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iland's Escalation of the Border Conflict with Cambodia and the Breakdown of Civilian Control
1 Korea National Defense University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26.45.1.325
Abstract
The July 2025 Thailand-Cambodia border conflict marked the first use of air power in the region since 1988, standing in stark contrast to the 2008-2011 clashes over the same disputed territory, which remained a managed conflict despite similar nationalist pressures. To explain this divergence, this study develops an integrated analytical framework by adapting Feaver's principal-agent theory and Fearon's audience costs theory to Thailand's distinctive political context. The analysis reveals that the uncontrolled escalation in 2025 resulted from the convergence of two causal pathways: a "dual-principal structure" institutionalized by the 2017 Constitution, and "externally imposed audience costs" triggered by Hun Sen's strategic leak of a private phone call. Under this dual-principal structure, the Thai military aligned with the de facto principal—the monarchy-military network and the Constitutional Court—rather than the elected government, enabling commanders to defy ceasefire orders without consequence. Meanwhile, the Constitutional Court removed the civilian leader who sought de-escalation, producing a "reversal of punishment" t that facilitated autonomous military escalation. By contrast, the 2008-2011 conflict remained controlled due to preference convergence between the Abhisit government and the military. This study demonstrates that in hybrid regimes such as Thailand, the formal appearance of civilian control does not guarantee effective control over the armed forces.
Ⅰ. 서론
2025년 7월 24일, 태국 공군의 F-16과 그리펜(Gripen) 전투기가 캄보디아 군사 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는 1988년 태국-라오스 국경전쟁 이후 왕립태국공군이 전투기를 실전에 투입한 최초의 사례였다(Al Jazeera, 2025/12/08). 5일간의 전투로 48명이 사망하고 30만 명 이상이 피난길에 올랐으며, 7월 28일 말레이시아의 중재로 푸트라자야 휴전이 체결되었다(Britannica, 2025/12/10).1
이러한 급격한 확전은 동일한 프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 영토 분쟁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2008-2011년의 충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아피싯 웨차치와(Abhisit Vejjajiva) 태국 총리와 훈센(Hun Sen) 캄보디아 총리 하에서 양국은 약 3년에 걸쳐 산발적 교전을 벌였으나, 총 사망자 수는 약 34명에 그쳤다. 바게너(Wagener 2011, 30)는 이 분쟁을 “저강도 국경분쟁”으로 규정하고, 양측 지도자 모두 분쟁의 “해결도 확전도 원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왜 2025년에는 동일한 사안을 둘러싼 분쟁이 통제를 벗어나 전면적 군사 충돌로 확대되었는가? 이것이 본 논문이 해명하고자 하는 핵심 퍼즐이다.
기존 연구들은 2025년 확전 원인을 군사 현대화, 아세안의 예방 외교 실패, 지도자 개인 요인 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군사 현대화는 2013년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고, 아세안의 제도적 한계는 2008-2011년에도 동일하게 존재했다. 6월 15일 패통탄-훈센 통화 유출과 이에 따른 지지율 폭락(30.9%→9.2%)은 위기의 촉발 요인이었으나(CNN, 2025/06/19; The Nation Thailand, 2025/06/29), 개인의 실수가 왜 통제 불가능한 확전으로 이어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다층적 요인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2025년 확전의 핵심 동학을 태국 문민통제의 구조적 붕괴에서 찾고자 한다. 2014년 쿠데타 이후 제정된 2017년 헌법은 군부 직접 임명 상원 250석, 헌법재판소 인사권 장악 등을 통해 선출된 정부(명목적 주인) 외에 왕실-군부 네트워크(실질적 주인)라는 대안적 권위를 제도화했다(Hiebert, 2024). 이러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 속에서 군은 명목적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실질적 주인에 정렬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이 선택은 제도적으로 보호받았다. 실제로 분신 장군은 7월 24일 전투 발발 당일 6시간 이내에 휴전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전투를 계속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Khmer Times, 2025/11/12). 그는 “내가 병사들에게 중단하라고 말했다면,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밝혀야 했을 것이고, 그 사람은 이 나라에 남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사실상 문민 지도부의 권위를 부정했다(The Nation Thailand, 2025/11/09).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불복종한 군 지휘관을 처벌하기는커녕, 휴전을 명령한 패통탄 총리를 2025년 8월 29일 해임했다(Al Jazeera, 2025/08/29). 긴장완화를 시도한 문민이 처벌받고, 명령을 거부한 군인이 보호받는 “처벌 방향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본 논문은 피터 피버(Peter D. Feaver, 2003)의 주인-대리인 이론을 수정하여 태국 사례에 적용한다. 피버의 원래 모델은 단일한 문민 주인이 군 대리인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구조를 상정하지만, 2025년 태국에서는 명목적 주인(선출된 총리)과 실질적 주인(헌법재판소/왕실-군부 네트워크)이라는 복수의 주인이 존재했다. 이러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에서 군의 행동은 단순한 “태만(shirking)”이 아니라 어느 주인에 정렬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아울러 본 논문은 제임스 페어론(James Fearon)의 청중비용 이론을 확장하여, 6월 통화 유출이 지도자 자신의 공개적 약속이 아닌 상대국의 전략적 행동에 의해 청중비용을 ‘외부적으로 부과한’ 사례임을 분석한다. 이 외부적 부과가 기존의 반탁신 정서, 프레아 비헤아르에 대한 민족주의적 민감성과 결합하여 폭발적인 청중비용을 발생시켰고, 패통탄 정부의 외교적 유연성이 완전히 파괴되었다(Fearon 1994).
이러한 논의를 위한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피버의 주인-대리인 이론과 페어론의 청중비용 이론을 수정·통합한 분석틀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2008-2011년 분쟁에서 '선호 수렴'이 어떻게 갈등을 통제했는지, 4장에서는 2017년 헌법 체제 하에서 '이원화된 주인 구조'가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5장에서는 2025년 분쟁에 분석틀을 적용하고, 6장에서 결론을 제시한다.
