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권외교의 이중성
The Selective Application of Human Rights Norms in Japanese Diplomacy: A Comparison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and the Abductions of Japanese Citizens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교차 분석
* 성공회대학교 인문융합콘텐츠학부 조교수, SungKongHoe University, areum@skhu.ac.kr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26.45.2.241
초록
본 연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라는 두 중대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상반된 대응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 인권외교의 이중성을 비교외교정책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두 사안은 모두 ‘국가가 조직적으로 자행한 중대 인권침해’라는 공통 범주에 속함에도 각 사안에서 일본이 점하는 위치성(가해자/피해자)에 따라 대응이 달라졌다. 본 연구는 ①사실 인정 ②책임 인정 ③법적 논리 동원 ④피해자 처우 ⑤교육과 기억 ⑥정체성과 민족주의의 6대 차원에서 이를 교차 비교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미해결”된 국가의 주권 및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인 동시에, 기본적 인권 침해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라며 지속적 책임을 추궁하는 방향적 비대칭을 규명했다. 특히 일본은 자국이 피해자인 사안에서는 인권규범의 설계자를 자임하면서도 가해 사안에서는 기존 조약기구의 권고조차 반박하여, 규범의 생산에는 적극적이되 소비에는 선택적인 이중성을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선택성은 가해·피해라는 위치성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작동해 왔다. 이는 일본의 인권외교가 인권규범의 실현보다 그 도구화에 기울어 왔음을 뜻하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권규범을 선택적으로 적용해 왔다는 점에서 일본 외교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duality of Japan's human rights diplomacy from a comparative foreign policy perspective, focusing on the Japanese government's divergent responses to two cases of grave human rights violations: the issue of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and North Korea's abduction of Japanese citizens. Although both cases fall within the same category of systematic, state-perpetrated human rights violations, Japan's response has varied according to its own positionality in each—as the perpetrator in the former and the victim in the latter.
Employing a cross-case comparison along six dimensions—(1) acknowledgment of facts, (2) acknowledgment of responsibility, (3) mobilization of legal arguments, (4) treatment of victims, (5) education and memory, and (6) identity and nationalism—the study identifies a directional asymmetry in Japan's approach. On the "comfort women" issue, the Japanese government maintains that the matter has been "finally and irreversibly" resolved. On the abduction issue, by contrast, it insists that the matter remains unresolved and continues to press for accountability. It frames the abductions not only as a grave threat to national sovereignty and citizen safety but also as a universal human rights concern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Notably, Japan positions itself as an architect of human rights norms when it is the victim, yet contests even the recommendations of established treaty bodies when it is the perpetrator. This reveals a duality: Japan is assertive in the production of norms but selective in their application. This selectivity has operated not only along the perpetrator–victim axis but also according to political calculation. Japan's human rights diplomacy has thus tended toward the instrumentalization of human rights norms rather than their realization, applying them selectively as political circumstances dictate.
Ⅰ. 서론
2026년 5월 30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의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대집회에 참석하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고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겠다고 밝혔다(日本経済新聞 2026/05/30). 일본인 납치문제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에 발생하였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직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17명 중 5명이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그런데, 북한이 나머지 12명에 대해서는 이미 사망했거나 북한에 입국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밝혔고, 이에 일본 정부가 재조사와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일본인 납치 피해자 및 가족의 고령 사망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관련 당사자 전원이 사망할 경우에는 문제의 실질적 해결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은 일본 정부가 직면한 시급한 정책적 과제이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종군위안부’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며(衆議院 1997),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1월 8일부터 2026년 현재까지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하나의 정부가 한쪽에서는 피해자로서 완전한 해결을 촉구하고, 다른 쪽에서는 정권에 따라 가해자임을 부정하며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두 사안은 ‘인권’ 문제라는 성격을 공유할 뿐 아니라, 대두된 시기도 비슷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두 사안은 ‘인권’ 문제라는 점과 대두된 시기가 비슷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1991년 8월 김학순의 공개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의제화되었다. 그리고 1991년 11월 일본 정부는 북일 수교 교섭에서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田口八重子, 다구치 야에코)의 신원 확인을 북한에 요구했고, 이를 통해 납치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후 약 35년 동안 두 사안은 동일한 정부, 상당 부분 중첩되는 시기, 동일한 국제 인권규범 환경 속에서 전개되었다. 각 사안에서 다른 점은 일본이 점하는 위치(가해자, 피해자)뿐이었다.1) 그리고 일본 정부의 대응은 이 위치성에 따라 사실의 인정에서 책임의 규정, 법적 논리의 선택, 피해자의 처우,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차원에서 상반된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두 사안을 살펴보면 해결의 시급성이 동일하게 근년 대두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한국 정부에 등록된 240명의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2026년 3월 기준 5명뿐이다(조선일보 2026/03/29; 경향신문 2026/07/09). 일본인 납치 문제의 경우, 피해자의 연령뿐만 아니라 납치 피해자의 부모 세대 역시 고령화되고 있다. 특히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의 부친 시게루(横田滋)는 2020년 딸의 귀국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 및 관계자의 자연사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가속화될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간은 두 사안에 대한 진실 규명과 구제의 실효성을 잠식시킨다. 모든 피해자가 자연사할 경우, 일본 정부는 결국 정치적 타협을 통해 사안을 종결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진정한 의미의 해결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에 대하여 일본 정부가 사안별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해 왔다고 분석한 본 연구의 의의는 단순한 학술적 측면을 넘어 두 사안의 피해자 모두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현실적 시급성을 상기시킨다는 점에 있다.
본 연구의 질문은 크게 세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두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둘째, 그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셋째, 그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일본 외교에 어떤 결과를 낳는가이다.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6가지 측면에서 각 사안을 교차 비교하며,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구조·국내정치·정체성의 세 레벨에서 분석하겠다. 그리고 본 연구는 국제법적 분석보다 비교외교정책적 측면에서 두 사안을 분석하여 국가가 관여된 중대 ‘인권침해’라는 공통의 규범 범주에 속하는 것에 대해 교차분석하겠다.
Ⅱ. 선행연구 및 분석틀
1.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선행연구
한국학술지인용색인을 통해 위안부와 관련된 논문을 검색해 보면, 정규논문의 경우 총 1,128편이 그동안 출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 문제의 사회적 파장은 컸다. 하지만, 당시 상황과 달리 학술연구는 더디게 시작되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1996년에 1편의 논문이 발표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2001년에 1편, 2002년부터 2009년에는 매년 10편 이상의 논문이 출판되었다. 특히 2007년에는 27편의 논문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2025년까지는 매년 30편 이상의 논문이 출판되었다. 특히 2010년 40편, 2014년 60편, 2017년 82편, 그리고 2019년 83편으로 정점을 찍은 뒤에도 꾸준히 수십 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시기별 변곡점으로는 2005년 일본 문부성이 역사 왜곡 교과서 검정 합격 공식 발표,2) 2011년 헌법재판소의 판결,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2017년 정권 교체(문재인 정부) 및 재검토 국면에서 연구가 활성화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중 두 시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 헌법재판소 부작위 판결이 있던 2011년 이후이다. 2011년 헌재는 판결을 통해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는 위헌임을 확인한다’고 주문하였다(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011). 그 결과 점진적으로 헌재 판결과 관련된 연구가 증가하였다. 국제법상 위안부 문제를 논하는 연구는 꾸준히 출판되었지만, 2011년 이후에는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와 맥락을 살펴보며 한일 외교적 측면에서의 분석, 위안부 문제의 인권적 측면에서의 해결 모색과 관련된 연구(조시현 2012; 김창록 2013)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눈여겨볼 시기는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이다. 2015년 이후 박근혜 정부 시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대일교섭을 분석하는 연구가 증가하였다. 특히 손열(2018)은 한국인 55.5%는 위안부 합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여론조사 응답자의 75%가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일본 여론도 미해결 인식이 54%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3) 즉, 합의는 했지만,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문제를 풀어가려 하기보다는 외교적 방식으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정치적 수법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는 것이다(손열 2018, 169-171). 그리고 이러한 2015 한일 합의에서의 외교 실패 요인에 대해 2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분석한다. 첫째, 미일동맹이 공고한 상황에서 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을 압박하려 한 것은 일본의 국력을 과소평가한 순진한 접근이었고, 세련된 공공외교 역량도 부족했다는 것이다(손열 2018, 172). 둘째, 대통령과 청와대 소수 참모 중심의 하향식·비밀주의적 의사결정으로 관련 부처, 전문가, 피해자단체의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분석한다(손열 2018, 172).
