쿠노구는 단순한 배경이나 특정 장면의 임시 무대 혹은 가공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재일 한인들이 도착하고, 머물며, 떠나려 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장소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파친코>에 대한 적지 않은 논의에서 이쿠노구는 관련 인물의 주거나 기거가 ‘전개되는 곳’ 정도로 간략하게 처리되어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지역은 극단적 빈민촌의 이미지로 설명되거나3) 새로운 활로 모색을 위한 진출지로 묘사되었으며,4) 극단적 경우에는 이카이노는 빈민촌이 아니기 때문에 자이치니(공간)로 간주할 수 없다는 입장까지 개진된 바 있다.5) 따라서 이쿠노구가 작품의 전체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이유와 이 공간이 서사의 구조와 의미를 조직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 할 것이다.6)
이러한 문제의식은 해외에서 산출된 관련 연구를 참조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드라마 <파친코>(Apple TV+)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자이니치 스크린 내러티브’를 세계적 관점에서 읽어 내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우선, S. T. Ogawa는 <파친코>를 ‘자이니치 시네마’라는 담론적 구성물의 연장선에서 검토하면서, 글로벌 플랫폼이 자이니치 서사를 어떤 방식으로 유통・재구성하는지(약속과 한계)를 분석했다.7) 이러한 시각은 매체적・산업적 관점을 제공하지만, 역시 특정 공간(이쿠노구)이 드라마의 시각적・정동적 체계를 조직하는 방식—공간이 서사를 직조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데에는 한계를 노출하고 만다.
최근 비교적 선명하게 ‘공간’ 자체를 전면화한 경우는, 재일 한인 관련 연구 기반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Julia Clark은 텔레비전 드라마 <파친코>가 에피소드마다 ‘연도-장소’ 자막을 전면 배치하여 이동・횡단・장소 전이를 매우 의식적으로 연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이카이노(=이쿠노구)’가 담보하는 서사적 기능을 공간의 문제로 읽어 내려 한 바 있다.8) 게다가 Clark은 ‘자이니치’라는 범주의 번역과 호명 문제를 다루면서, 텍스트가 재일 한인의 경험과 시각을 어떤 언어로 표상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한 바 있다. 이 두 접근 사례는 <파친코> 분석을 ‘정체성’에서 ‘공간-호명-표상’으로 이동시키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시하지만, 형식상 학술논문이라기보다 비평(에세이) 성격이 강하고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논의가 부가될 필요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쿠노구 자체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연구를 추가로 시행해야 하는 이유를 부각하고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즉, <파친코>를 단순히 ‘재일 한인에 관한 이야기’나 ‘디아스포라 가족 서사’로 읽는 대신, 이 작품이 특정 공간―이카이노에서 이쿠노구로 변전―을 통해 식민지 이후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사유하는가를 묻고자 한다. 이때 이쿠노구는 개별 인물의 단순한 거처로서의 배경이 아니라, 일본 근현대사의 식민지 경험과 전후 배제가 도시 내부에 스며들고 재일 한인과 일본인의 상호작용이 작용하는 공간으로 상정되고 분석될 필요가 대두된다.
그래서 <파친코>의 장면으로 포착되는 좁은 골목, 밀집된 주거 공간, 반복되는 노동의 동선, 이동의 단절과 같은 공간적・생활적 조건이 전면화되기 일쑤였고, 이러한 조건이 관련 인물의 삶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선호되곤 했다. 이러한 제시 방식은 드라마 <파친코>가 역사를 사건의 연쇄로 제시하기보다, 공간 속에 누적된 조건으로 제시하는 서사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물이나 정체성의 차원에 앞서, 그들이 놓여 있는 공간의 구조를 분석하는 접근이 요청된다.
이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쿠노구를 세 가지 층위에서 검토한다. 일단, 이쿠노구를 일본의 식민지 경험이 전후에도 해소되지 않은 채 도시 내부에 남아 있는 ‘내부 식민지’로 파악한다.9) 다음으로, <파친코>가 이 공간을 시각적・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분석하여, 이쿠노구가 식민지적 위계와 전후 사회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식민지 축도’로 기능한다는 상징성을 고려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공간적 조건하에서 이쿠노구를 중심으로 재일 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세대에 따라 어떻게 분절되며 궁극적으로 어떠한 기억의 형태로 전환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며, 나아가 토착 거주자 혹은 주류 민족과의 교류를 전제하는 디아스포라 공간으로서의 특징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이쿠노구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이쿠노구(生野区)는 일본 오사카시 동부에 위치한 지역(행정구역)으로, 해방 이후 일본 최대 규모의 재일 한인 거주지로 인정되고 있다. 2003년 일본 오사카 인구의 10%가 외국인으로 그 수는 122,063명에 달하는데, 그중 재일 한인(조선적 포함)이 91,450명으로 전체 75%에 해당하며, 그중 1/4이 이쿠노구에 거주했다.10) 2021년 3월 오사카에 거주하는 한국・조선 국적자는 142,995명으로 이쿠노구에는 16.1%인 20,397명이 거주하고 있다.11) 그러니 이쿠노구는 오사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재일 한인의 최대 집거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지역의 형성은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본격화된 조선인 노동 이주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12) 일제 강점기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사카는 중공업과 경공업이 집중된 핵심 공업 도시로 변모하였고, 이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의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으로 유입되었다.13)
이쿠노구 일대는 본래 ‘이카이노(猪飼野)’라 불리던 지역으로, 공장 지대와 인접한 저렴한 주거 공간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인 노동자들이 밀집 거주하게 되었다. ‘이카이노’는 근대 이전부터 사용된 지명으로, 제국 일본에서 조선인 노동자 유입 이후 조선인 밀집 지역을 지칭하는 생활사적 명칭으로 정착하였다. 이 명칭은 공식 행정구 이전의 사회적 인식과 차별 담론 속에서 널리 사용되었다.14)
1920~30년대에 이르러 이 지역에는 조선인 상점과 시장이 등장하였고, 이는 훗날 ‘조선시장’으로 불리며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15) 이러한 공간 형성은 계획된 이주 정책의 결과라기보다, 일제 강점 시점에서 노동(인력) 이동과 도시 하층 공간의 접합 속에서 발생한 비공식적・자생적・하층 계급적 이주・정착 과정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 연구에서 대상으로 설정한 공간(구역)인 이쿠노구(生野区)와 ‘이카이노(猪飼野)’는 지리적으로 동일 장소를 가리키지만, 서로 다른 역사적・담론적・사회적 층위를 지닌 명칭이다. 현재의 이쿠노구는 오사카시 구제 개편 이후 확립된 공식 행정구역명으로, 일제 강점기와 그 전후 시기에 형성된 조선인 집거지를 일본 국가의 행정 질서 속에 편입시킨 결과물이다. 오사카시는 전시 행정 개편 과정에서 기존 지역을 통합하여 생노구(生野区)를 공식 행정구로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집거지는 일본의 도시 행정 체계 안에 편입되었다.16)
반면 이카이노는 행정 이전의 생활사적 지명으로서,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자의 유입과 정착, 차별과 빈곤의 경험이 축적된 공간을 지시하는 명칭이다. 전후 일본에서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하고 외국인으로 재분류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기존 집거지는 행정적으로 관리되는 도시 하위 공간으로 고정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해당 구역에 대한 명칭 전환은 식민지 경험의 해소가 아니라, 제도적 관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카이노라는 명칭은 1973년까지 공식 지명 속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해체되어 과거의 역사와 구역의 출발을 알리는 상징적 이정표로 남아 있다.