Ⅱ. 이론적 분석틀
1. 주인-대리인 이론과 제도화된 불복종
피터 피버(Feaver 2003)의 주인-대리인 이론은 민군관계를 문민 “주인”과 군 “대리인” 간의 전략적 상호작용으로 개념화한다. 문민은 안보 기능을 군에 위임하지만, 군이 지시를 따르는지 완벽히 감시할 수 없다. 피버는 군의 행동을 문민 지시를 이행하는 “복무(working)”와 문민의 바람에 반하는 “태만(shirking)”으로 구분한다. 태만은 직접적 불복종에서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치려는 간접적 형태까지 다양할 수 있다. 피버는 “문민은 틀릴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는데, 문민 우위는 문민의 판단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이 선출된 지도자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Feaver 2003, 65). 이 이론의 핵심 가정은 군이 단일한 문민 주인에 종속되며, 그 주인이 처벌 역량을 독점한다는 것이다.
최근 민군관계 연구는 이러한 단일 주인 가정을 완화하여 ‘다중 주인(multiple principals)’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할리(Harnly 2021)는 아방(Avant 1994)의 논의를 발전시켜 행정부와 입법부가 군에 대한 이중의 문민 주인으로 기능하는 구조를 분석했으며, 도니쏜(Donnithorne 2018)은 복수의 주인이 군의 자율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화했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선출된 복수의 문민 기관 간 경쟁을 다루며, 선출된 주인과 비선출 주인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체제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태국은 바로 이러한 하이브리드 체제에 해당한다. 2017년 헌법은 선출된 총리(민주적 정당성)와 헌법재판소 및 왕실-군부 네트워크(비선출 권위)라는 이질적인 복수의 주인을 제도화했다(Chambers & Waitoolkiat 2016). 제269조는 군 사령관들을 포함한 250명의 상원을 군부가 임명하도록 규정했고, 제272조는 이 상원이 총리 선출에 참여하도록 했다(Constitution of the Kingdom of Thailand 2017, secs. 269, 272). 이러한 구조에서 군은 선출된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더라도 비선출 기관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본 논문은 이를 “제도화된 불복종”이라 개념화하고, 피버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이원화된 주인 구조에서 군의 행동은 복무/태만의 이분법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군은 (1) 먼저 복수의 주인 중 어느 주인에 정렬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2) 그 선택된 주인에 대해 복무 또는 태만을 결정하는 이중 구조 속에서 행동한다. 이 구조에서 동일한 행위가 관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규범적 관점에서, 군이 선출된 문민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적 문민통제 원칙에 대한 '태만'이다. 그러나 실질적 주인인 왕실-군부 네트워크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복무'가 된다. 2025년 분신 장군의 휴전 명령 거부가 처벌받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이중성 때문이다. 그는 명목적 주인에게는 태만했으나, 실질적 주인에게는 복무했으므로 제도적 보호를 받았다.
이 경우 ‘처벌 방향 역전’이 발생한다(Mérieau 2016). 실질적 주인의 관점에서 군은 복무한 것이므로 보호받고, 명목적 주인(문민 정부)은 실질적 주인의 이익에 반했으므로 오히려 처벌받는다. 휴전을 명령한 패통탄 총리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임되고, 그 명령을 거부한 분신 장군이 아무런 문책도 받지 않은 2025년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2. 청중비용 이론과 외부적 부과 메커니즘
제임스 페어론(Fearon 1994)은 국제 위기를 국내 청중이 지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공적 사건으로 이론화했다. 지도자가 위기에서 공개적 약속을 한 후 물러서면 청중비용이 발생한다. 이 비용은 지지율 하락, 정치적 반대, 권좌 상실의 형태로 나타난다. 페어론의 모델에서 청중비용은 확전과 함께 증가하며, 위기가 고조될수록 지도자는 “잠겨버린(locked in)” 상태가 된다(Fearon 1994, 577, 583-584). 이 메커니즘의 핵심 가정은 청중비용이 지도자 자신의 공개적 약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 가정을 확장하여 청중비용의 ‘외부적 부과’에 주목한다. 야르히-밀로(Yarhi-Milo 2013)는 비밀 협상의 맥락에서 상대국이 협상 내용 공개를 위협함으로써 청중비용을 외부적으로 부과할 수 있음을 이론화했다. 본 논문의 ‘외부적 부과’ 개념은 이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나, 야르히-밀로가 분석한 것이 협상 레버리지로서의 '위협'이었다면, 2025년 태국 사례는 상대국의 실제 ‘실행’이 국내 정치적 위기를 즉각 촉발한 경우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패통탄 총리는 자신의 공개적 약속이 아니라 훈센의 의도적 통화 유출에 의해 청중비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메커니즘이 폭발적으로 작동한 데는 태국의 특수한 정치적 맥락이 있었다. 2006년 쿠데타 이후 태국 정치는 친탁신 대 반탁신이라는 균열로 구조화되었다(McCargo 2005, 510-515). 패통탄 친나왓은 탁신의 딸로서 그 자체로 기득권층의 적대적 시선의 대상이었다. 2023년 선거 결과에 대한 기득권층의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친나왓 연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맥락이 형성되었다(International Crisis Group 2023). 프레아 비헤아르가 태국 민족주의 담론에서 “국가적 굴욕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Strate 2017, 145-170), 캄보디아에 대한 어떤 양보적 발언도 즉각적인 민족주의적 반발을 야기할 수 있었다. 유출된 통화 내용은 이러한 조건들을 동시에 활성화했고, 그 결과 페어론이 이론화한 '잠김' 효과가 사적 외교의 공개를 통해 즉각적으로 발생했다.
3. 통합적 분석틀 : 구조적 기반과 촉발 조건의 인과적 결합
본 논문은 수정된 피버 이론과 페어론의 청중비용 이론을 통합하여 2025년 확전을 설명한다. 이 틀에서 두 개의 인과 경로가 상이한 역할을 수행한다. 경로 1(수정된 피버)은 확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기반이고, 경로 2(페어론)는 확전을 ‘촉발하는’ 방아쇠로 볼 수 있다.
경로 1은 2014년 쿠데타와 2017년 헌법이 형성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이다(Chambers 2024). 상원 임명, 헌법재판소 구성, 왕실-군부 네트워크를 통해 비선출 기관들이 군에 대한 보호 역량을 획득했다. 이 구조에서 군은 선출된 정부의 지시를 거부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만으로는 확전이 발생하지 않는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이 체제가 존재했지만 대규모 군사적 확전은 없었다.