2.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관한 선행연구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관한 연구의 경우,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및 북일평양선언을 통해 이루어진 북한의 납치 문제 인정 및 사과 그리고 요코타 메구미(横田 めぐみ) 유골 이슈 이후 다수 발표되었다. 2000년대에는 주로 납치 문제가 일본의 대북 여론과 북일교섭에 미친 영향을 거시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눈에 띄었다. 일본 내부 여론과 대북 정책 변화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연구(손영주 2007), 일본 의회 차원의 구체적인 기구 활동과 제도적 변화를 분석한 연구(이종국 2008), 고이즈미 정권의 대북 협상 스타일과 상호주의 전략을 평가한 연구(윤홍석 2007)가 그 예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일본의 정책을 분석 및 해석하는 연구도 등장했다. 우선 납치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동원하여 활용한 것으로 분석한 Samuels(2010)의 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Samuels(2010)는 북한의 납치에 대해 일본의 경우 보수 정치인들과 우파 시민단체는 납치 피해 서사를 적극 동원하여 대중적 분노를 조직하였다고 분석했다. 납치 문제의 정치화를 통해 정책을 장악하였고, 북·일 국교 정상화보다 대북 제재와 강경론을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Samuels(2010)는 일본이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납치라는 감정적 서사를 동원하고 통제한 정치적 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과 역량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그 밖에도 납치문제를 ‘인권’이라는 보편적 틀로 규정하고, 이를 일본의 독자적인 ‘북한 인권 외교’ 패러다임 안에서 해석한 연구도 있다(이기완, 2012). 그리고 박성황(2018)은 납치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인권 유린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일본 정부의 이중적 태도(피해자 중심주의 vs 가해 사실 축소·은폐)를 배타적 민족주의와 연결해 분석하였다. 하지만,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의 보수 정치가들을 ‘집단적 동질감과 연대감에 기반한 공동체를 중시하는 순수한 의미의 민족주의자’로 일괄 규정하는 것은 사실관계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20198년 당시 아베 정권이 조건 없는 북한과의 회담을 제안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두 사안에 대한 비교 분석을 민족주의가 아닌 다른 관점과 기준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권이 북한의 납치 문제를 ‘국난(국가적 위기)’으로 프레임화하여,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 체제를 탈피하고 안보 정책을 개혁하는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한 과정을 사회구성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セバスティアン・マスロー 외 1, 2024)가 있다. 이 외에도 북일 간의 교착상태를 분석한 두 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2014년 ‘스톡홀름 합의’ 이후 일본의 대북 정책과 납치 문제 재조사 과정 및 정체 원인을 분석한 연구(西野純也 2015)도 있다. 그리고 2002년 공식화된 일본인 납치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해결 전략과 북한의 대내외적 대응을 분석하며, 일본의 강경책이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피해국으로의 이미지로 일본이 전환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북일 간의 갈등 및 교착상태를 분석한 연구(임상순 2013)이다.
3. 연구의 목적과 교차 분석틀
본 연구 목적은 두 사안의 법적 동질성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안이 모두 ‘국가 권력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중대 인권침해’라는 공통의 규범 범주에 속하지만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방침 및 대응이 다른 것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4) 다만, 두 사안은 규모(위안부: 최소 2만에서 40만 명5), 일본인 납치: 17명), 시기(위안부: 전시·식민지기, 일본인 납치: 평시), 계속성(위안부: 종결된 역사 속 피해, 일본인 납치: 진행 중인 억류6))에서 명백히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이 두 사안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이중적인 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일본군 위안소의 이용 대상이 일본 군인과 군무원(군속)에 한정되었고, 일본군이 ‘위안부’를 동원 및 수송했을 뿐 아니라 위안소를 감독 통제하는 궁극적인 주체였다(국사편찬위원회 n.d.). 따라서 ‘위안부’를 둘러싼 자발과 강제에 대한 이분법을 넘어 ‘군 위안부’를 국가와 군대에 의한 여성 인권의 유린, 성폭력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국사편찬위원회 n.d.). 즉, 전시에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여성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저지른 성범죄로 인한 여성의 인권침해 구제라는 중대한 문제에 관한 국제규범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7)
위안부 제도의 국제적 성격 규정은 성노예와 강제노동이다.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E/CN.4/1996/53/Add.1, 1996)와 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의 맥두걸 보고서(E/CN.4/Sub.2/1998/ 13, 1998)는 위안부 제도를 군사적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로 규정하였고, ILO 전문가위원회는 1996년 이래 위안부 동원이 일본이 1932년에 비준한 강제노동협약(제29호)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반복하여 표명하였다. 강제노동협약 위반에서 주목할 점은 위안부 동원 당시 일본을 구속하던 현행 규범이었다는 점이다. 즉,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이를 통해 위안부 제도의 위법성 판단은 사후 규범의 소급 적용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다.
한편 북한의 납치문제8)의 경우, 1950년부터 현재까지 북한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외국 국적자에 대한 대규모의 체계적인 납치 및 송환거부가 있어 왔다(백범석 2015, 58-59). 이러한 사태는 국제법상 보장되는 다른 국가의 주권 및 외국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비인도적 행위이다(백범석 2015, 58-59). 강제실종은 그 자체로서도 하나의 인권침해 사안이 될 수 있으며, 그 내부적으로 여러 종류의 인권이 동시적으로 위반될 수 있다(정구연 2015, 24). 중첩적으로 위반될 수 있는 인권은 자유권(right to liberty), 고문당하지 않을 권리(right not to be subjected to torture), 생명권(right to life), 가족 (특히 여성)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등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9)(정구연 2015, 24).
이러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안고 있는 일본인 납치 문제도 강제실종으로 볼 수 있다.10) 유엔 강제실종실무그룹(WGEID)은 일본인 피랍 사건들을 개별 사건으로 등록해 왔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보고서(A/HRC/25/63)에서 북한의 외국인 납치가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요컨대 두 사안 모두 국제 공식 문서에 의해 국가의 조직적 중대 인권침해로 규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인권 규범에 관한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입장에 따라 어떻게 이중적 정책을 추진하는지에 대해 비교 분석하겠다.
행위 당시의 규범이라는 기준을 정밀하게 적용하면 식민지라는 변수의 법적 함의도 드러난다. 일본은 1925년 「여성과 아동의 이송에 관한 국제조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the Traffic in Women and Children, 1921)」에 가입하면서 식민지 적용 제외를 선언하여 조선과 대만을 조약의 보호 범위 밖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식민지 여성을 제외한 채 일본인 여성만 보호의 대상으로 삼은 선언이었으며, 위안부 동원의 피해가 식민지 여성에게 집중된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수의 연구자가 지적하듯 식민지 신민이라는 피해자의 지위는 일본의 책임을 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의 의도적 박탈이라는 차원에서 책임의 구조를 가중시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는 문제는 두 사안의 차이가 대응의 차이를 정당화하는가이다. 본 연구는 여기서 대응의 강도와 방향을 구분한다. 규모·시기·계속성의 차이, 특히 납치 피해자의 생존 가능성과 구출의 시급성은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에 더 많은 외교 자원을 투입하는 것, 즉 대응 강도의 비대칭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인권 규범 사안에 대한 대응 방향이 상반된다면 이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정리하면,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의 요구는 그 자체로 정당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추궁 역시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가 문제 삼는 것은 두 정당한 요구를 한 정부가 상반된 원칙 위에서 운용한다는 사실, 즉 비판의 내용이 아니라 규범 운용의 이중성이다. 여기서 ‘이중성’이라는 용어는 도덕적 비난어가 아니라, 위치성에 따라 규범의 적용 방향이 반전되는 패턴을 가리키는 기술적(記述的) 개념으로 한정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본 연구의 분석틀을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독립변수는 각 사안에서 일본이 점하는 위치성(가해/피해)이고, 종속변수는 일본 정부의 대응이다. 각 사안에 있어서 피해자 측의 요구사항 혹은 구제방안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눠 연구한다. ①사실 인정: 피해 사실과 국가 개입을 인정하는가. ②책임 인정: 책임을 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가, 도의적인 것으로 한정하는가. ③법적 논리의 동원: 시간·면제·국제기구에 관한 법리를 어느 방향으로 선택하는가. ④피해자 처우: 피해자와 가족을 정책 과정의 주체로 세우는가, 배제하는가. ⑤교육과 기억: 교과서와 공식 언어가 사안을 확대하는가, 축소하는가. ⑥정체성과 민족주의: 사안이 국민 담론(집단 기억)에 동원되는가, 회피되는가에 대해 분석한다.