이카이노는 1973년 나카가와(中川), 타지마(田島), 히가시나리(東成) 등의 이름으로 편입되면서 이카이노라는 지명은 사라졌다. 사라진 이유로서는 남북 2400미터, 동서 800미터로 펼쳐지는 이카이노 지역이 메이지시대부터 쇼와시대에 걸쳐 신히라노가와(新平野川), 킨테츠(近鉄)와 각 도로로 가로, 세로로 구역 지어져, 그와 함께 하천, 철도, 도로를 경계로 하는 새로운 주소 표시가 필요했다는 일설과 지역민들이 이카이노라고 하면 재일코리안을 연상하게 되어 지가(地價)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 지명을 바꾸자 하는 의견이 있었다는 일설로, 두 가지 이유가 언급되고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고 있지 않다.17)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지역 명칭이 가리키는 공간의 물리적 범위는 연속적이지만, 각각의 명칭이 호명하는 의미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카이노는 노동 동원과 도시 주변부로의 배치가 아직 행정적으로 중성화되기 이전의 기억을 내포하고 있는 지역 명칭이며, 이후 재일 한인의 표상으로 상정되었다. 반면, 이쿠노구는 그러한 기억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통계화하는 전후 국가의 시선을 반영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쿠노구로의 명칭 전환은 단순한 공간의 성격 변화라기보다, 식민지 경험이 도시 내부에서 관리 가능한 사회적 문제로 재배치된 과정을 보여주는 문제적 지점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분은 <파친코>가 왜 현재의 행정 명칭이 아닌 ‘이카이노’를 서사적으로 호출했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작품은 국가가 부여한 공식 명칭이 아니라, 식민지적 삶의 경험이 축적된 생활사적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이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식민지 경험이 일상 속에 잔존하는 장소로 재정위한다.18) 이처럼 이 연구는 이쿠노구/이카이노라는 이중적 명명 구조를 전제로 삼아, 이후 이 지역이 일본 사회의 내부 식민지로 형성・유지되어 온 과정과, <파친코>에서 내부 식민지가 재현된 양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Ⅲ. <파친코>에 재현된 이쿠노구의 공간적 양상과 위상
1. 도착과 정착의 지점: 경계와 혼란으로서 중간 위치
<파친코>에서 이쿠노구는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들―특히 선자―이 최초 정착한 지역 중 하나였고, 이후의 삶(생계)이 고착되는 출발점으로 제시된 대표적 공간이었다. 선자의 진입 시점은 이쿠노구가 소속된 오사카시 전체가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하는 시점과 맞물리고 있다. 오사카에 도착해서 숙소(형의 집)로 향하는 선자의 눈에 들어온 오사카의 풍경은 지하철 건설 현장이었고,19)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대부분은 조선인(재일 한인)이었다.21)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6:25
이러한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거주하는 환경은 결국 조선과 일본, 빈자와 부자, 약자와 강자가 만나는 접점으로서 오사카/이쿠노구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넓은 의미에서 새로운 이주자와 기존 거주자의 경계 지대로 요약될 수 있는데,22) 이러한 경계 지대에 선자와 이삭이 낯선 이주자로 틈입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넌지시 시사한다고 하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소리 죽여 대화하는 정경은 결국 선자를 비롯한 조선인의 운명이 경계인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23)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8:17
선자와 그의 남편(이삭 백)이 도착한 이쿠노구(이카이노)라는 공간은 ‘새로운 가능성의 장소’라기보다는, 일본 사회 내부로 진입했으나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상태를 상징하는 ‘경계적 공간’에 가까웠다. <파친코>에서 이쿠노구는 일본 도시의 중심부가 아닌 도시 외곽에 위치한 주거 공간으로 설정되면서 그곳에서 거주하는 인물들의 사회적 위치를 공간적으로 암시하는 기능을 겸한다. 특히 선자와 이삭이 이쿠노구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강조되는 것은 환대나 기대가 아니라, 냉대와 불안이었다.
이때 관련 화면은 의도적으로 복잡한 골목, 낮은 건물, 빽빽한 주거 밀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일본 사회로의 이동이 곧바로 안정이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서사적 전략이었다. 이쿠노구는 이처럼 반강제로 시행된 이동의 종착점이자 또 다른 정체 상태의 출발점으로 재현되며, 인물들의 삶이 본격적으로 ‘정체되는 공간’이라는 성격을 부여받는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15:57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17:35
이주/거주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에는 이삭의 가족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냉대도 포함된다. 이삭의 형 요셉은 선자와 결혼에 대한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 선자에 대한 불만과 이질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얇은 벽(면)으로 인해 주위의 소음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쿠노구의 집은 이러한 심정적 박대를 그대로 전달하는 장소가 된다.
다른 남자의 자식(아이)을 잉태하고 도망치듯 조선을 떠나야 했던 선자에게 새롭게 도착한 곳은 정착의 공간이 되어야 했지만, 그곳에서도 제대로 환대받지 못하고 여전히 무시당하는 불안과 외로움을 모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과 외로움은 선자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먼저 정착했던 조선인에게도 동일하게 이해되는 정동이었다.
이러한 공간 설정은 재일 한인의 역사적 조건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으로의 이동은 국경을 넘는 탈출이나 선택이었지만, 그 도착지는 새로운 중심이 아니라 또 하나의 주변(부)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 주변부에서 숨죽이며 민족적/사회적/구조적/정서적 냉대를 견뎌내야 했고, 기존 거주자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의심과 맞서야 했다. <파친코>는 선자의 일본(오사카) 이주 장면에서, 선자가 받는 냉대를 통해 이러한 당시 상황과 문제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으며, 박해자를 일본인이 아닌 가족으로 설정하여 재일 한인이 겪어야 했던 심정적 고독과 불편 그리고 불안과 위협을 더욱 농도 짙게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파친코>는 이쿠노구의 상황과 변화 그리고 해당 공간의 성격과 도착 과정을 통해, 이주가 곧바로 해방이나 재탄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2. 생존의 물질적 기반: 가난과 일상의 시각적 공간감
드라마 <파친코> 속 이쿠노구는 전체적으로 낡고 좁고 불결한 주거 환경, 얇은 판자로 대충 막힌 벽면, 낮은 천장의 어두운 실내,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고 역한 냄새가 나는 골목, 오물이 널리 길거리, 불쾌한 소음과 붐비는 인파 등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쿠노구 거주자들도 인상을 찌푸리며 불평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처음 발을 들인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파친코>가 보여주는 도시 풍경, 즉 불결하고 불편한 시각적 요소들은 드라마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미장센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환경을 옮겨온 이러한 주변 환경은 해당 인물들이 처해 있던 정치적・민족적・경제적・사회적・구조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장치에 해당한다.