경로 2는 전화 유출로 촉발된 청중비용 폭발이다. 지지율 붕괴, 연정 와해, 거리 시위가 문민 정부의 정당성을 파괴했다. 그러나 청중비용 폭발만으로도 확전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문민 정부가 군에 대한 처벌 역량을 보유했다면, 정당성이 약화되더라도 군의 자율적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25년 확전은 두 조건의 결합에서 발생했다. 헌법재판소가 7월 1일 패통탄을 직무정지시키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이 공백에서 군은 문민 감독 없이 자율적으로 확전했다. 분신 장군이 휴전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명령을 내린 문민 주인이 이미 대안적 주인(헌법재판소)에 의해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8월 29일 패통탄의 영구 면직은 ‘처벌 방향 역전’을 완성했다. 긴장완화를 시도한 문민이 처벌받고, 명령을 거부한 군인은 보호받았다.
2008-2011년 선례가 이 논리를 뒷받침한다(Wagener 2011). 당시에도 지상 교전과 포격전이 발생하여 약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아피싯 정부와 군부 간의 선호 수렴으로 분쟁은 ‘관리된 갈등’의 형태로 통제되었고, 공군력 투입 수준의 확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2025년은 문민 통제를 벗어난 ‘자율적 확전’이었다. 핵심 변수는 전투의 유무가 아니라 전투의 통제 주체이다.
Ⅲ. 2008-2011년 분쟁과 선호 수렴
1. 문민-군부 정렬의 형성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2008-2011년 국경분쟁은 국지적 포격전 이상으로 확전되지 않은, 즉 의도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유지된 저강도 국경분쟁이었다(Wagener 2011, 30). 본 논문의 관점에서 그 원인은 태국에서 아피싯 정부와 군부 간의 선호 수렴으로 설명될 수 있다.
2008년 12월 아피싯 웨차치와의 집권 과정은 태국의 ‘취약한 문민통제(frail civilian control)’를 여실히 드러낸다(Chambers 2024, 3). 2008년 12월 2일, 헌법재판소는 선거 부정을 이유로 집권 연정의 세 정당을 해산시키고 솜차이 웡사왓 총리를 면직시켰다(BBC News, 2008/12/02).
아피싯의 총리 선출은 막후에서 치밀하게 조율된 연정 재편의 결과물이었다. 특히 2006년 쿠데타의 주역인 아누퐁 파오친다 육군 사령관이 이 과정을 주도적으로 기획했다(Chambers & Waitoolkiat 2016). 아누퐁은 비밀 회동을 통해 느윈 칫촙의 품짜이타이당을 설득하여 기존 연정에서 이탈시키고, 민주당 중심의 새로운 의회 다수파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Chambers 2024, 4). 이에 대해 캄눈 싯티삼안 상원의원은 ‘아누퐁 스타일의 쿠데타’이자 ‘PAD(국민민주주의연대)의 진정한 승리’라고 평가했으며(Connors 2011, 171), 인민권력당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사법 쿠데타’로 규탄했다(Al Jazeera, 2008/12/02). 결국 사법적 정당 해산과 군부의 개입이 결합된 이 일련의 정치 변동은 ‘조용한 쿠데타(silent coup)’로 명명되었다(McCargo 2011, 5-12).
아피싯 정부는 군부의 정치적 지지에 부응해 국방비를 대폭 증액했다. 2010년 1,540억 바트였던 국방 지출은 2011년 1,700억 바트로 전년 대비 10.4% 증가했으며(SIPRI Military Expenditure Database), 여기에는 JAS 39 그리펜 전투기 6대 도입을 위한 195억 바트가 포함되었다(Bangkok Post, 2015/10/16). 이는 탁신 정부(2001-2006) 시기 감축되던 국방 예산이 2006년 쿠데타를 기점으로 반등했음을 보여준다(Chambers 2024, 287). 실제로 2007년 1,150억 바트 규모였던 국방 예산은 2019년 2,270억 바트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유지했다(Abuza 2019).
이러한 예산 배정은 양측의 근본적인 정치적 유대를 방증한다. 1946년 창당 이래 보수·왕실주의를 표방해 온 민주당은 군부 기득권층과 역사적인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다(McCargo 2005). 아피싯이 PAD 의 핵심 인사인 까싯 피롬야를 외무장관에 기용한 것 역시 이러한 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민주당, 군 수뇌부, 그리고 전통적 기득권층이 공유한 반(反)탁신 정서는 피버(Feaver 2003)가 제시한 ‘선호의 수렴’을 형성했다. 이는 군이 상당한 제도적 자율성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민 정부와 정치적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긴밀한 기능적 협력이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챔버스(Chambers 2024b, 15)가 제시한 ‘왕실화된 군대(monarchized military)’ 개념에 따르면, 태국 군부의 충성심은 헌법이나 민주적 절차가 아닌 왕실을 향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군의 헌신이 선출된 정부가 아닌 왕실과 추밀원에 귀속되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문민통제 확립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Chambers 2024b, 18). 챔버스는 아피싯 정부의 출범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했다. 2008년 말, 군부가 정치 개입을 통해 아피싯 연정 구성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Chambers 2024a, 4). 그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의 시기를 문민 정부가 명목상의 권위만 가질 뿐 실질적으로는 군부의 묵인에 의존하는 ‘취약한 문민통제’ 단계로 유형화했다(Chambers 2012, 45). 이는 태국 정치가 왕궁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 네트워크에 의해 작동한다고 본 맥카고(McCargo 2005)의 ‘네트워크 군주제(network monarchy)’ 이론과도 궤를 같이한다.