이러한 분류는 2005년 유엔 총회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 및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 피해자의 구제 및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A/RES/60/147)을 참고하였다11). 이와 더불어 ‘위안부’ 7가지 요구 사항12)과 일본인 납치 문제 요구사항13)을 반영한 것이다. 즉, 각 항목들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일본인 납치 피해자 측이 가해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이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표 1> 분석틀: 위치성에 따른 6대 차원 비교 모델
| 차원 | 핵심 질문 | 주요 관찰 지표 |
|---|---|---|
| ① 사실 인정 | 피해 사실과 국가 개입을 인정하는가 | 공식 담화·각의결정·국회 답변에서의 인정 범위 |
| ② 책임 인정 | 책임을 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가, 도의적인 것으로 한정하는가 | 책임의 성격 규정, 금전 조치의 명명(배상/보상/지원) |
| ③ 법적 논리의 동원 | 시간·면제·국제기구에 관한 법리를 어느 방향으로 선택하는가 | 시제법·시효·계속범·주권면제의 원용 양상, 인권기구 권고에 대한 태도 |
| ④ 피해자 처우 | 피해자와 가족을 정책 과정의 주체로 세우는가 | 협상 과정에서의 협의 여부, 피해자 단체의 제도적 지위와 영향력 |
| ⑤ 교육·기억 | 교과서와 공식 언어가 사안을 확대하는가, 축소하는가 | 교과서 기술의 추이, 공식 용어와 영문 표기의 선택 |
| ⑥ 정체성·민족주의 | 사안이 국민 담론에 동원되는가, 회피되는가 | 정상·각료 담론의 빈도와 프레임, 상징 정치(기념일·배지 등) |
이 설계의 추론 논리를 명시해 두면 다음과 같다. 만일 일본의 대응이 사안의 객관적 성격―규모, 시기, 계속성, 증거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면, 여섯 차원에 걸친 대응의 차이는 차원별로 상이한 방향을 보이거나 적어도 일부 차원에서는 수렴하여야 한다. 반면 대응이 위치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모든 차원에서 동일한 방향의 비대칭이 관찰되어야 한다. 또한 사안의 객관적 성격은 분석기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반면 일본의 국내 정치 지형은 변동하였으므로, 비대칭의 강도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변동한다면 이는 국내정치 설명을 지지하는 추가 증거가 된다. 이하의 분석은 이 두 가지 관찰 가능한 함의를 기준으로 진행된다.
Ⅲ. 외교 행태의 비대칭: 종결의 외교와 지속의 외교
1. 위안부 문제: 종결 지향의 방어 외교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外務省 2021). 그리고 2015년 12월 한일 외교장관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하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外務省 2021). 한편, 일본 정부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여 의료·복지 지원사업과 ‘보상금(償い金)’ 지급, 역대 총리의 사죄 편지(おわびの手紙) 전달 등 “최대한의 노력”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도적 조치의 일환으로 2016년 8월,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하였으며, 합의시점 당시 생존자 47명 중 35명, 사망자 199명 중 64명의 유족에게 자금이 지급되어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평가를 얻었다(多くの元慰安婦の方々の評価を得ています)”고 자평한다(外務省 2021).
이처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해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 이에 맞춰 외교의 일관된 목표는 종결이었다. 그 첫 번째 방패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다. 일본 정부는 협정 제2조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 문언을 들어 위안부 피해자의 청구권이 법적으로 소멸하였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1993년 고노 담화가 군의 관여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것은 사실 인정 차원의 중요한 진전이었으나, 일본 정부는 이를 법적 책임의 인정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7년 3월 아베 내각은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軍や官憲によるいわゆる強制連行を直接示すような記述も見当たらなかった)’는 취지의 각의결정 답변서를 채택하여, 고노 담화를 형식적으로 계승하면서 그 핵심인 강제성 인정을 협의로 재해석하는 이중 전략을 제도화하였다.14)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에서도 두드러졌다.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및 그 군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전시 성노예 사건이며, 반인도적 범죄이자 전쟁범죄에 해당하므로 일본이 국가적 ‘법적 책임’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배상을 일본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15)(조윤수 2014, 91). 이 기금은 국민 모금으로 위로금을 지급하고 정부 예산은 의료·복지 사업에 한정함으로써, 책임을 ‘도의적 책임’으로 규정하고 법적 배상과의 단절을 구조화하였다. 다수의 한국인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한 것은 바로 이 성격 규정 때문이었다(신운용 2024).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이 설계의 완성판이다. 합의는 ‘군의 관여’와 ‘정부의 책임 통감’을 표명하고 정부 예산 10억 엔의 출연을 약속하였으나, 그 책임의 성격은 특정되지 않았고 출연금은 ‘배상이 아니’라는 점이 일본 측에 의해 거듭 확인되었다. 무엇보다 합의는 조약이 아닌 구두 발표의 형식을 취하여 법적 구속력을 회피하면서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언을 통해 종결의 효과만은 최대화하였다. 형식의 비구속성과 효과의 종결성이라는 이 비대칭적 조합은, 뒤에서 보듯 납치문제에서 일본이 추구한 합의 형식과 정확히 대조된다.
2015년 합의에 이르는 경로 자체가 종결 외교의 수동적 성격을 보여준다. 합의는 일본의 자발적 결단이 아니라, 2011년 8월 한국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청구권 분쟁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부작위를 위헌으로 확인하면서 한국 측이 협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의 산물이었다. 일본은 사법적 압력이 외교적 압력으로 전환된 뒤에야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협상의 목표는 일관되게 문제의 해소가 아니라 의제의 봉인이었다. 국제 무대에서의 대응 양식도 일찍이 정형화되었다.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가 제출되자 일본 정부가 이를 반박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국들에 배포하려다 국제적 비판 속에 철회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유엔 보고서를 수용이 아니라 저지의 대상으로 취급한 이 일화는 이후 20년에 걸쳐 CEDAW와 CAT의 권고 반박으로 이어지는 대응 양식의 원형이 되었다.