이쿠노구 길거리에는 돼지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이카이노라는 옛 이름 속에는 이러한 풍경의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그곳 거주자들은 돼지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며, 이로 인해 외부인들 ― 특히 일본인들 ― 에게 조선인들의 삶은 돼지와 같은 삶으로 오인될 수밖에 없다. <파친코>에서는 오사카에 막 도착한 이방인으로서 선자와 그의 남편 이삭이 이러한 풍경을 신입 거주자의 눈으로 포착하도록 유도하여, 재일 한인들이 오사카에서 경험해야 했던 남루한 삶의 공간과 신산한 생의 비애를 대리 체감하도록 종용했다. 동시에 이러한 공간과 정조의 체감은 해당 시대의 재현과도 깊숙하게 맞물려 있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9:19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9:15
이쿠노구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돼지는 요긴한 오브제이자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카이노를 은연중에 상징하는 돼지는 일본에서 소・돼지의 내장 부위를 구워 먹는 요리인 호르몬(호르몬야키, ホルモン焼き)과 문화적 관련성을 상정할 수 있다. 일본 ‘야키니쿠(焼き肉)’ 식당의 주메뉴 중 하나인 ‘호르몬’은 주류 일본인들이 먹지 않고 버린 내장류를 말하는데, 이 말이 원래 간사이 지방에서 상용되는 ‘버린다(ほる)’에서 온 ‘쓰레기’를 어원으로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24)
이 호르몬은 본래 일본의 음식 문화 풍토에서 선호하지 않거나 저가의 음식으로 취급되었지만, 전쟁 후 형성된 암시장에서 재일 한인의 음식 습관과 결합되면서 점차 일본의 대중적인 음식, 즉 구이 음식으로 변모하였다. 버려지던 부위가 궁극적으로 쓸모를 담보하며 점차 일본 사회 내부로 침투하는 현상을 스스로 증명하는 음식이 된 셈이다.
따라서 이카이노의 상징으로서 ‘돼지’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잉여적인 존재로 취급받으며 가난과 고난 속에 차별받는 소외자(가난한 노동자 계층)의 처지와 기본적으로 상동하며, 결과적으로 억압과 탄압 속에 어렵게 정착해 나가는 재일 한인의 생존과 고통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재일 한인의 정체성(주변성)에 대한 암시로 기능할 수 있다.25)
주거 밖 공간이 돼지로 요약되는 차별과 소외를 보여준다면, 주거 내 공간 역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방 하나에 여러 식구가 생활하는 구조와 사생활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환경은, 재일 한인 가족이 겪는 빈곤의 일상성을 강조한다. <파친코>>에서 이쿠노구는 극단적 빈곤이나 폭력의 공간으로 과장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궁핍과 불안정이 누적되는 장소로 그려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묘사 방식은 일본으로의 이주/거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적 역사’나 ‘비극적 사건’보다, ‘지속적 궁핍’ 혹은 ‘열악한 대우’에 주목하고자 하는 <파친코>의 서사 전략에도 부합한다.
앞에서 언급한 선자에 대한 냉대와 이에 대한 선자의 대처 방식 역시, 이쿠노구에서의 생존/생활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삭의 형 요셉이 파생시킨 금전적인 문제(빚)는, 한 집안에서 경제적 공동체로 살아가는 두 여인(선자와 경희)에게 외면할 수 없는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빚으로 인해 두 여인은 고통을 받아야 했으며, 빚 독촉으로 가해지는 외부 압력(폭력)에 공포를 느껴야 했다. 결국 물리적・경제적 독자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을 넘어서자, 해당 고통과 공포는 경제적・심리적・가족적 연대를 이루기 시작한 선자・경희 가족에게 일종의 집단 채무의 형태로 환급되었다. 이때 그들의 허약한 경제 구조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극복하는 선택은 그들 가족의 열악한 물질적 기반을 지키는 공동의 책무가 되면서 선자는 냉대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훗날 김치 장사를 시작해야 했을 때도, 선자는 경제적 공동체로서 자신의 입지를 활용했고, 결국 이쿠노구에서 장사와 연대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은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고 열악한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이쿠노구는 분명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 안에서 경제적 결속과 공동체 책무를 이루는 공간적 추동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이쿠노구의 물리적 환경은 해당 거주자들의 선택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는다. 이쿠노구 거주자들은 안정적인 직업으로의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고, 공장 노동이나 김치 장사와 같은 직종에 종사해야 했다. 결국 파친코 산업과 같은 주변부 경제가 주요 생계 수단으로 연계되는 구조 역시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라고 해야 한다. 이쿠노구 공간은 인물들에게 폭넓은 선택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직업/진로/미래 선택의 폭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환경으로 작동한다. 그러면서 그곳에서의 가난이 개인의 무능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회적・환경적・구조적・민족적 조건의 산물이자 전제라는 사실까지 암시하는 기능까지 겸한다고 하겠다.
3. 공동체의 연대 공간: 상점 거리와 관계의 네트워크
전쟁의 위험과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파친코>의 이쿠노구는 개인적 주거 공간을 넘어 집단적 관계를 맺는 상업 거리와 경제적 활동을 담당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이 공간은 거주와 경제 기반을 넘어, 재일 한인 공동체의 정보 교환과 상호 감시, 연대 형성과 갈등 발생의 공간으로 그 진면목을 노출하기 시작한다. <파친코>는 선자의 집 밖으로 진출, 그러니까 김치 장사를 통해 거리의 상인으로의 진출과 동시에 이러한 이쿠노구의 다른 면모를 점진적으로 개진한다.