2. 통제된 확전의 전개
2008-2011년 분쟁이 통제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국뿐 아니라 캄보디아 측의 문민-군부 관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에서 지도자가 군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분쟁 관리의 전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훈센의 군 장악력은 전직 크메르 루주 지휘관으로서의 경력과 1980년대 중반부터 다져온 권력 기반에서 나온다. 캄보디아 군은 국가 주권 수호보다 집권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을 지탱하고 훈센 측근을 보호하며, 반대 세력을 억누르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Jane's Defence, 2011). 이러한 통제 기제는 훈센에게 직접 충성하는 엘리트들이 포함되며, 군 진급은 전문적 능력보다 캄보디아인민당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시한다(Radio Free Asia, 2015/07/29). 특히 2011년 1월, 장남 훈 마넷을 소장 진급과 동시에 육군 부사령관에 임명해 프레아 비헤아르 협상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이러한 훈센식 군 통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훈센은 군사적 무력시위와 국제법적 대응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했다. 2008년 말, 그는 국경 지역에 약 5,000명의 병력을 배치해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절차를 밟았다. 이러한 이중 접근법은 양국 간의 현격한 군사력 비대칭성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태국의 국방예산은 캄보디아의 7배에 달했고 F-16과 그리펜 등 첨단 전투기를 보유한 반면, 캄보디아는 사실상 공군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훈센이 ICJ 제소만이 양국 간의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었다.
이 분쟁은 뚜렷한 국면 전환을 거치며 전개되었는데, 포격전과 지상전이 주를 이뤘을 뿐 공군력은 투입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태의 발단은 2008년 7월 8일 유네스코의 프레아 비헤아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태국 내 민족주의 시위의 기폭제가 되면서부터였다. 이후 긴장이 고조되어 그해 10월 3일 첫 무력 충돌이 빚어졌고, 2011년 2월 4일부터 7일 사이에는 박격포와 BM-21 다연장 로켓, 155mm DPICM 확산탄 등 중화기가 동원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CMC 2011/04/06). 전선은 같은 해 4월과 5월, 타 모안과 타 끄라바이 사원 인근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국제위기그룹(ICG)은 4~5월 전투에서만 약 18명이 사망하고 최대 5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으며, 분쟁 기간 전체 사망자는 약 34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Wagener 2011, 28).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격렬한 지상전 속에서도 양측이 공군력 사용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사실이다. 태국은 F-16 전투기 등 압도적인 제공권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습을 감행하지 않았다(Wagener 2011, 45). 이는 군사적 역량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확전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적 선택이었다.
라타나생찬(Rattanasengchanh 2017)은 이 분쟁이 양측 모두에게 제공한 국내 정치적 효용성에 주목했다. 훈센은 프레아 비헤아르 문제와 태국에 대한 역사적 적대감을 정치적 위신 제고와 민족주의 결집의 도구로 삼았고, 이는 2008년 7월 총선에서 캄보디아인민당이 전체 123석 중 90석을 석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태국 역시 양상은 유사했다. 분쟁은 아피싯 총리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으나, 결과적으로는 국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Chachavalpongpun 2010). 이에 대해 바게너(Wagener 2011, 52)는 양국 지도자가 전면전으로의 확전은 피하면서도, 국내의 민족주의와 정치적 지지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전략적 균형을 추구했다고 분석했다.
3. 2025년과의 결정적 차이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분쟁이 일정 수준에서 통제될 수 있었던 원인은 2장에서 제시한 분석틀을 통해 명확히 설명된다. 핵심은 정부와 군부 간의 '선호 수렴(preference convergence)' 기제(경로 1)가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당시 아피싯 정부와 군부는 반(反)탁신 정서와 대(對)캄보디아 강경론이라는 이념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었다. 군부는 아피싯 정권의 탄생을 주도한 대가로 막대한 예산 증액을 보장받았기에,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를 약화시키거나 상호 정치적 효용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확전을 감행할 유인이 없었다(Feaver 2003, 95-100). 이는 패통탄 정부와 군부 간의 정치적 목표가 불일치하는 2025년의 '선호 괴리' 현상과 대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둘째, 경로 2(청중비용)의 작동 방식에서 질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2008-2011년 당시에도 PAD(국민민주주의연대)로 대변되는 민족주의적 압박은 거셌다. 하지만 2025년의 청중비용이 전화 통화 유출 등을 통해 문민정부를 고립시키고 정당성을 훼손하는 기제로 작용한 것과 달리, 2008년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당시의 민족주의적 여론은 정부와 군부가 공유하던 이해관계와 정확히 부합했다. 즉, PAD 의 압력은 정부-군부의 결속을 저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켰으며,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셋째, 국제적 제어 장치가 유효하게 작동했다. 2011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전례 없는 수준의 외교적 중재에 나섰다. 마르티 나탈레가와 외무장관은 2월 22일 자카르타 회담을 통해 비공식 휴전과 인도네시아 옵서버단 파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이를 두고 "분쟁 해결을 위한 아세안 역량의 획기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다(VOA, 2011/02/21). 그러나 태국 군부는 주권 침해를 이유로 옵서버 배치를 거부하며 합의를 무산시켰(RFA, 2011/03/09). 결국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개입하여 7월 18일 양국 군의 철수와 잠정 비무장지대(PDZ) 설정을 명령했는데, 이는 ICJ 역사상 잠정적 성격의 비무장지대를 창설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Tams 2011). 이러한 국제적 기제는 양국에 정치적 타격 없이 물러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으며, 확전을 억제하는 추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국제적 기제는 국내 구조적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유효하게 작동하는 보조 변수로 이해해야 한다. 2008-2011년 아세안 중재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국 지도자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았고, 군에 대한 통제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반면 2025년에는 태국 문민정부의 통제력 상실로 인해 국제적 중재 기제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이는 국제 제도의 효과가 국내 민군관계의 상태에 의해 조건지어짐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2008-2011년 분쟁은 관리된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지상전과 포격전이라는 물리적 충돌은 발생했으나, 문민정부와 군부 간의 선호가 일치했기에 갈등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머물렀고, 공군력 투입과 같은 확전은 발생하지 않았다(Wagener 2011, 56). 반면, 2025년의 상황은 문민 통제를 이탈한 '자율적 확전'이었다. 결국 핵심 변수는 전투의 발생 유무가 아니라 통제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있다. 압도적인 F-16 전력을 보유하고도 공군력을 투입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례는 역량의 부재가 아닌, 철저히 통제된 확전 논리에 따른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다.