사법 국면에서 일본의 전략은 무대응의 제도화였다. 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 배춘희 등 12명의 청구를 인용하여 일본국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자,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를 들어 판결 자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소송 절차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같은 해 4월 21일 다른 재판부가 주권면제를 이유로 이용수 등의 소를 각하하면서 한국 사법부 내부의 판단이 갈렸으나, 2023년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이 각하 판결을 취소하고 배상을 명하였고 일본이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되었다. 2025년 4월 청주지방법원의 세 번째 배상판결 역시 일본의 항소 포기로 5월에 확정되었다. 출석하지도 다투지도 항소하지도 않는 이 일관된 부재의 전략은 한국 법원의 재판권 자체를 승인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서, 주권면제 주장의 소송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같은 시기 일본은 2018년 한국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방침에 대해서는 합의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는데, 자국이 구속력 없는 형식으로 설계한 합의의 이행은 요구하면서 자국에 불리한 확정판결의 이행은 거부하는 이 조합은 위안부 외교의 종결 지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 납치문제: 지속 지향의 공세 외교
일본인 납치문제의 경우, 북한은 납치 피해자 5명과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한 뒤 납치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이다(DailyNK 2007/09/17). 그리고 2014년 유엔에서 열린 인권설명회에서 최명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이 일본인 납치 문제는 모두 해결된 사안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VOA 뉴스 2014/10/09). 그리고 2020년에도 북한 외무성은“아베는 우리의 선의에 의하여 다 해결된 납치 문제를 시종일관 자기의 정치적 인기와 몸값을 올리는 데 악용했다”며 “납치문제는 이미 되돌려 세울 수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해결됐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KBS뉴스 2020/09/30).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연합뉴스 2020/12/24; 外務省2026/07/10).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납치를 인정 및 사과하고 생존 피해자 5명이 귀국하였을 때에도, 일본은 북한에게 사망자로 통보된 피해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전제로 재조사를 요구하였다16)(朝日新聞 2004/05/22). 즉, 일본 정부는 모든 납치 피해자의 안전 확보 및 즉시 귀국, 납치 피해에 대한 진상 규명, 납치 실행범의 인도라는 3대 요구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왔다(内閣府大臣官房政府広報室2025/05/15). 일본은 이러한 요구가 충족되어야 납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북일 국교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外務省2004). 이러한 태도는 위안부 문제와 상반된다. 즉,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1965년 협정과 2015년 합의를 통해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실 인정을 둘러싼 공방은 2004년에 정점에 달하였다. 북한이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이라며 인도한 시료에서 일본 측 감정 결과 타인의 DNA가 검출되었다고 발표되자17) 일본 여론은 격앙되었고, 북한이 거짓 자료로 종결을 시도한다는 인식이 국민적으로 고착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사망으로 통보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생존을 전제로 한 재조사와 귀국을 요구하는 것을 공식 원칙으로 삼았다. 상대국이 제시하는 불리한 사실 인정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하고 자국에 유리한 가능성은 전제로 채택하는 이 증거 평가의 태도는, 위안부 문제에서 피해자 증언의 증거 가치를 끊임없이 의문시하고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공문서의 부재를 결정적 근거로 취급해 온 태도와 거울처럼 대조된다. 어느 쪽에서나 증거의 문턱은 결론에 봉사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은 2002년 10월에 있었다. 평양선언에 따라 일시 귀국의 형식으로 일본 땅을 밟은 피해자 5명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외무성 일각의 신중론을 누르고 가족회와 구하는 모임의 요구가 당시 관방부장관 아베 신조의 주도로 관철된 이 결정은, 북일 관계의 경색이라는 외교적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피해자와 가족의 의사를 정책의 최우선에 둔 사례였다. 본 연구의 관점에서 이 장면의 의미는 분명하다. 자국민 피해자는 외교의 객체가 아니라 외교적 약속을 뒤집을 수 있는 주체였던 것이며, 같은 정부가 13년 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전 협의 없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통보한 장면과 이보다 선명한 대조는 없다.
납치 외교는 고도로 제도화되었다. 2004년의 특정선박입항금지특별조치법과 외환·외국무역법 개정으로 단독 제재의 법적 기반이 정비되었고, 2006년에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납치문제대책본부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납치문제 해결을 국가의 책무로 명시한 이른바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다. 전담 부처, 전용 예산, 다국어 홍보 콘텐츠, 매년의 국제 심포지엄으로 구성된 이 체계는 단일 인권 사안으로는 이례적인 국가적 동원이다. 국제 무대에서도 납치문제는 미일 정상회담과 6자회담의 상시 의제로 격상되었고, 2026년 현재에도 미일 정상은 납치문제 해결에 대한 지지를 공동으로 확인하고 있다.
합의의 형식 또한 대조적이다. 2014년 5월의 스톡홀름 합의에서 일본은 납치 피해자, 행방불명자, 일본인 유골, 잔류 일본인·일본인 배우자라는 4대 의제를 문서에 명문화하고 북한의 포괄적 재조사를 국교정상화 교섭 및 제재 완화와 연계하였다. 구두 발표로 책임의 문언화를 회피한 2015년 위안부 합의와 달리, 자국민 피해 사안에서는 의제의 구체화와 명문화를 관철한 것이다. 합의는 2016년 북한의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로 좌초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종결이 아닌 미해결의 누적으로 처리하였다. 이후 아베, 기시다, 이시바 내각을 거쳐 다카이치 내각에 이르기까지 ‘조건 없는 정상회담’ 제안과 전원 귀국 요구는 정권을 초월하여 계승되고 있으며, 2026년 5월의 다카이치 총리 발언은 그 최신 국면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정상회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일축하는 상황에서도 일본이 의제를 거두지 않는 것은, 납치 외교에서 시간이 일본의 적이 아니라 무기임을 보여준다.
3. 소결: 형식·구체성·종결 태도의 비대칭
이상의 검토는 사실 인정과 책임 인정의 두 차원에서 뚜렷한 비대칭을 드러낸다. 사실 인정 차원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서는 광의의 강제성만을 인정하고 협의의 강제연행은 증거 부재를 들어 부인하는 반면, 납치문제에서는 북한의 부분적 인정조차 불충분한 것으로 규정하고 전모 규명을 요구한다. 책임 인정 차원에서는 자국의 책임을 ‘도의적 책임’으로 한정하는 반면 북한의 책임은 시효 없는 국가범죄의 법적 책임으로 추궁한다. 합의의 형식에서는 자국의 가해 사안에서 구두 발표와 비구속성을, 자국의 피해 사안에서 명문화와 의제의 구체화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종결에 대한 태도에서, 한쪽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다른 쪽의 ‘해결 없는 종결 거부’는 동일 정부의 언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상반된다.
대응에 투입되는 자원의 배분 또한 기록해 둘 만하다. 납치문제에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전담 기구와 전임 담당대신, 전용 예산, 법률상의 국가 책무 규정이 존재한다. 반면 위안부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 조직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련 업무는 외무성의 대외 ‘반론’ 기능―국제기구 권고에 대한 반박, 해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이하 기림비)에 대한 대응, ‘성노예’ 표현에 대한 교정 요구―으로 수행된다. 한쪽에는 해결을 위한 기구가, 다른 쪽에는 방어를 위한 논리가 배치되어 있다는 이 대조는, 두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목표 함수가 애초에 다르게 설정되어 있음을 제도의 형태로 보여준다.
이 비대칭은 외교가 전개되는 공간의 선택에서도 정교하게 나타난다. 일본은 납치문제를 철저히 다자화한다. 유엔 결의와 국제 심포지엄, 다국어 콘텐츠, 정상외교 의제화를 통해 문제를 국제사회 전체의 의제로 끌어올림으로써 대북 지렛대를 키우는 것이며, 2026년 5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의 해결 지지 표명을 끌어낸 것은 이 다자화가 도달한 최신 지점이다(한겨레 2026/05/19).18) 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한 양자화 전략을 구사한다. 문제를 한일 간에 이미 해결된 사안으로 규정하여 다자 무대로의 진입을 차단하고, 제3국 지방자치단체의 기림비 설치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시도에 대해서는 외교적 개입으로 의제의 국제화 자체를 저지해 온 것이다. 유네스코가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관계자 간 대화를 조건으로 보류(2017)하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본이 분담금을 지렛대로 활용하였다고 평가되는 점은 양자화 전략의 도달 범위를 보여준다. 요컨대 같은 정부가 한 사안은 국제화하고 다른 사안은 탈국제화하는, 외교 공간의 디커플링이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중 전술이 정부 내부의 인지 부조화 없이 작동하는 데에는 관료적 구획화가 기여한다. 위안부 문제는 외무성이 조약 체제 수호의 논리로 방어하고, 납치문제는 총리 직속 대책본부가 인권과 안보의 논리로 공세를 편다. 두 논리는 담당 조직의 칸막이에 의해 분리되어 있으므로 일본 정부 내부에서 상호 충돌로 경험되지 않는다. 이는 조직화된 위선이 실제로 어떻게 ‘조직’되는가에 대한 미시적 답이기도 하다. 위선은 의도적 기만이라기보다, 상반된 논리를 부처별로 분담시키는 제도 설계의 산물로서 마찰 없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태·자원·공간·조직의 네 수준에서 확인된 비대칭이 법적 논리의 차원에서 어떻게 정교화되는가가 다음 장의 과제이다.