시장과 거리에서 형성되는 만남과 그 반복은 각각의 인물들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도록 하였고, 친밀한 관계의 형성은 점차 상호 관계의 돈독한 증진을 이루도록 유도하였다. 또한 만남과 교류, 친분 형성과 관계 개선을 통해 비록 이쿠노구가 일본 사회에서 주변화된 공간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촘촘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음을 증언한다.26) 다만 드라마 <파친코>는 이러한 공간을 이상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공동체의 연대 못지않게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위계 역시 함께 드러내는 특징을 고수한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8, 50:50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8, 57:38
이러한 이쿠노구의 묘사에서 주목할 점은, 이 상업 지대로서 이쿠노구가 재일 한인 사회가 겨냥하는 일본 사회와의 접촉면이자 동시에 완충 지대라는 점이다. 한국 음식과 언어 그리고 생활 방식이 유지되고 있는 이 공간은 일본의 주류 질서로부터 일정 부분 분리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단절된 자율 공간은 아니었다. 재일 한인들은 주류 사회의 배제에도 이쿠노구에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하여 이 상업 거리를 자신들이 조직하는 공간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거리와 지역을 상호 간에 묶어주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상호 교류의 중요한 사례로. 이쿠노구에서 한수가 아들 노아를 기다리고 노아에게 자신의 삶을 철학(인생관)을 전수하는 사건을 거론할 수 있다. 또한 가계의 위기를 접한 선자는 생계를 위해 생김치를 담그고 그 생김치를 내다 팔아 아들(들)과 가정을 건사하려고 하는 사건 역시 언급할 수 있다. 가족을 돌보고(한수에게 노아, 선자에게 두 아들), 생계(한수에게 선자 일가, 선자에게 가족)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 자신들의 환경을 살피고 이웃과 고객과 타인을 염두에 둔 생활 패턴을 구축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쿠노구 내의 사람들과 공존 공생해야 하며, 자신의 가족과 생계를 공유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라는 의식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각각의 인물(들)의 의도와 시도는 이쿠노구가 생성해낸 기묘한 환경과 그 환경을 구축해낸 특수한 원칙에 대해 알려준다. 이쿠노구는 조선인들의 집거지이자 일본 사회에서 유리된 주변부로서 강자인 지배자 일본이 약자인 피지배자 조선인을 위하여 그 존재를 허락한 내부 식민지였지만, 동시에 그곳에도 분명 일본인들이 존재했고 두 민족 사이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 연관성이 강하게 연계되고 있었다. 집거지 내 거주자들은 기본적으로 가족과 이웃으로 위치하지만, 때로는 고객과 경쟁자로 서로를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내부 원칙을 피할 수 없었다.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고, 포용과 배척이 공존하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가 혼용되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각종 라이프 스타일과 고유의 가치관이 뒤섞이기 때문에, 이쿠노구는 일종의 문화적 혼거(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파친코>에서 보여주는 음식은 그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파친코>에서 한국(조선) 음식은 처음부터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가령 조선의 김치나 쌀밥이 그것이다. 영도에서는 조선인의 밥상이 화면에서 종종 부각되고, 부산이라는 도시에 어울리는 생선(수산물)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선자가 이주한 오사카 이쿠노구에서도 조선 음식의 상징성과 역할을 감소하지 않는다. 도일한 선자가 이쿠노구에 있는 요셉과 경희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에게 눈물을 자아낸 음식은 쌀밥이었다. 한국 쌀로 소담하게 갓 지은 밥은, 가난하지만 분명 공동의 삶을 기획하고 있던 경희의 마음이 담겨 있는 정성이었다. 그리고 이 정성은 결국 영도를 떠나기 전 선자의 모친이 지어준 쌀밥의 기억을 소환하고, 쌀밥에 그려내는 그리움과 타향이 던져주는 이질감이 교묘하게 겹쳐 투영된 눈물(슬픔)로 응결된다.
조선(한국) 식의 등장은 외부인으로 내부 정착 과정을 앞둔 선자에게 위안을 주는 동시에 심정적 동요도 자아낸다. 쌀밥과 국을 보며 눈물짓는 선자의 모습은,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새로운 거처와 막막한 생계 그리고 불안한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재일 한인의 슬픔과 서글픔을 대변한다. 그것은 조선의 음식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는 일종의 내적 전언과 다르지 않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10:43~10:50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4, 15:21~17:05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8, 46:37
한편 조선 음식의 역할은 개인적 감회나 과거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쌀밥과 함께 한국(조선)을 대표하는 김치는, 일본이라는 거주지에서 재일 한인이 어떻게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어떻게 상호 연대를 형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위상을 견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 된다. 나아가서 경제적으로는 이카이노의 암시장과 조선 시장이 일본에서 특별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일본 근현대사의 구조적 모순과 재일 한인의 연대가 어우러져 응축된 기억의 장소로서 이쿠노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김치인 셈이다.
김치 장사의 과정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파친코>에서 선자는 위태로운 가세를 만회하고 막막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김치 장사를 시작하였다. 경희도 이에 가세하여 남편의 반대에도 이 장사에 협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와는 별개로 그녀들에게 점포가 없었고, 장사의 정당한 권리도 없었다. 심지어 네트워크가 없는 그녀들에게 시장에서의 자리 하나 얻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선자와 경희의 김치 장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제도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상태에서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관계망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비공식 경제 활동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일본 사회가 허용한 합법적 상업 질서 바깥에서, 그러나 공동체 내부의 묵시적 규칙과 관행에 따라 장사를 지속한다(심지어 김치 장사는 가족 내부의 의사를 어기면서 시작된다). 김치가 거래되는 공간은 따라서 상품 교환의 장소이자, 정보가 오가고 소문이 형성되며 상호 감시와 연대가 동시에 작동하는 사회적 장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장의 형성과 변모를 통해 이쿠노구의 상업 공간이 단순한 빈곤의 결과물이 아니라, 배제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자기 조직적 생존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시즌 2, 에피소드 9, 8:06
정리하면, 김치 장사는 재일 한인 여성의 노동이 공동체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가정 내 재생산 노동으로 간주되던 요리(음식 만들기)는, 노점이라는 공적・상업적 공간으로 이동하여, 가족의 생계와 공동체의 지속을 떠받치는 실질적 경제 활동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선자와 경희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위험을 극복하며 대외 네트워크와 상업 공간을 점유하는 주체로 변모하고, 이쿠노구는 여성의 노동을 통해 재일 한인 공동체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장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드라마 <파친코>는 이러한 공동체적 실천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노점 장사는 언제든 단속과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 내부에서도 위계와 긴장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치를 팔 수 있는 위치 선정 권리와 단골 확보 권한 그리고 생계 수단의 지속 가능성은 결코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쿠노구의 상업 공간은 연대의 장소이자 동시에 취약성과 불안정성이 상존하는 공간이다.