Ⅳ. 이원화된 주인 구조의 형성(2014-2025)
1. 선호 수렴의 붕괴와 2014년 쿠데타
3장에서 논의한 2008-2011년의 안정적인 갈등 관리는 아피싯 정부와 군부 간의 ‘선호 수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2011년 잉락 친나왓 정부의 출범은 이러한 균형을 붕괴시켰다. 친(親)탁신 세력의 복귀는 군부와의 ‘선호 괴리’를 다시금 심화시켰고, 이는 결국 2014년 쿠데타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쁘라윳 찬오차 장군의 2014년 5월 22일 권력 장악은 철저히 계산된 이틀간의 과정이었다. 그는 계엄령 선포 후 주요 정치 지도자들을 소집한 회담이 결렬되자 즉각 통치권 인수를 선언했다(BBC, 2014/05/22). 이어 국가평화질서위원회(NCPO)를 설치하고, 2007년 헌법을 정지시키며 본격적인 군사 통치 체제를 가동했다.
특히 2014년 임시헌법 제44조는 NCPO 의장에게 현대 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초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이 조항은 쁘라윳이 국가 안보와 국정 운영을 명분으로 입법·사법·행정을 초월하는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해당 명령은 사법적 심사 대상이 아닌 최종적이고 합법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Constitution of the Kingdom of Thailand (Interim) 2014, secs 44). 이에 대해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 엔 인권최고대표는 계엄령을 능가하는 억압적 조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UNOHCHR, 2015/04/02).
하지만 이번 정치 변동의 핵심은 쿠데타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후 제정된 2017년 헌법에 있다. 이 헌법은 군부의 일시적인 개입을 항구적인 통치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장에서 제시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는 바로 이 헌법적 장치를 통해 제도화되었다.
2. 2017년 헌법과 이원화된 주인 구조
국가평화질서위원회(NCPO) 주도로 제정된 2017년 헌법은 ‘보호된 민주주의(protected democracy)’(Ginsburg & Simpser 2014) 혹은 폴 챔버스(Chambers 2024a)가 명명한 ‘남용적 입헌주의(abusive constitutionalism)’로 평가된다.
이 체제의 첫 번째 축은 상원 구성(제269조)이었다. 2017년 헌법의 경과 규정에 따라 250명의 상원의원 전원이 NCPO 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특히 육·해·공군 사령관 등 군 수뇌부 6인이 당연직으로 포함되었다. 군 지휘관을 헌법기관인 입법부에 직접 편입시킨 것은 태국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조치였다. 이러한 상원 구성은 총리 선출 과정(제272조)에서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총리 선출을 위해서는 양원 합계 750석의 과반인 376석이 필요했는데, 군부가 장악한 상원 250석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특정 정당이 하원 500석을 모두 석권하더라도 상원의 묵인 없이는 집권이 불가능했다. 이 메커니즘은 어떤 총리 후보든 군부의 승인을 얻어야만 하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강제했다(East Asia Forum, 2023/08/05).
이러한 경과 규정은 2024년 5월 11일 만료되었고, 같은 해 6~7월에 걸쳐 새로운 상원의원 200명이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되었다(Human Rights Watch, 2024/05/02). 새 상원은 총리 선출권(제272조)을 상실했으며, 군 수뇌부 당연직 조항도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2025년 분쟁에서 문민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원화된 주인 구조’의 두 번째 축인 헌법재판소가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이원화된 구조의 핵심적 기관이다. 2006년 이후 타이락타이당(2007년), 인민권력당(2008년), 미래전진당(2020년), 전진당(2024년)에 이르기까지, 선거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주요 정당들은 예외 없이 해산되었다(Human Rights Watch 2024/08/07). 반면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Mérieau 2016, 455). 또한 싸막 순다라웻(2008년), 잉락 친나왓(2014년), 스렛타 타위신(2024년), 패통탄 친나왓(2025년) 등 4명의 민선 총리가 사법적 판단에 의해 직을 상실했으나(TIME, 2024/08/14), 군부 연계 인사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기득권층 이익을 위한 “대리왕(surrogate king)”으로 설계되었음을 입증한다(Mérieau 2021). 즉, '정치의 사법화'는 선거를 통해 부상하는 민주 세력을 견제하고 기득권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Mérieau 2016, 446).
또한 개헌 절차(제256조)는 이러한 구조의 변경을 어렵게 만드는 방벽 역할을 한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상원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기득권층의 동의 없는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2017년 이래 19개의 개헌안이 거부되었다(Fulcrum, 2021/03/24).
결국 2024년 상원 개편에도 불구하고, ‘이원화된 주인 구조’의 실질적 핵심—헌법재판소와 왕실-군부 네트워크—은 온존했으며, 이것이 2025년 사태의 구조적 배경이 되었다.
3. 실질적 주인으로서 왕실-군부 네트워크
2장에서 논의한 ‘명목적 주인(선출된 정부)’과 ‘실질적 주인(비선출 권력 네트워크)’의 이분법적 구조는 2017년 이후 태국 정치에서 하나의 확고한 제도로 정착했다. 군의 충성심이 선출된 권력이 아닌 왕실로 귀결되도록 강제하는 다양한 기제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선,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군 인사권은 철저히 군 내부 위계에 의해 통제된다. 매년 10월 단행되는 정기 인사는 “2008년 이후 강경 왕실주의 성향의 군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으며(Chambers 2024b, 298), 실제로 2023년 인사는 프어타이 당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왕실의 재가를 거쳤다. 특히 2018년 도입된 일명 ‘코 댕(Kho Daeng, 붉은 테두리)’ 시스템은 군 고위직 승진의 필수 요건으로 왕실 주관의 ‘904 훈련’ 이수를 규정함으로써, 군 지휘부가 문민정부가 아닌 왕실에 직접 책임을 지는 구조를 고착화했다(Chambers & Waitoolkiat 2016, 435).
조직 측면에서는 내부안보작전사령부(ISOC)는 ‘정부 안의 정부’로 기능한다(Pawakapan 2017, 3). 형식적으로는 총리가 사령관을 겸직하지만, 실질적인 작전 통제권은 부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이 행사하는 구조다(Reuters, 2021/03/04).
2016년 와치랄롱꼰 국왕의 즉위는 이러한 왕실과 군의 밀착을 더욱 가속화했다. 직업 군인 출신으로 실전 경험을 갖춘 와치랄롱꼰은 군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Hewison 2023, 737-739). 2019년 10월에는 긴급 칙령을 통해 핵심 전력인 제1보병연대와 제11보병연대의 지휘권을 육군에서 왕실로 이관했는데, 이는 헌법적으로 전례가 없는 조치였다(Khaosod English, 2019/10/01). 이로써 국왕은 정부의 지휘 체계를 벗어나 최소 5,000명 규모의 병력을 친위 병력으로 운용하며 직접 통제하게 되었다(New Mandala, 2020/07/27).