Ⅳ. 외교 수단으로서의 법: 법적 논리의 선택적 동원
1. 시간의 법정치: 동일한 난점, 상반된 해법
두 사안은 동일한 법리적 난점을 공유한다. 행위 시점과 규범 발전 사이의 시차가 그것이다. 위안부 제도(1932~45)는 전후 국제인권법 체계가 정비되기 이전의 행위이고, 납치(주로 1970~80년대) 역시 강제실종을 독자적 범죄로 규정한 규범들―1992년 유엔 선언, 1998년 로마규정, 2006년 강제실종방지협약―에 앞선 행위이다. 어느 사안이든 현행 규범의 직접 적용에는 시제법의 문제가 따른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이 이 동일한 난점을 정반대의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논의에 앞서 두 사안의 물리적 성질 차이를 분명히 인정해 둔다. 납치는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채 침해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므로, 침해가 종료될 때까지 범죄가 계속된다는 계속범 법리의 적용은 법리적으로 자연스럽고 또 정당하다. 반면 위안부 제도는 국가기관에 의한 행위 자체는 1945년에 종료된 사건이므로, 동일한 계속범 구성이 곧바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 절이 문제 삼는 것은 두 사안에 상이한 법리가 적용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일본이 납치 외교에서 천명해 온 것이 계속범이라는 기술적 법리에 그치지 않고, ‘시간의 경과는 중대한 국가범죄의 책임과 진상 규명 의무를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일반 원칙의 형태를 취해 왔다는 데 있다. 기술적 법리는 사안의 성질을 따라가지만, 일반 원칙은 행위의 종료 여부를 가리지 않는다. 이하에서 보듯 일본은 원칙의 언어로 말하되 그 적용은 법리의 경계 앞에서 멈추는 방식으로 시간을 운용해 왔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은 시간을 방패로 사용한다. 행위 당시의 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시제법 원칙, 1965년 협정에 의한 청구권의 소멸, 그리고 문제 제기 자체의 ‘蒸し返し(끝난 문제의 재론)’ 프레임이 그 구성 요소이다. 반면 납치문제에서 일본은 시간을 사다리로 사용한다. 강제실종은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가 확인될 때까지 침해가 계속되는 계속범이므로 행위 개시 시점이 아니라 현재가 판단의 기준시가 되며, 따라서 시효도 시제법의 제약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이 수용하고 동원하는 법리이다. 주목할 것은 북한이 강제실종방지협약의 비당사국이고 협약 제35조가 발효 후 개시된 실종에 대해서만 위원회의 관할을 인정함에도, 일본이 실종의 계속성 법리를 들어 이 시간적 제약을 우회한다는 사실이다.19) 즉 일본은 납치문제에서는 규범의 시간적 한계를 유연하게 넘어서는 해석을 채택하면서, 위안부 문제에서는 규범의 시간적 한계를 엄격하게 고수하는 해석을 채택한다. 동일한 난점에 대한 상반된 해법, 이것이 시간의 법정치이다. 앞서 인정한 대로 이 해법의 차이에는 법리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일본이 천명해 온 일반 원칙의 차원에서 보면, 시간의 경과가 중대 인권침해의 국가책임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자기 언명의 적용 범위를 자국이 피해자인 사안으로 한정하는 선택은 법리로 환원되지 않는 원칙의 도구화로 남는다.
청구권 소멸론 자체의 이력도 선택적 경화의 궤적을 보여준다. 1991년 8월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야나이 슌지(柳井俊二)는 참의원 답변에서 1965년 협정으로 소멸한 것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이며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가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정부 해석을 밝힌 바 있다(연합뉴스 2019/09/10). 이 해석은 당시 시베리아 억류 등 일본인 피해자의 대소련 청구권을 살려두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즉 일본 정부는 자국민이 청구의 주체가 되는 국면에서는 개인청구권의 존속을 인정하는 해석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이후 한국인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지자 일본의 공식 입장은 협정에 의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로 경화되었다. 동일한 협정 문언에 대한 해석이 청구의 방향에 따라 이동해 온 이 이력은, 시간의 법정치가 협정 해석의 차원에서도 작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부가적 증거이다.
2. 면제와 책임의 법정치
국가책임의 차원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관찰된다. 위안부 소송에서 일본의 핵심 논리는 주권면제이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의 독일 대 이탈리아 판결(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2012)이 확인한 바와 같이 주권면제가 강행규범 위반 주장에 의해서도 배제되지 않는 절차적 규칙이라는 입장에서, 한국 법원의 재판권 행사 자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였다. 한국 법원은 2021년과 2023년의 판결에서 국가의 조직적 중대 인권침해에 대해 면제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국제 공동체의 이익을 해친다는 논리로 면제의 예외를 인정하였고, 이는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238/2014 결정이 개척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본 연구의 관심은 이 법리 논쟁의 승패가 아니라 동원의 비대칭이다. 일본은 자국이 피고가 되는 사안에서는 면제의 절차적 절대성을 주장하는 반면, 북한이 가해자인 사안에서는 국가책임의 실체적 무제한성―시효의 부정, 책임자 처벌, 전모 규명 의무―을 주장한다. 면제의 법리와 책임의 법리는 각각 그 자체로 성립 가능한 주장이지만, 한 정부가 사안의 위치성에 따라 양자를 선택적으로 들어 올리는 패턴은 법이 원칙이 아니라 위치의 함수로 동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대응 전략은 판결 확정 이후의 국면에서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확정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은 한국 내에 집행 가능한 일본 정부의 비외교 자산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있으며, 2021년 법원이 일본 정부에 재산 목록의 제출을 명하는 재산명시 결정을 내렸을 때에도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일본은 법정에서 다투지 않음으로써 패소하였으나, 집행의 단계에서 주권국가의 사실상의 면제를 누림으로써 판결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패소하되 정치적으로 부담을 지지 않는 이 결과는, 역설적으로 주권면제 법리가 본안의 방어 수단이 아니라 이행 거부의 방패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피해자들이 손에 쥔 것이 집행되지 않는 판결문이라는 사실은 사법적 구제의 한계와 외교적 해결의 불가피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3. 국제 인권기구의 선택적 활용
국제 인권기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서도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의 경우, 일본은 기구의 권고를 반박의 대상으로 삼았다. 2016년 2월 16일, 유엔 제네바 본부에서 여성차별철폐조약(CEDAW) 제7회 및 제8회 정부 보고 심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소위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하였다(일본 외무성 2016; 주대한민국일본대사관 2024).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접근을 완전하게는 하지 않았다”고 2016년 3월 지적한 바 있다(한국경제 2024/10/30). 또한 2016년 3월 7일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이스마트 자한 위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최종 견해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 12·28 합의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며, 피해자의 관점에서 합의가 신속히 실행되길 요구한다”고 밝혔다(한겨레 2016/3/8). 이와 더불어 위원회는 일본의 “지도자나 당국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가볍게 보는 발언을 해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심적 고통을 주고 있다”며 “위안부 이슈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접근은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은 것”이라는 내용의 심의 결과도 발표했다(한겨레 2016/3/8). 이는 위안부 문제가 12·28 합의로 해결됐다는 한·일 양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나,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일본 측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20)
2017년 5월, 유엔 인권최고기구(UNOHCHR) 산하 고문방지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2015년 12월 이뤄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 등과 관련해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국 간 이뤄진 기존 합의가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경향신문 2017/05/15).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CAT)의 한일 위안부 합의 개정 권고에 대해 보고서 내용이 한국을 향한 것으로, 일본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경향신문 2017/05/15). 이처럼 일본정부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및 고문방지위원회(CAT)의 권고에 대해서 반박하며 권고를 부정해 왔다. 게다가 일본은 ‘성노예’라는 표현도 사실에 반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21)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국제기구에 대해 방어적이면서 수동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국제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상반된 태도이다. 즉, 일본은 납치 문제를 국가의 주권 및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인 동시에, 기본적 인권 침해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로 인식한다(拉致問題対策本部 n.d.). 일본 외무성의 오카무라 요시후미 인권 대사는 2018년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강제실종위원회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일본 주권에 대한 중대한 우려 사안이며, 이는 일본인의 생활안전 측면에서도 크게 우려되는 문제”라는 점과 “북한의 일본인 납북은 명백한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인류 보편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고 이해와 협조를 해줘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뉴데일리 2018/11/07). 특히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가 일본뿐 아니라 한국, 태국, 루마니아, 레바논, 중국 등에도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일본 외무성 2024/03/13).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납치문제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 인권 침해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본과 유럽연합(EU)이 공동으로 제안한 결의안에 따라 제네바에서 열린 제22차 인권이사회에서 2013년 3월 22일,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설치가 승인되었다.22) 또한 일본은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사건 등록을 통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의 조사에 힘써왔다(KBS뉴스 2011/03/30). 그리고 일본은 200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강제실종방지협약(ICPPED)’에 2007년 2월 6일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강제실종조약에 서명했다.23) 여기에는 납치문제를 포함한 강제실종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높이고자 했던 일본의 의도가 담겨 있다(岡村善文 2018).