결국 선자의 김치 장사는 이쿠노구가 일본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 공간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촘촘한 사회적 관계와 기억이 축적된 장소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치는 개인의 생존을 위한 상품이자 공동체를 묶는 정서적 매개이며, 식민지 경험과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응축된 표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쿠노구는 공식적으로 기념되지 않지만, 반복되는 노동과 일상의 실천을 통해 기억이 지속적으로 호출되는 생활사적 기억의 장소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기억의 장소로서 이쿠노구는 <파친코>가 이쿠노구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재일 한인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 그리고 그 내부의 균열까지를 동시에 사유하게 만드는 핵심 공간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4. 식민 지배 축도로서 이쿠노구의 의미와 상징적 위상
<파친코>에 재현된 이쿠노구는 단순한 생활 배경이나 특정 민족 집거지를 넘어, 식민지적 위계와 전후 사회구조가 응축된 공간, 다시 말해 식민지 축도로 기능한다. 이쿠노구는 식민지 경험의 기원과 그 결과, 그리고 그것이 전후 일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일상화・고착되었는지를 한정된 도시 공간 안에 집약하여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축도’란, 거대한 역사 구조가 축소 집약된 형태로 재현되는 구조를 뜻하며, 그 구조가 인물의 삶과 감각 속에 체화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전술한 대로 <파친코>는 이쿠노구를 일본 도시의 내부에 위치시키면서도, 중심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공간으로 제시한다. 이 공간은 도착의 종착지이자 이동의 단절점이면서 동시에 지속적인 가난과 불안정한 생존 조건이 반복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공동체 내부의 연대와 위계가 교차하는 상업・사회적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성향과 다층적 양상은 이쿠노구가 획일적 의미로 설명되는 장소가 아니라, 제국과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 신규 유입과 배척 논리가 다층적으로 작동하는 축소된 장임을 증거한다고 하겠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5:34
본래 내부 식민지 이론은 제국의 식민지가 반드시 해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내부에도 상존할 수 있다는 시각을 견지하는 이론이다. 한 국가 내에도 중심부와 주변부가 분리되면서 인종・민족・지역・계층・경제・신분의 차이(차별)가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로 인해 지배 민족이 중심 지역과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반면 하위 계층이 주변 지역에 위치하며 주변 지역과 노동 집단에 소속되는 분할 구도가 조성된다. 이쿠노구는 오사카라는 일본의 첨단 대도시에서 하위 계층으로서 조선 민족이 집거하며 사회적・정치적・문화적・언어적 소수자이자 약자의 공간으로 구획된다. 이러한 이쿠노구는 지배 대 피지배, 일본인 대 조선인, 부자(부유함) 대 빈자(가난함), 일본어 대 한국어, 청결 대 불결, 서구 대 지역, 중심(부) 대 주변(부)의 이항 대립을 가시화화고 있다. 따라서 하위 항목에 위치하는 특징은 식민지 조선의 특성이자 주변성으로 노출되는 효과를 거두며, 오사카 대 이쿠노구가 보이는 이러한 이항 대립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축자적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5, 8:15
다만 <파친코>는 이 식민지 축도를 거시적 설명이나 직접적 해설을 통해 제시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쿠노구의 역사적 배경을 직설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대신 공간의 질감과 반복적 일상을 통해 식민지 구조의 질서와 억압적 체계를 스스로 체감하도록 유도한다. 좁은 골목, 밀집된 주거, 불결한 환경, 불안한 심리, 단속의 압박, 내부자의 동요, 외부자의 이질감를 이식하여 그 안에서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기본 정동을 그려낸다. 이후 이러한 불안정성은 주변부 산업으로서 파친코, 세대가 바뀌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생활 반경과 여전한 차별 등으로 이어진다. 식민 지배의 결과가 전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생활 세계 속에 침전되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자 이쿠노구는 식민지의 ‘과거’를 보여주기보다, 압제라는 ‘현재’의 조건으로 지속되는 방식을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쿠노구는 피해의 장소나 비극의 무대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파친코>는 이 공간을 극단적 폭력이나 예외적 사건의 현장으로 과잉 재현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상화된 주변부로 제시하여 낯선 이주와 새로운 출발의 기점으로 삼고자 했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식민지 지배 구조가 전쟁이나 제국주의 시기에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전후(일본) 사회에서도 일상적 규칙으로 재편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쿠노구의 ‘평범함’은 곧 식민지적 위계와 차별이 사회의 정상 시스템으로 흡수되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징표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파친코>에서 이쿠노구가 구현하는 공간적 위상은, 이 공간이 일본 사회의 외부에 위치한 타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일본 근현대사의 핵심 구조가 모순적으로 응축되어 여전히 현재화된 형태로 재현되는 명백한 내부 공간이라는 진실에서 찾아야 한다. 이쿠노구는 식민지 지배, 전후 배제, 경제적 주변화가 분리된 국면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연속된 구조로 혼재하며 작동하는 사실을 증명하는 장소가 된다. <파친코>는 이 공간을 재현하여 식민 지배가 비단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며, 제국의 시간이 작금에도 현존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정리하면 <파친코>에 재현된 이쿠노구는 내부 식민지의 총체(성)를 축소하여 재현한 공간으로, 그 안에서 생존해야 했던 인물의 감정과 선택 그리고 그들의 삶을 기술하는 서사의 방향을 규정하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래서 이쿠노구는 식민지 경험을 단순 재현하는 폭로성 배경에 머물지 않았으며, 식민지 조건이 일상과 생계의 영역에 투영된 양상을 증언하는 서사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묘사와 재현을 통해 <파친코>는 식민지의 상황을 역사적 사건이나 과거 정황이 아닌 지속되는 공간 질서로 재개념화할 수 있었다.
Ⅳ. 디아스포라 공간으로서 이쿠노구의 양면성과 지속성
1. 귀환의 신화와 불귀의 현실
일반적으로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선조의 고향(고국, homeland)에 대한 기억이나 신화를 유지하면서도, 막상 실제로는 귀환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계속해서 지연되는 민족 혹은 집단의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공유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샤프란(William Safran)은 디아스포라(집단)를 하나의 조상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전제하여 논의를 출발한다. 자연히 이러한 디아스포라 집단은 조국(혹은 고향, home land)에 대한 집단적 기억과 신화를 공유하게 되고, 조국으로부터 떨어진 현 처지에 대해 소외감을 지니게 되며, 근본적으로 조국(고향)을 본래의 집이자 돌아가야 할 곳으로 여기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조국의 생존과 번영을 기원하고 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고향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정서적・혈연적・상징적 유대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28)
그러니 이들은 공통의 고향(돌아감), 이산의 기억(흩어짐) 그리고 현재의 차별(소외감)을 공유하며, 기존의 국가 개념을 넘어서는 ‘기억의 연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연대 개념에 의거하면, 디아스포라는 ‘귀환의 신화(myth of return)’가 상징적으로 공유되는 상태에서 성립되는 개념이어야 한다.29) 이때 요건으로 작용하는 귀환의 신화는 정체성을 지탱하는 핵심 요건이지만,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디아스포라 상황을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파친코>에서 이쿠노구는 이러한 귀환의 신화가 선명하게 작용하는 공간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분명하게 귀환의 여부가 좌절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자에게 부산(영도)은 기억 속의 고향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지만,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 그곳은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삶의 공간으로는 남아 있지 않는다. 선자는 일본이 위험하다며 손자 솔로몬에게 미국으로의 이주를 권하지만, 정작 자신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거나 일본을 떠날 가능성조차 타진하지 않는다.