결론적으로 ‘코 댕’ 시스템은 군 고위 장교들의 최우선 충성 대상을 왕실로 설정하며, 이러한 충성심은 헌법, 민주주의, 문민 통치 원칙 등을 능가한다(Chambers 2024b, 18). 이중 구조 하에서 군부가 명목적 주인인 문민정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실질적 주인인 왕실 네트워크에 줄을 서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는 2장에서 분석한 ‘처벌 방향 역전’이 제도적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4. 2023년 선거와 선호 괴리의 심화
2023년 5월 총선에서 전진당이 거둔 승리는 최근 태국 역사에서 가장 선명한 민주적 열망을 입증했다. 이 당의 강령은 112조(왕실모독죄) 개정, 징병제 폐지, 그리고 군 개혁을 명시적인 목표로 제시했다(BBC, 2023/05/16). 그러나 헌법적 구조가 이 위임을 가로막았다. 피타 림짜른랏은 총리 선출 투표에서 324표를 얻었으나, 필요한 376표에서 52표가 부족했다. 249명의 상원의원 중 그를 지지한 사람은 단 1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Benar News, 2023/07/19).
결국 프어타이당은 112조 개혁을 배제하는 조건으로 군부 연계 정당 들과 연합하여 11개 정당, 314석 규모의 정부를 구성했다(AP News, 2023/08/21). 스렛타 타위신 후보는 상원의원 152명의 지지를 포함해 총 482표로 총리에 선출되었다. 같은 날, 탁신 친나왓이 15년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는데, 이는 기득권층과의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CNN News, 2023/08/22). 2024년 8월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은 태국 정치의 구조적 역학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진당 해산(8월 7일), 스렛타 총리 해임(8월 14일), 그리고 패통탄 친나왓의 취임(8월 18일)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CNN 2024/08/14).
패통탄은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통치를 시작했다. 부족한 정치 경험, ‘탁신의 대리인’이라는 인식, 그리고 군부 연계 정당에 의존해야 하는 연정 구조가 그녀의 입지를 좁혔다. 이러한 타협은 패통탄 총리가 군부를 상대로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적 족쇄로 작용했다. 결정적으로, 패통탄 정부와 군부 사이에는 3장에서 분석한 아피싯 시기의 ‘선호 수렴’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탁신 정부와 반탁신 군부 사이의 근본적인 ‘선호 괴리’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환경은 군이 문민정부의 지시에 불복하더라도 실질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을 고착화했다. ‘이원화된 주인 구조’ 하에서 군 지휘관들은 정부의 권위보다 왕실에 대한 봉사를 우선시하며 불복종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선출된 권력과 군부의 충돌 국면에서 일관되게 군의 손을 들어주었다(Mérieau 2016, 458-462). 바야흐로 처벌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군에 도전하는 민선 지도자는 직위 상실과 사법 처리를 감수해야 하는 반면, 문민 통제를 거부한 군부는 어떠한 제도적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2025년 국경분쟁은 바로 이러한 기울어진 구조 위에서 촉발되었다.
Ⅴ. 2025년 분쟁과 자율적 확전
1. 전화 유출과 청중비용의 폭발
2025년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은 1988년 태국-라오스 국경전쟁 이후 최초로 태국 공군이 실전 공중전을 감행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3장에서 논의한 2008-2011년의 분쟁이 지상전에 국한된 ‘관리된 갈등’이었다면, 2025년의 사태는 문민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 확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2장의 분석틀, 즉 ‘이원화된 주인 구조(경로 1)’와 ‘청중비용의 폭발(경로 2)’의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한다.
2025년 6월 15일, 패통탄 친나왓 총리는 5월 28일 총복(Chong Bok) 충돌로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한 후 고조된 긴장을 완화하고자 훈센 캄보디아 상원의장과 17분간 비공개 통화를 가졌다. 그러나 사흘 뒤인 6월 18일, 통화 녹취록이 전격 공개되면서 2장에서 제시한 ‘외부로부터 부과된 청중비용’ 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개된 녹취에서 패통탄 총리는 훈센을 “삼촌”이라 지칭하며 “조카를 좀 봐달라”고 읍소하거나,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제가 처리하겠다”는 등 저자세로 일관했다. 치명적인 대목은 그녀가 자국 군 지휘관인 분신 빳끌랑 제2군관구 사령관을 두고 “반대편에 서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강경 발언을 일삼는 인물로 폄하했다는 점이다(Lowy Institute, 2025/06/20).
이 유출이 가져온 정치적 파장은 즉각적이고 파괴적이었다. NIDA 여론조사에 따르면 패통탄의 지지율은 수일 만에 30.9%에서 9.2%로 곤두박질쳤는데, 이는 70%에 달하는 전례 없는 하락폭이었다(The Nation Thailand, 2025/06/29). 경제적 충격 또한 상당하여 태국 증권거래소(SET) 지수는 6월 23일 1,057.01포인트까지 급락, 5년 내 최저치를 경신했다(Thailand-Business, 2025/06/23). 정치권에서는 품짜이타이당(71석)의 연정 이탈(6월 18일)로 정부 여당이 255석이라는 불안한 과반으로 위축되었고, 거리에서는 패통탄 퇴진을 요구하는 1만~2만 명 규모의 시위대가 승리기념탑 광장을 메웠다(The Nation Thailand, 2025/06/30).
2장의 분석대로, 이러한 청중비용의 폭발은 태국의 특수한 정치적 맥락 위에서 증폭되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태국 민족주의 담론에서 ‘국가적 치욕의 상징’으로 인식된다(Strate 2017). 이런 상황에서 패통탄이 국경 수비 지휘관을 비난하고 캄보디아의 요구에 굴복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민족주의적 역린을 건드린 셈이었다. 여기에 반(反)탁신 정서가 기름을 부었다. 비판 세력은 즉각 이 통화를 친나왓 가문과 훈센 간의 오랜 정경유착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최종 판결문에서 패통탄이 외국 지도자에게 "국내 정치의 취약점을 노출했다"고 명시하며 이를 문제 삼았다(Constitutional Court of Thailand 2025/08/29).