이처럼 일본 정부는 첫째, 국제기구-유엔(결의·COI·안보리)을 통해, 둘째, 다자간 협력-6자회담을 통해, 셋째, 다양한 국제 협력 틀-G7·쿼드·ASEAN 등을 통해, 넷째, 미·한·중과의 양자 협의 등의 다양한 형태와 경로를 통해 납치문제를 지속적으로 국제사회 속에서 공론화하여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펼쳐왔다(외무성 2024).
정리하면, 일본은 자국이 피해자인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인권조약의 제안하고 사실 조회 및 재발방지시스템을 구축하지만, 자국이 가해자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인권조약 기구의 권고조차 반박하였고, 피해자의 합의를 위한 소통에는 소극적이었다. 하나의 정부가 국제사회 속에서 인권 규범을 설계하여 인권문제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설계자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이와 동시에 국제사회 속에서 다자간의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제정된 인권 규범을 부정하는 외교적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는 일본이 인권규범의 생산에는 적극적이면서도, 그 소비에서는 선택적 태도를 취하며 이중성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스스로 생산한 규범은 국제사회에 정착시키고자 노력하지만, 정작 일본 자신은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을 선택적으로만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선택적 수용은 일본의 위치성(가해자/피해자)만이 아니라 일본 정책결정자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인권 규범이 달리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권 규범을 수단으로 동원해 왔지만, 이러한 방침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실제로는 인권 규범의 내용이 실현을 위해 인권 규범을 제안하고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베 정권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모색하던 2019년에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비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지 않을 방침을 발표하였다(뉴시스 2019/03/18).24) 이를 통해 일본의 인권외교에서 규범의 실현이 목적이 아니며, 인권 규범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4. 수사적 함정의 실증: 유엔 무대의 북한 역공
임상순(2013)이 정리한 1992년부터 2012년까지의 기록에 따르면, 일본이 납치문제를 제기한 데 대한 북한의 반박 발언 가운데 위안부 문제가 거론된 비율은 유엔 인권위원회·인권이사회에서 9회 중 6회, 유엔 총회에서 12회 중 7회에 달한다(임상순 2013, 72).25) 북한은 유엔총회 및 인권위원회를 통해 일본의 과거 및 현재의 인권범죄를 비난할 때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다. 북한은 나아가 식민지 피해를 ‘100만 명 학살, 840만 명 강제연행, 20만 명 위안부 강제동원’으로 정식화하고 일본의 과거 청산 불이행을 공격하는 정형화된 논변을 구축하였다.26)
통계 이면의 발언 양태도 정형적이다. 일본 대표가 납치문제를 제기하면 북한 대표는 답변권을 행사하여 일본의 과거 청산 불이행을 거론하고 위안부와 강제연행 피해의 규모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응수하며, 납치문제는 평양선언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일본이 주도한 국제적 압박이 정점에 달한 국면, 예컨대 COI 보고서가 발표되고 북한 인권 문제의 안보리 회부가 논의되던 2014년을 전후하여 북한의 위안부 거론 강도 역시 높아졌다. 일본의 압박이 강할수록 역공의 소재로서 위안부 문제의 효용도 커지는 이 상관은, 일본의 두 사안이 일본의 의도와 무관하게 국제 무대에서 하나의 연동된 의제로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패턴은 정량 데이터의 종점인 2012년 이후에도 약화되지 않았다. 2014년 COI 국면은 물론, 2024년 10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도 북한대사는 일본의 한반도 점령기 20만 여성·소녀의 성노예화를 가장 중대한 인도에 반한 죄로 규정하며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였고, 일본 대표가 근거 없는 주장이라 반박하면서 양측은 세 차례에 걸쳐 공방을 주고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840만 강제연행이라는 정식화된 수치도 그대로 재등장하였다.27) 30년 넘게 동일한 정형이 유지되고 있는 이 공방 구조는, 일본의 납치 제기와 북한의 위안부 역공이 유엔 무대에서 사실상 하나의 의례로 제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실증 결과의 해석에는 두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북한 주장의 인용은 그 승인이 아니다. 북한이 제시하는 수치들은 학계의 추계와 거리가 있으며, 본 연구는 이를 사실이 아니라 북한 측 주장으로 처리한다. 둘째, 북한의 역공은 그 자체가 거울상의 이중성이다. 자국이 가해자인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된 문제’로 봉인하면서 일본이 가해자인 위안부 문제를 보편 인권의 언어로 공격하는 북한의 행태는, 위치성에 따른 규범의 선택적 동원이 일본 고유의 현상이 아니라 가해와 피해의 위치를 오가는 국가 일반의 구조적 유혹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분석의 초점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과 같은 체제조차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공격 소재를 일본 스스로가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 즉 일본이 납치 외교를 위해 정교하게 구축한 인권의 언어―시효 없는 국가범죄, 피해자의 눈물, 가해국의 규명 의무― 가 위안부 문제에서의 자기모순으로 인해 일본의 신뢰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북한의 역공이 곧바로 제3국의 대일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과도하며, 비용의 경로는 보다 정확하게 특정될 필요가 있다. 최악의 인권 침해국인 북한의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선전으로 할인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가 주장하는 비용은 세 경로로 발생한다. 첫째, 자원의 비용이다. 일본은 다자 인권 무대에서 납치를 제기할 때마다 위안부 반론에 외교 자원을 소모해야 하며, 앞서 본 답변권 공방의 의례화는 그 제도화된 형태이다. 둘째, 프레임의 비용이다. 역공이 반복될수록 납치문제는 보편적 인권 의제가 아니라 한일·북일 역사 분쟁의 일부로 인식될 위험에 노출되며, 이는 의제의 국제적 지지 기반을 잠식한다. 셋째,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명의 비용이다. 북한의 역공이 유해한 것은 그 발언 자체가 신뢰받기 때문이 아니라 중립적 기구들의 독립적 판단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4년에 이어 2022년에도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배상과 공식 사과, 교육을 권고하면서, 규약 발효 이전의 사안이라 거론 자체가 부적절하고 2015년 합의로 최종 해결되었다는 일본의 답변에 유감을 표명하였다. 2014년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영구적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으며,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는 앞 절에서 본 바와 같다. 요컨대 북한은 일본의 비일관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국제 인권 기구들이 이미 기록해 둔 비일관성을 증폭하고 있을 뿐이며, 바로 그 점에서 일본이 치르는 비용은 북한 선전의 신뢰도와 무관하게 실재한다. 자국이 구축한 인권의 언어가 자기모순을 매개로 신뢰 자산에서 부채로 전환되는 이 구조야말로, 수사적 함정이 이론적 가능성이 아니라 외교적 현실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Ⅴ. 피해자·기억·정체성의 정치
1. 피해자의 정치적 위상: 배제와 동원
피해자 처우의 차원에서 비대칭은 배제와 동원이라는 대조로 요약된다.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과의 협의는 없었다(참여연대 2016). 합의 발표 직후 생존 피해자들이 ‘우리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고 항의한 데서 드러나듯, 피해자는 합의의 주체가 아니라 합의가 처리하는 대상이었다. 이는 중대 인권침해의 구제에서 피해자의 참여를 요구하는 국제 규범의 흐름―유엔 총회가 2005년 채택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A/RES/60/147), 국제형사재판소 규정 제68조에 반영된 피해자 참여 원칙―과 정합하지 않는다. 합의가 이 규범들을 법적으로 ‘위반’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외교 합의를 직접 규율하는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피해자 중심 접근을 인권외교의 원칙으로 표방해 온 국가라는 점에서, 자국이 가해자인 사안의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제한 것은 규범과의 부정합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문언은 생존 피해자들의 이후 발화 자체를 합의 위반 시비의 대상으로 만드는 침묵의 효과를 발휘하였다.
합의 과정의 피해자 배제는 한국 정부 자신의 검증으로도 확인되었다. 2017년 12월 한국 외교부 장관 직속 검토 태스크포스는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 의견의 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고, 이 검증 결과는 문재인 정부가 합의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되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결정의 근거가 되었다. 배제의 비용은 피해자 공동체 내부로도 전가되었다. 아시아여성기금과 2015년 합의의 현금 수령 여부를 둘러싸고 피해자들 사이에 분열과 상처가 발생하였음은 여러 연구가 기록한 바이며(Soh 2008), 피해자를 배제한 해결이 피해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귀결되는 이 구조는 배제가 낳는 이차적 피해라 할 만하다.