서사적으로도 <파친코>에서 선자의 고향은 회상 장면이나 정서적 기억의 형태로만 제시될 뿐, 실제 생활의 공간은 이쿠노구를 비롯한 오사카에 국한되기 일쑤였으며, 해방(종전) 이후에도 일본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로써 이쿠노구는 점차 임시적 체류지가 아니라, 귀환이 영구히 연기된 채 선자 가족이 머무는 정주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귀환의 신화 개념에 비추어볼 때, 이쿠노구는 재일 한인들이 ‘돌아갈 곳’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상태를 확인하는 공간으로 더 유력하게 기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이주자의 정체성은 임시 체류나 이동 과정으로 수용되기보다는, 귀환 자체의 불가능성이 축적되는 시간의 누적으로 이해된다.
2. 귀속의 욕망과 배제의 공존
디아스포라를 특정 집단의 이주 경험으로 환원하여 이해하기보다는, ‘디아스포라 공간(diaspora space)’이라는 개념을 통해 재개념화하고자 하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디아스포라 공간은 기본적으로 이주민과 비이주민, 중심과 주변, 포함과 배제가 교차하는 관계적 장소이며, 권력과 차별이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30) 일반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대개 이주자들의 경험이나 이산과 분산의 현상을 가리킨다면, 디아스포라 공간은 이주자들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본래 살아가던 기거주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 공간을 가리킨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공간은 ‘떠난 자들’과 ‘남은 자들’ 그리고 ‘살던 자들’이 함께 얽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디아스포라 공간에 주목하는 견해(개념)는 해당 공간을 현 시점에서 작동하는 상호 권력관계와 일상의 실천적 장으로 파악하겠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구축된다. 이 개념에 의거하면, 디아스포라는 정체성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상호 작용을 이루는 권력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위치(position)의 개념으로 파악될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럽게 이민자 위주의 기존 담론에 대해서는 일종의 대항 담론의 성격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31)
이러한 디아스포라 공간에 대해 더 세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아스포라 공간은 한 공간에 혼종되어 기거・생활・공존하는 이주민과 정주민(비이주민), 디아스포라 주체와 토착 계층, 국가 권력과 자본 체제 그리고 노동 조건이 동일 장소에서 교차(intersection)하는 사회적 장이며,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가 함께 얽혀 있는 관계의 장이다. 전술한 대로 Avtar Brah는 디아스포라와 디아스포라 공간의 개념을 분리하여 설명하는데, 기존의 소수자, 이민자, 주변, 배제의 속성을 지니는 이주자뿐만 아니라 해당 공간에서 살아가고 거주하는 토착민 역시 이러한 디아스포라 공간에 포함되며, 이들(이주자와 토착민)이 함께 형성하는 복합 공간으로 디아스포라 공간을 규정하려 했다. 그래서 그 공간의 거주자들은 고향(home land)에 대한 추구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그 고향을 고국이라는 원점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고 변별하여 이해한다. 디아스포라 공간의 거주자(이주자와 토착민)는, 현 거주지 즉 디아스포라 공간에 자신의 집과 고향을 다시 건설해야 하는 욕망과 권리를 강하게 담보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개념과 인식에 동의하면, 고국으로의 ‘귀환의 신화(myth of return)’가 아닌 현재 거처로의 ‘귀향 욕망(homing desire, 귀속 욕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현재의 거처(장소)를 ‘집’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디아스포라 공간의 요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32)
<파친코>에서 선자는 귀향 욕망을 내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표면적으로 그녀는 영도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이삭을 따라 오사카로 이주해야 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녀 역시 손자에게 일본을 떠나라고 할 정도로, 재일 한인이 일본에 거주하는 현상을 위험한 일로 간주한다. 끊임없는 멸시와 계속되는 불평등을 체화한 상태로, 일본인이 가하는 민족적 차별에 요란하게 저항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선자는 이주지로서 일본을 결코 떠나지 않으며, 경희(동서)가 죽을 때에서야 겨우 한국(부산)을 방문할 따름이다. 그녀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녀가 정착하려고 하는 곳은 한국이 아니다. 그녀는 오사카를 필두로 하여 자신이 머무는 일본(일제 강점기에는 이쿠노구)에 대한 귀향 욕망을 감추듯 견지하고 있다. 그녀에게 귀환의 신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고, 자신은 아들과 함께 일본에 머무는 삶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시플리은행에서 압박하는 조선인 땅 주인 한금자도 비슷하다. 솔로몬의 부탁으로 한금자를 만나러 온 선자는, 한금자가 그 땅에서 죽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챈다. 한금자에게 자식도, 조국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살고 있는 땅이 중요하다. 한금자는 자신의 뼈를 묻고 자신의 몸을 눕힐 고향을 현재 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주자들은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어렵게 기거주자 혹은 토착 세력과 얽혀 살아가야 했다. 기이주자 역시 같은 민족이지만 상황을 어렵게 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기 거주자와 다를 바 없다. 선자가 이쿠노구에서 김치 노점을 열었을 때 조선 동포 중에는 적대적인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쿠노구는 일본인과 조선인, 기거주자와 신 이주자, 토착 세력과 이주 세력이 뒤얽히며 하나의 공간으로 변전・재구성되었고, 결국 그곳을 또 다른 고향으로 여기는 디아스포라 공간으로 재창출되었다.
이처럼 ‘디아스포라 공간(diaspora space)’의 개념은 이쿠노구를 분석하는 데에 유용하다. 이쿠노구 자체가 이주 주체와 다수 토착민, 국가 제도와 자본 체제, 그리고 일상적 차별과 민족 간 접촉이 동일 장소에서 중첩되며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친코>에 재현된 이쿠노구는 현실적으로는 일본 도시의 일부 구역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류 규범과 질서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구역으로 묘사된다. 그곳에서는 일본어와 조선어가 혼재하고, 일본 도시 구조 내에 조선인 식문화와 가족 질서가 중첩하며, 일본인과 조선인 그리고 정착 조선인과 신규 조선인이 공존한다. 특히 상점가와 주거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되는 사건들과 장면들은 이쿠노구가 철저하게 단일 민족 공간으로 남을 수 없다는 사실과, 지속적으로 혼종(성)과 관계(성) 그리고 차별(성)이 발생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사진: 시즌 1, 에피소드 8, 37:58
게다가 이쿠노구는 일본 행정 권력과 시장 질서, 그리고 다수자의 시선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공간에는 재일 한인만이 아니라 토착 일본인이 분명 거주자로 존재했고, 재일 한인 역시 다양한 범주로 산포되어 있으므로 단일한 개념으로 범주화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 재일 한인은 일본 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존재도, 그렇다고 완전히 통합된 시민도 아닌 상태로 거주해야 한다. 이러한 중간(자)적 위치(위상)는 이쿠노구를 단순한 ‘민족 집단 거주지’로 환원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고 결과적으로 배제와 필요, 차별과 접촉이 동시에 작동하는 사회적 장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이삭의 체포와 수감을 들 수 있다. 이삭은 이쿠노구에서 권력에 의해 차별을 받고 일본 경찰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이삭의 손자 솔로몬은 경제 대국이 된 1980년대 일본의 한복판(도쿄)에서 여전히 일본인의 차별 대우에 고통을 받았으며, 이에 별다른 해결 방안이 없다는 자괴감에 재차 고통을 이어가야 했다. 어릴 적 자신이 받던 차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회에 대한 염증을 표출하기도 했다. 드라마 <파친코>는 이러한 차별의 양상을 세대를 건너, 장소를 넘어,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이쿠노구에서 만연했던 차별이 결국 일본 내에서 보편화된 차별이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증언한다.