이 유출은 단순 사고가 아닌 고도로 계산된 정치 공작의 성격이 짙다. 훈센은 패통탄의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하고 이를 약 80명의 관료들에게 공유했음을 시인했는데, 이는 사실상 유출을 의도한 배포 행위였다(The Nation Thailand, 2025/06/18). 탁신 친나왓조차 유출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훈센이 “태국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친나왓 가문의 실체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점은 이것이 의도된 도발임을 시사한다(The Bangkok Post, 2025/06/27).
페어론의 고전적 모델에서 청중비용은 지도자 자신의 공개적 공약 파기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2025년 태국 사례는 상대국의 전략적 행위로 인해 청중비용이 외부에서 강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패통탄은 자신의 공약이 아닌 훈센의 의도적 폭로에 의해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 이 “외부적 부과 메커니즘”은 패통탄의 외교적 입지를 완전히 박탈했다. 유출 이후 캄보디아에 대한 그 어떤 유화적 제스처도 국내에서는 ‘굴종’으로 해석되어, 감당하기 힘든 추가적인 청중비용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2. 분신 장군과 제도화된 불복종
청중비용의 폭발만으로는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닫게 된 원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2장의 분석대로 문민정부가 군을 통제할 실질적 역량을 보유했다면, 설령 정당성이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군의 독자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4장에서 논의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는 군이 명목적 주인(문민정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실질적 주인(왕실-군부 네트워크)에 줄을 서는 구조적 토대를 제공했다.
2024년 9월 제2군관구 사령관에 취임한 분신 빳끌랑(Bunsin Patklang) 중장의 행보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위기 전반에 걸친 그의 일련의 언행은 문민 통제에 대한 조직적인 무시로 일관되었다.
2025년 6월 14일, 분신은 사관생도 대상 강연에서 “정부에 이미 불참 의사를 전달했다”며 ICJ의 관할권을 공개적으로 부정했다(The Nation Thailand, 2025/06/14). 이는 군 지휘관이 정부 승인 없이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어 6월 21일에는 총사이따꾸(Chong Sai Taku) 국경 검문소의 무기한 폐쇄를 독단적으로 명령해 캄보디아의 반발을 불렀고, 이는 확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특히 말레이시아 휴전 합의 직후인 8월 10일, "사원은 우리 것이며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발언은 결정적이었다(Khaosod, 2025/08/10). 캄보디아 국방부는 이를 "영토 점령을 위한 사전 기획된 도발"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했다(Cambodia Ministry of National Defence Press Release, 2025/08/11).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이원화된 권력 구조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외무부는 분신을 문책하는 대신 그의 발언을 '해명'하며 사태 수습에 급급했다. 2장에서 분석한 "명목적 주인 vs 실질적 주인" 구도에서, 문민 정부는 분신을 처벌할 역량이 부재했다. 분신은 선출된 권력이 아닌 왕실 네트워크에 충성함으로써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불복종의 실체는 2025년 11월 8일, 분신이 전투 발발 당일(7월 24일) 정부의 휴전 명령을 거부했음을 시인하면서 명시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교전 6시간 만에 중단 명령이 내려왔지만, “침범된 땅을 되찾기 위해 군사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상급자에게 작전 지속을 요청했다고 밝혔다(Khmer Times, 2025/11/10). 그는 심지어 휴전 명령을 내린 인물의 실명을 거론할 경우 “그 사람은 태국을 떠나야 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후 전개된 상황은 군에 대한 면책 특권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입증했다. 11월 10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품탐 웨차야차이 부총리와 국방장관은 휴전 명령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는 해당 보도를 "가짜 뉴스"로 일축했다. 분신 역시 다음날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며 진화에 나섰다(The Nation Thailand, 2025/11/11). 결국 어떠한 징계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2장에서 이론화한 “제도화된 불복종”의 핵심이다. 이 구조 하에서 군의 일탈은 단순 “태만”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선택”이다. 분신은 명목적 주인(패통탄 정부)의 휴전 명령을 거부하면서, 실질적 주인(왕실-군부 네트워크)에 정렬하는 합리적 선택을 했다. 실질적 주인의 관점에서 분신은 “복무”한 것이므로 그 대가로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육군의 불복종 기제가 공군 작전으로 확장된 메커니즘 또한 주목해야 한다. 전통적인 육군 우위의 태국 군 문화에서 제2군사령관의 정보 판단은 공군 지휘부의 의사결정을 견인했다(Chambers 2024b, 45). 태국군 대변인의 설명대로 표적 선정은 3군의 합동 절차를 따랐으나(The Nation Thailand, 2025/12/10), 분신 장군이 휴전을 거부하고 교전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이상, 그가 제공하는 작전 정보가 공군 폭격의 근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즉, 문민정부의 휴전 지침보다 육군 현장 지휘관의 작전적 판단이 상위 권위로 작동한 것이다. 이는 ‘이원화된 주인 구조’가 육군을 넘어 공군 조직에도 내면화되어 있으며, 공군 역시 선출된 정부보다 왕실-군부 네트워크에 정렬된 육군 지휘부의 판단을 우선시했음을 시사한다.
3. 확전과 처벌 방향의 역전
2025년의 확전은 2장에서 제시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경로 1)'와 '청중비용의 폭발(경로 2)'이 동시에 작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보여준다. 결정적인 변곡점은 전투 발발 23일 전인 7월 1일, 헌법재판소가 윤리 문제를 들어 패통탄 총리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발생했다.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던 문민 지도자가 위기의 정점에서 배제되면서 심각한 권력 공백이 형성된 것이다. 통제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7월 24일 쁘라삿 따므은톰 사원 인근의 충돌은 즉각적인 공중전으로 비화되었다. 태국 공군은 F-16A/B 편대를 급파했는데, 이는 1988년 국경전쟁 이후 최초의 실전 출격이었다. 이어 7월 26일에는 JAS 39 그리펜 전투기까지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작전 범위는 12개 이상의 지역으로 확대되어 캄보디아군 제8·9보병사단 본부와 BM-21 로켓 발사대 진지가 주요 타격 목표가 되었다(CSIS, 2025/07/24). 이로 인해 48명 이상의 사망자와 23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3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피란길에 오르는 등 인적 피해는 막대했다(Britannica, 2025/12/10).