납치문제에서 피해자 가족의 위상은 정반대이다. 1997년 결성된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가족회)와 지원 조직 ‘구하는 모임’, 그리고 초당파 의원 연합인 납치의원연맹은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니라 정책 결정의 핵심 행위자로 제도화되었다. 총리는 취임 직후 가족회와 면담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가족회의 평가가 대북 정책의 정당성을 좌우하며, 요코타 메구미로 상징되는 피해자 서사는 정부 제작 영상물과 교육 자료, 그리고 각료들이 패용하는 푸른 리본 배지를 통해 국민적 기억으로 양식화되었다. 즉, 같은 정부 아래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자국민 피해자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었던 셈이다.
피해자 가족의 상징 정치는 국경을 넘어 조직되었다.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 사키에는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고 2006년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하였으며, 2017년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은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 면담하고 같은 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메구미 사건을 직접 거론하였다. 자국 피해자 가족에게 국제 무대의 발언대를 조직적으로 마련해 온 일본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국제 증언 활동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다투고 그 확산을 차단하는 데 외교 자원을 투입해 온 태도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한쪽에서는 국가가 증폭하는 자산이고, 다른 쪽에서는 국가가 관리해야 할 위험인 것이다.
2. 기억의 정치: 교과서·언어·역사전
교육과 기억의 차원에서도 궤적은 상반된다. 위안부 기술은 1990년대 중반 대부분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였으나 2000년대 이후 역사수정주의 운동의 압력 속에 축소·삭제의 길을 걸었고, 2021년 4월 각의결정이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결정한 뒤에는 검정 과정에서 교과서의 해당 표기가 수정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같은 시기 납치문제의 기술은 확대·격상되었다. 납치는 교과서에서 국가적 위협이자 해결해야 할 국민적 과제로 자리 잡았으며, 정부는 납치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과 영상물을 학교 교육에 보급하였다.
교과서 궤적의 낙차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1997년도판에서는 검정을 통과한 모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위안부를 기술하였으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운동과 정치권의 압력 속에 기술은 급속히 사라져 2000년대 중반에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 기술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고, 2015년 한 출판사의 교과서가 이를 재수록하기까지 약 10년의 공백이 이어졌다. 한 세대의 일본 중학생이 위안부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한 채 성장한 바로 그 시기에, 같은 교과서들에는 납치문제의 기술이 자리 잡아 갔다. 기억의 세대적 재생산이라는 차원에서 두 사안의 자리바꿈은 이미 완료된 것이다.
언어의 차원에서 이 대조는 더욱 정밀하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영어 표기는 완곡어법인 ‘comfort women’이며, ‘성노예’ 표현에 대해서는 사실에 반한다는 반박을 국제적으로 전개해 왔고, 국내적으로는 ‘종군’의 삭제를 통해 군의 관여라는 함의를 언어에서 덜어냈다. 반면 납치문제에서 일본은 ‘abduction’이라는 범죄 명명을 관철하고 이를 ‘enforced disappearance’라는 국제범죄의 어휘에 적극적으로 접속시켰다. 명명을 통해 한쪽의 범죄성은 탈각되고 다른 쪽의 범죄성은 강화된다. 이 언어 정치는 일본 산업경제신문(産経新聞社)이 주도한 ‘역사전(歴史戦)’ 프레임, 해외 소녀상 설치에 대한 조직적 철거 압력, 그리고 위안부 계약을 자발적 거래로 묘사하여 국제적 논쟁을 야기한 램지어 논문 사태(2020~2021)와 결합하며 기억의 국제정치로 확장되었다. 2024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노역 표현을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과 추도식 파행은 이 기억 정치의 최신 국면이다.
기억의 국제정치는 사법의 장으로도 확장되었다. 미국 글렌데일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계 단체가 철거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연방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연방대법원도 2017년 상고를 수리하지 않았으며, 이 소송 과정에 일본 정부가 의견서로 관여한 사실은 기림비 문제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개입 의지를 보여주었다(KBS뉴스 2023.07.30). 베를린의 소녀상을 둘러싸고도 일본 정부의 외교적 철거 요청이 반복되었다. 외국 지방자치단체의 기림비 하나에까지 정부의 외교 자원이 투입되는 이 양상은 기억의 통제가 일본 외교의 실질적 우선순위임을 드러내는 한편, 납치 피해의 기억이 정부 주도의 행사와 콘텐츠를 통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흐름과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3. 일본 내부의 균열과 분석 단위
여기서 분석 단위를 다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사회는 단일체가 아니다.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과 일본의 책임을 실증해 온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의 연구, 납치문제와 과거 청산의 동시 해결을 주장해 온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작업,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와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등의 비판적 지식인, 그리고 피해자 지원에 헌신해 온 일본 시민사회의 흐름은 본 연구가 분석하는 정부의 태세와 뚜렷이 구별된다. 1990년대의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아시아여성기금에 참여한 양심적 시민들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이다. 2014년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세이치(吉田清治) 증언 관련 기사를 철회하자 우파가 이를 위안부 문제 전체의 부정으로 비약시키며 대대적 공격을 전개한 사태는, 역으로 일본 내부에 공격할 만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연합뉴스 2016/09/17).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은 이 내부 균열 속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을 장악해 온 세력과 그 정책 산출이며, ‘일본의 이중성’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정부 차원의 정책 패턴을 가리킨다.
내부 균열은 정부의 언설에도 흔적을 남긴다. 역대 내각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반복해 왔으나, 같은 정부들이 강제연행의 증거 부재를 각의결정하고 ‘종군위안부’ 용어를 부적절한 것으로 결정하며 교과서 기술의 수정을 유도해 온 과정은, 담화의 형식적 계승과 내용적 공동화(空洞化)가 병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담화를 폐기하지 않은 채 그 실질을 덜어내는 이 방식은 국내외의 상반된 청중―담화의 유지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와 담화의 부정을 요구하는 우파―을 동시에 관리, 즉 조직화된 위선으로 볼 수 있다.
4.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 국내 동원
전후 일본에게 가해자 정체성은 존재론적 부담이었고, 그 부담의 관리 양식이 원폭과 공습의 피해 서사를 중심에 놓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였다(임지현 2021; Zarakol 2011). 임지현(2021, 24~25)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후속 세대들이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 세습된 희생자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라고 지적한다. 납치문제는 이 서사 구조에 결정적인 신규 자원을 공급하였다는 것이다. 원폭 서사가 전쟁이라는 맥락에 갇혀 가해의 기억과 끝내 분리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납치는 일본이 어떤 유보도 없이 순수한 피해자가 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3세 소녀의 납치라는 서사의 정서적 완결성은 이 자원의 가치를 배가하였다. 드물게 획득된 피해자 위치는 곧 정치적으로 동원되었다. 2002년 평양 방문 국면에서 강경 대응을 주도하며 국민적 인기를 얻은 아베 신조의 부상은 납치문제가 보수 정치의 자산임을 입증한 최초의 사례였고, 이후 납치문제는 선거 국면의 단골 의제, 대북 강경론과 안보 역량 강화론의 정당화 근거, 그리고 '강한 일본'을 내건 개헌 의제의 정서적 토대로 기능해 왔다. 2025년 10월 출범한 다카이치 내각이 2026년 2월 중의원 총선의 압승을 발판으로 9조 개헌을 본격화하는 국면에서도 납치문제 해결은 정권의 핵심 공약으로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요컨대 납치문제는 일본 보수 정치에 가해자 정체성의 부담을 상쇄할 피해자 서사, 선거 동원의 소재, 안보 의제의 추진 동력이라는 삼중의 효용을 제공하였으며, 같은 이유에서 가해자 정체성을 환기하는 위안부 문제는 회피와 축소의 대상이 되었다.
납치문제와 안보·개헌 의제의 연동도 구체적으로 추적된다. 납치 여론이 비등하던 2006년 전후의 제1차 아베 내각은 방위청의 성(省) 승격과 교육기본법 개정을 관철하였고, 제2차 아베 정권기의 특정비밀보호법(2013)과 안보법제(2015) 국면에서도 북한 위협론의 정서적 토대에는 납치 서사가 자리하였다. 납치문제는 북한의 위협을 미사일과 핵이라는 추상적 수준이 아니라 ‘끌려간 이웃의 딸’이라는 신체적·정서적 수준에서 국민에게 체감시키는 장치였고, 바로 그 점에서 안보 역량 강화론이 필요로 하는 위협 인식의 대중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피해자 구출이라는 인도적 목표와 안보 국가화라는 정치적 기획이 납치 서사 안에서 결합되어 온 이 구조야말로, 인권 의제가 국내 동원의 수단으로 전화되는 메커니즘의 전형이다.