사진: 시즌 2, 에피소드 9, 43:22
정리하면, <파친코>에서 이쿠노구는 재일 한인이 정착하고 그 안에서의 정주를 고착화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비단 과거를 회상하는 장소이거나 언젠가 떠나야 할 임시 거처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곳은 오히려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하고, 상호 협력을 위해 공조하고, 때로는 이권과 이견 때문에 갈등을 겪으면서도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정착(귀속) 공간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공간 제시 방식은 디아스포라를 귀환과 이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각을 벗어나, 정착을 전제로 형성되는 삶의 양식으로 파악하는 디아스포라 공간(diaspora space)의 이론과 상통한다.33)
그중에서도 이쿠노구의 상업 거리와 시장 풍경은 디아스포라 공간의 성격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조선 음식과 생필품이 거래되는 이 공간은 비단 경제 활동과 생계유지의 장을 넘어, 정보 교환과 소문, 상호 감시와 연대 의식, 그리고 내부적 긴장(가령 고발과 경쟁)과 외부적 압력(가령 전쟁이나 정부의 탄압)이 동시에 발생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곳에서 재일 한인은 일본 사회와의 접촉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동화로 나아가지도 않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구축해 나간다.34) 이러한 상업 공간은 디아스포라가 외부로 밀려나 형성한 폐쇄적 구역이 아니라, 주류 사회와의 마찰 속에서 유지되는 관계를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이쿠노구는 재일 한인 공동체만의 분리된 구역이 아니라 일본 사회 내부에서 디아스포라와 다수자, 국가 권력과 일상적 삶이 교차하는 핵심적 장소로 재정위될 수 있다.35) <파친코>는 이 공간을 통해 디아스포라가 기억이나 귀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조직하는 공간적 조건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 혼종의 공간과 유동적 정체성
마지막으로, 이쿠노구를 통해 드러나는 세대 간 정체성의 변화, 문화적 긴장 관계, 그리고 ‘사이(in-between)’의 위치성을 분석하는 데에 Stuart Hall의 견해는 요긴한 착안점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시종일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재형성되는 위치(positioning, 위치 잡기)로 개념화하여 이해될 수 있다는 전제를 우선 상기할 필요가 있다. Stuart Hall에게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고정된 기원에서 연원하는 고정불변의 신화이기보다는 전략적이고 잠정적인 위치 설정 개념에 가까우며, 그래서 고정된 기원으로의 귀환보다는 사회적 실천 담론에서 잠정적으로 요구되는 자리 잡기 행위에 해당한다.36)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과거의 기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현재의 권력관계와 상호 담론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재구성(유동성) 관점에 입각하면, 이쿠노구는 재일 한인의 정체성이 보존되거나 고정되는 장소라기보다, 식민지 경험과 이주 현상 그리고 차별의 역사 속에서 정체성이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서술되는 문화적 장으로 고쳐 이해되어야 한다. Stuart Hall은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공통의 기원이나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고정불변의 성향으로 보지 않고, 단절과 차이 그리고 혼종성의 도정에서 형성되는 유동적인 성향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쿠노구는 ‘조선인의 공간’이라는 단일한 규정으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조선과 일본, 식민과 전후, 주변과 중심의 담론이 교차하며 의미가 생산되는 장소로 재정위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쿠노구에 형성된 재일 한인 공동체는, 과거 정착 시점에서 해당 공동체가 수행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조국(homeland)을 기억하거나 체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에서 ‘조선’이라는 문화적・역사적・정신적 정체(성)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억과 언어, 음식, 생활 관습을 통해 부분적으로 호출되고 변형되는 서사적 자원으로 기능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쿠노구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존재(being)’라기보다, ‘생성(becoming)’의 과정에 가깝다.37) 재일 한인은 조선인으로 남아 있거나 일본인이 되는 선택 사이에서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고 시시각각 변화시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38)
이쿠노구는 정체성의 혼종성이 가시화되는 공간이다. 이주와 전지구화의 기류가 진행되면서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역동성이 증가하고, 이주를 통한 혼종화 현상도 가중되면서, 이쿠노구의 상황은 정체성의 변동 가능성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39) 이쿠노구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재일 한인의 삶은 ‘조선적 요소’와 ‘일본적 요소’가 단순하게 병치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충돌하고 상호 융합・변형되며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과정으로 변모하기 일쑤이다. 조선 음식, 언어, 관습은 일본 사회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데, 오히려 이쿠노구라는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맥락을 거치면서 원전과 다르게 변주되고 상황과 시대에 맞게 재맥락화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논점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재일 한인에게 이쿠노구는 ‘정체성의 안전지대’로 이상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공간은 조선적 정체성이 온전히 보호되고 완벽하게 보존되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체성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질문받아 의구심에 휩싸이는 장소이다. 재일 한인은 일본 사회의 시선과 제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반복적으로 묻거나 설명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이 자문-해답 과정에서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쿠노구는 바로 이러한 담론상의 긴장이 집약된 공간이어야 했으며 또 그러한 공간이어야 한다.
결국 이쿠노구는 ‘민족 공동체의 보존 공간’만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불안정한 상태로 지속되는 문화적 위치’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이쿠노구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에서 벗어나, 점차 ‘어떻게 말해지고, 어떻게 살아지는가’로 이전한다. 이때 이쿠노구는 재일 한인의 혼종적 정체성이 생성되는 과정의 장으로 재조명되어야 하며, 나아가 디아스포라는 귀환이나 정착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정체성이 재구성되는 문화적 실천의 문제로 재정위되어야 한다.
<파친코>는 이러한 관점과 의식을 세대 간 차이를 통해서도 구체화하고자 했다. 선자 세대에게 정체성은 ‘떠나온 고향’의 기억과 상실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노아와 솔로몬 세대로 갈수록 정체성은 기억(원류)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위치와 선택의 문제로 옮겨간다. 이들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일본 사회에서의 차별과 배제를 통해 그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되새겨야 하는 처지에 처해야 했고, 웬만해서는 그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노아나 모자수가 당했던 학교 내 폭력이나 솔로몬이 당하는 직장 내 폭력이 대표적이며, 넓게 보면 이삭이 당했던 밀고나 선자・경희가 직면해야 했던 차별도 여기에 해당한다. 도일 직후 이삭이나 어릴 적 노아 혹은 모자수가 이쿠노구(이카이노)에서 당했던 모멸과 수치의 기록은 정체성의 유동성을 부각한다. 노아는 결국 일본인으로 숨어 사는 인생을 선택했고, 모자수는 재일 한인을 드러낸 채 사업가로 나서는 길을 선택했다. 여기에 선자가 재일 한인의 중도성을 거부하고 조선인으로 남았다는 선택을 종합하면, 결과적으로 선자는 조선인으로, 노아는 일본인으로, 모자수는 재일 한인(자이니치)으로 남는 서로 다른 선택을 감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성이 동일 공간이 이쿠노구에서 기원하기는 했지만, 그 이쿠노구가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정체성의 발원지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심장한 관찰에 도달할 수 있다.