이러한 위기 국면은 8월 29일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통해 정치적 파국으로 귀결되었다. 재판부는 패통탄 총리에게 “윤리 기준의 심각한 위반”을 이유로 해임을 선고했는데, 판결문은 총리의 분신 장군 비판 발언을 국내 정치의 약점을 노출한 행위로 규정했다(TIME, 2025/08/29). 이 판결로 2장에서 이론화한 ‘처벌 기제의 역전’은 현실이 되었다. 긴장 완화를 시도했던 민선 총리는 영구히 축출된 반면, 정부의 휴전 명령을 거부하고 확전을 주도한 군 지휘관은 어떠한 문책도 없이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태국의 이원화된 구조에서는 명목적 주인(정부)을 거부하고 실질적 주인(왕실-군부 네트워크)에 충성한 대리인(군)이 보호받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 등 강력한 외부 압력으로 7월 28일 일시적 휴전이 성사되고 10월 쿠알라룸푸르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12월의 전투 재개는 국내 정치 구조에 뿌리박은 갈등이 외부 압력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방증한다. 이는 정부와 군의 선호가 일치했고 지도력을 훼손하는 결정적 스캔들도 없었던 2008-2011년 사례와 극명히 대조된다.
결론적으로 2025년 사태는 청중비용이 문민 지도자의 외교적 입지를 제약하고, 이원화된 주인 구조가 군의 독단적 행동을 가능케 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분신 장군이 처벌받지 않은 것은 문민 통제 규범보다 기득권 네트워크의 민족주의적 이해관계가 더 상위의 가치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민군 관계의 재정립 없이는 현재의 휴전 역시 50만 피란민을 남긴 채 또 다른 충돌을 예고하는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머무를 것이다(The Straits Times, 2025/12/13).
Ⅵ. 결론
본 연구는 2025년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이 1988년 이후 최초의 공중전으로 비화된 원인을 규명했다. 핵심 발견은 다음과 같다. 2017년 헌법이 제도화한 ‘이원화된 주인 구조’(경로 1)와 훈센의 전화 유출이 촉발한 ‘청중비용의 외부적 부과’(경로 2)가 결합하여, 긴장완화를 시도한 문민 지도자는 축출되고 휴전 명령을 거부한 군 지휘관은 보호받는 ‘처벌 방향 역전’이 발생했다. 이는 정부-군부 간 선호 수렴으로 갈등이 통제되었던 2008-2011년과 대조된다. 결국 확전의 결정적 변수는 전투의 발생 자체가 아니라 ‘통제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론적 측면에서 본 연구는 피버(Feaver)의 주인-대리인 모델을 비서구 하이브리드 체제에 맞게 확장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단일한 문민 주인을 가정하는 기존 모델과 달리, 태국은 선출된 정부와 비선출 권력 네트워크가 공존하는 이중 구조를 띤다. 이 구조 하에서 군의 불복종은 단순한 ‘태만’이 아니라, 대립하는 두 주인 사이에서 누구에게 줄을 설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다. 분신 장군의 항명은 명목적 주인을 거부하고 실질적 주인에게 ‘복무’함으로써 제도적 안전을 확보한 합리적 행위였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제가 육군을 넘어 공군 조직에도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군 역시 문민정부의 휴전 지침보다 육군 현장 지휘관의 작전적 판단을 상위 권위로 인식하고 행동했다.
또한 본 연구는 피어론(Fearon)의 청중비용 이론을 보완하여 ‘외부적 부과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지도자의 자발적 공약 파기에서 비용이 발생한다는 기존 전제와 달리, 패통탄 총리는 상대국의 전략적 폭로에 의해 강제된 청중비용에 직면했다. 사적 외교 채널의 공개가 반(反)탁신 정서나 영토 민족주의와 같은 기존의 정치적 균열을 자극할 때, 그 파급력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비공개 외교가 언제든 무기화될 수 있으며, 국내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국가의 지도자에게 이것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아세안의 분쟁 관리 역량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아세안의 '정부 대 정부' 외교는 각국 정부가 자국 군을 통제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유효하다. 2011년에는 이 전제가 작동하여 인도네시아의 중재와 ICJ 의 개입이 효과를 거두었으나, 2025년에는 문민 통제 실패로 인해 이러한 외교적 기제들이 무력화되었다.
본 연구의 분석틀은 선출된 정부와 비선출 권력이 공존하는 유사한 하이브리드 체제들로 확장 가능하며, 형식적인 문민 통제 제도가 실질적인 군 통제를 담보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물론 본 연구는 분쟁이 진행 중이라는 점과 군 내부 자료 접근의 한계를 갖는다. 향후 이 분석틀을 다른 하이브리드 체제에 적용하는 비교 연구가 요구된다.
2025년 12월의 전투 재개는 외부의 압력이 갈등을 일시 봉합할 수는 있어도, 국내 정치 구조에 기인한 근본 원인까지 제거할 수는 없음을 입증했다. 왜곡된 민군 관계를 바로잡지 않는 한, 지금의 휴전 합의는 진정한 평화가 아닌 ‘일시적 소강상태’에 머무를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평화가 통념보다 훨씬 취약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결국 역내 안정의 열쇠는 민주적 문민 통제의 실질적 확립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표 1 이원화된 주인 구조와 제도적 기제
| 구분 | 명목적 주인 | 실질적 주인 |
|---|---|---|
| 주체 | 선출된 정부 (총리/내각) | 왕실-군부 네트워크 |
| 정당성 기반 | 민주적 선거 | 헌법적 권위 + 전통적 충성 |
| 핵심 제도 | 하원, 내각 | 헌법재판소, 추밀원, 상원(~2024.5) |
| 군에 대한 통제 기제 | 국방부 지휘체계 (형식적) | 코댕 시스템, 904 훈련, 인사권 |
| 처벌 역량 | 제한적 (헌재에 의해 무력화 가능) | 실질적 (정당 해산, 총리 해임) |
| 군의 정렬 유인 | 낮음 (처벌 역량 부재) | 높음 (승진, 보호 보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