이쿠노구는 이러한 세대별 정체성의 차이가 오래되고 밀집된 공간이다. 같은 장소에 살지만 각 세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공간을 경험하며, 그에 따라 정체성 역시 단일한 공동체적 형태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쿠노구는 정체성이 고정되는 장소가 아니라, 정체성이 끊임없이 재정위되는 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Ⅴ. 결론: 기억의 공간으로서 이쿠노구
이 연구는 Apple TV+ original series <파친코>에 재현된 오사카 이쿠노구를 중심으로, 해당 공간이 재일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조직하는 핵심 조건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파친코>를 단순한 재일 한인 가족 서사나 세대사적 서사로 이해하는 기존의 접근에서 벗어나, 식민지 경험과 전후 배제가 도시 공간 속에 고착되는 과정을 공간적 차원에서 사유하는 텍스트로 재정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이쿠노구의 형성과 변화를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 이주,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적 배제, 그리고 행정적 제도화 과정에서 검토하였다. 이쿠노구는 일본 근현대사의 주요 전환기(공업화, 제국화, 전쟁, 패전, 도시화)마다 주변화된 노동과 삶이 집적된 공간으로 형성되었으며, 전후에도 재일 한인이 완전히 배제되거나 동화되지 않은 채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도시 내부의 경계 공간으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은 이쿠노구가 단순한 재일 한인 집거지를 넘어, 식민지 경험이 도시 내부에 잔존하는 ‘내부 식민지’로 기능해 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 위에서, <파친코>는 이쿠노구를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과 선택 그리고 정체성 형성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공간으로 재현한다. 작품 속 이쿠노구는 일본 사회로의 진입이 곧바로 사회적 통합이나 계층 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경계적 공간이며, 가난과 노동, 주거의 밀집, 반복되는 생계의 동선이 일상의 조건으로 축적된 장소로 체현된다. 이 공간은 인물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윤리적 선택 이전에, 삶의 가능성과 한계를 규정하는 구조적 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 나아가 이쿠노구는 공동체적 연대와 긴장이 중층적으로 교차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재현된다. 시장과 상업 거리 형성 그리고 음식과 노동의 실천은, 재일 한인 공동체가 제도적 보호 바깥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해 구축한 자기 조직적 생존 전략의 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적 공간은 낭만적으로 이상화되지 않으며, 내부의 위계와 갈등 그리고 불안정성 역시 함께 드러난다. 이로써 <파친코>는 이쿠노구를 연대의 장소이자 동시에 취약성이 상존하는 공간으로 제시하며,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현실을 복합적으로 포착한다.
특히 이 연구는 이쿠노구가 반복되는 노동과 일상의 실천을 통해 기억이 축적되고 갱신되는 ‘기억의 장소’로 기능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작품 속에서 이쿠노구는 공식적으로 기념되거나 서사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인물들의 반복되는 생존 행위와 일상적 이동을 통해 식민지 경험과 디아스포라 기억이 지속적으로 호출하는 공간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파친코>가 역사를 사건의 연쇄로 제시하기보다, 공간 속에 누적된 조건과 반복되는 삶의 양식으로 제시하는 서사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전술한 대로, 이쿠노구는 일본의 내부 식민지로 형성되어 왔고(Ⅱ장), 드라마 서사에서는 식민지적 위계가 축소・응축된 공간, 즉 식민지 축도로 재현되었으며(Ⅲ장),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생성・고착・분절되는 구조적 조건으로 작동했다(Ⅳ장). 이러한 논의가 수렴되는 지점에서, 이쿠노구는 더 이상 ‘정체성의 배경’이나 ‘역사의 흔적’에 고착되지 않는다. 이곳은 역사적 조건들이 기억의 형태로 전환되어 유지되는 장소로 기능한다.
<파친코>는 이쿠노구의 기억을 기념비적 방식으로 표상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는 공식적인 추모 장면이나 집단적 기억 의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좁은 골목과 낡은 집, 반복되는 노동의 동선, 세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생활 반경이 지속적으로 제시된다. 이 반복성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장치이자, 기억이 말해지지 않은 채 생활의 리듬 속에 퇴적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쿠노구의 기억은 회상이나 증언의 형태로 전달되기보다, 생존과 인고의 조건으로 체화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쿠노구의 기억이 세대 간에 서사적으로 계승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세대의 경험은 명확한 이야기로 전승되지 않고, 침묵과 단절 속에 머물고 만다. 후속 세대는 과거의 구체적 사건을 알지 못한 채, 이미 형성된 주거 환경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이야기에서 환경으로, 경험에서 구조로 이동할 따름이다. 이처럼 기억이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지속되는 장소, 다시 말해 기억의 비가시성이 유지되는 공간으로 이쿠노구는 드라마 <파친코>와 그 기억 속에 자리한다.
이러한 침묵은 망각과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이 침묵은 기억이 과잉된 상태에서 선택된 생존 방식에 가깝다. 너무 오래 지속된 차별과 불안정은 언어화되기보다, 일상적 태도와 감정 반응, 삶의 선택을 규정하는 무언의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쿠노구는 이러한 침묵의 기억이 일상화된 장소이며, 드라마는 이를 과장이나 폭로가 아닌, 절제된 시각적 리듬으로 제시한다. 결국 <파친코>에서 이쿠노구는 과거를 보존하는 저장고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조직하는 방식이 구현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기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주거 형태와 노동 구조, 이동의 가능성과 한계, 세대 간의 거리로 전이된다. 이쿠노구의 기억은 끝나지 않으며,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말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삶의 조건으로 지속되는 기억이다.
이러한 분석을 종합하여, 이 연구는 <파친코>를 재일 한인 정체성의 표상에 국한된 텍스트가 아니라, 식민지 이후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공간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서사로 이해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디아스포라 연구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나 맥락이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이 생성・유지되는 핵심 매개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쿠노구에 대한 공간적 분석은 디아스포라 경험을 개인의 서사나 문화적 차이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역사적 폭력과 제도적 배제가 일상 공간 속에 어떻게 고착되는지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결국 이 연구는 <파친코>에 재현된 이쿠노구를 통해, 식민지 경험이 과거에 봉인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도시 공간 질서 속에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적 조건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재일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뿐 아니라, 식민지 이후 사회를 다루는 문화 텍스트 분석에서 공간 연구의 중요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