2025년 10월 출범한 다카이치 내각은 이 결합 구조의 현재형 표본이다. 아베의 계승자를 자임하며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다카이치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의 부정을 공언해 온 정치인이고, 그 내각에는 야스쿠니 참배와 위안부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 온 인사들이 다수 포진하였다. 같은 내각은 출범 직후부터 납치문제 해결을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고 총리가 직접 피해자 집회에 참석하여 정상회담 의지를 천명하는 등 피해자 외교의 전면에 섰다. 위안부 표현의 부정과 납치 피해자 포옹이 한 정권의 두 얼굴로 병존하는 이 장면은, 본 연구가 분석해 온 약 35년간 지속되어 온 일본의 이중적 외교를 보여준다.
Ⅵ. 설명과 함의: 왜 이중성인가
1. 비대칭의 종합: 체계적·방향적 패턴
<표 2>는 6대 차원의 분석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사실 인정에서 협의의 강제성 부인 대 전모 규명 요구, 책임 인정에서 도의적 책임 대 시효 없는 법적 책임, 법적 논리에서 시간의 방패화 대 시간의 초월, 피해자 처우에서 배제 대 주체화, 교육과 기억에서 축소 대 격상, 정체성에서 회피 대 동원이라는 비대칭이 확인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비대칭의 성격이다. 여섯 차원 모두에서 비대칭의 방향은 단 하나의 변수, 즉 일본의 위치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느 차원에서도 역방향의 사례―예컨대 가해 사안에서 더 적극적인 사실 인정―는 관찰되지 않는다. 이는 개별 정책의 우연한 편차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방향적인 패턴이며, 따라서 체계적 원인을 요구한다.
<표 2> 6대 차원 비교 결과의 종합
| 차원 | 위안부 문제(가해 위치) | 납치문제(피해 위치) |
|---|---|---|
| 사실 인정 | 광의의 강제성만 인정, 협의의 강제연행은 ‘증거 부재’로 부인 | 북한의 부분적 인정도 불충분으로 규정, 전모 규명 요구 |
| 책임 인정 | ‘도의적 책임’으로 한정, 출연금의 배상 성격 부인 | 시효 없는 국가범죄의 법적 책임 추궁 |
| 법적 논리 | 시제법·청구권 소멸론·주권면제(시간의 방패화) | 계속범 법리·시효 부정(시간의 초월) |
| 피해자 처우 | 협상 과정의 당사자 배제, ‘최종적·불가역적’의 침묵 효과 | 가족회의 정책 주체화, 국가적 구제 체계의 구축 |
| 교육·기억 | 교과서 축소·삭제, ‘종군’ 삭제, 완곡어법 유지 | 교과서 격상, ‘abduction’·강제실종 어휘, 푸른 리본 |
| 정체성·민족주의 | 가해 서사의 회피, ‘역사전’을 통한 방어 | 피해 서사의 국민화, 선거·개헌 의제와의 연동 |
자료: 본문 Ⅲ~Ⅴ장의 분석을 종합하여 저자 작성28).
패턴의 강건성을 확인하기 위해 가능한 반례들도 검토하였다. 고노 담화(1993)와 아시아여성기금(1995)은 가해 사안에서의 전향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반례 후보이나, 양자 모두 법적 책임의 부인이라는 선을 넘지 않았고 이후의 정권들에 의해 실질이 공동화되었다는 점에서 방향의 반전이 아니라 강도의 일시적 완화에 해당한다. 역으로 납치문제에서의 유화적 국면―2002년 평양 방문, 2014년 스톡홀름 합의, 2019년 결의안 공동제안 이탈―역시 전원 귀국과 전모 규명이라는 원칙 자체의 후퇴를 수반하지 않았다. 즉 분석 기간 전체에서 여섯 차원 중 어느 하나에서도 방향이 반전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으며, 이는 위치성 가설이 요구하는 관찰 가능한 함의와 정확히 부합한다.
2. 세 층위의 설명과 대안적 설명의 검토
첫째, 구조의 층위에서 이중성은 1965년 체제의 미청산에 뿌리를 둔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이전의 조약들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하였으나, 이 문언은 당초부터 무효였다는 한국의 해석과 1948년에 이르러 무효가 되었다는 일본의 해석이 충돌하도록 설계된 의도적 모호성이었다. 식민지배의 성격이라는 근본 문제를 봉인한 채 출발한 이 체제 위에서,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 인정은 개별 사안의 양보가 아니라 식민지배 합법성이라는 체제의 기둥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격렬한 반응은 이 구조적 이해관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편 같은 조약 제3조가 한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규정함으로써 북일 간의 과거 청산은 1965년 체제의 바깥에 남았고, 이 미완의 청산은 평양선언의 경제협력 방식 합의에서 보듯 납치문제와 뒤얽힌 채 북일 교섭의 의제로 이월되어 있다. 요컨대 위안부 문제의 ‘종결’ 집착과 납치문제의 ‘지속’ 전략은 모두 1965년 체제의 두 얼굴에서 파생된다.
둘째, 국내정치의 층위에서 이중성은 보수 정치의 비대칭적 유인 구조의 산물이다. 납치문제의 강경 대응은 국내 승인집합을 확장하는 자산인 반면, 위안부 문제의 전향적 대응은 핵심 지지 기반인 우파의 반발을 부르는 부채이다. 가족회와 납치의원연맹이라는 조직화된 국내 행위자는 납치 의제의 지속을 보증하고, 일본회의를 비롯한 우파 네트워크는 위안부 의제의 봉쇄를 감시한다.
한편, 비대칭의 강도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변동하리라는 예측도 확인된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아시아여성기금이 모두 1990년대 비자민 연립과 자사 연립이라는 예외적 정치 지형에서 산출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2007년과 2012년 이후 보수 본류의 정권 복귀와 함께 위안부 문제의 사실 인정이 후퇴하고 납치문제의 동원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비대칭의 방향이 위치성에 의해 고정되어 있되 그 강도는 집권 연합의 구성에 따라 조절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위치성이 구조라면 국내정치는 그 구조의 증폭기인 셈이다.
셋째, 정체성의 층위에서 이중성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작동이다. Ⅴ장 4절에서 분석하였듯 납치문제는 가해자 정체성의 부담을 상쇄하는 피해자 서사를 공급하였고, 위안부 문제는 바로 그 부담을 환기하는 의제였다. 이 세 층위는 상호 강화적이다. 구조가 책임 인정의 비용을 높이고, 국내정치가 그 비용을 회피할 유인을 제공하며, 정체성이 그 회피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서사를 공급한다. 한편 수용 측 변수, 즉 한국 정부의 대응이 정권에 따라 합의와 재검토 사이를 오간 변동성과 북한의 전략 변화가 일본의 선택에 미친 영향도 부인할 수 없으나, 이 변수들은 일본 대응의 강도 변화를 설명할 뿐 여섯 차원에 걸친 방향의 일관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설명을 대체하지 않는다.
본 연구의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일본 측에서 제시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안적 설명들을 같은 기준으로 검토해야 한다. 첫째는 주권·안보 변수이다. 납치는 평시에 자국 영토에서 적성국 공작원이 자행한 명백한 영토주권 침해이자 현재의 안보 위협인 반면, 위안부는 과거 식민지배기의 사안이므로 대응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이 변수의 실재는 부인할 수 없으며, 납치문제가 안보 의제와 결합되어 온 과정은 Ⅴ장 4절에서 확인한 바이다. 그러나 이 설명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역시 강도의 비대칭까지이다. 자국 주권이 침해된 사안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설명되지만, 다른 사안에서 피해 사실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협상에서 배제하며 교과서 기술을 축소하고 용어에서 범죄성을 덜어낼 이유는 주권 변수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주권·안보 변수는 납치 대응의 적극성을 설명하는 변수이지, 위안부 대응의 방향을 정당화하는 변수가 아닌 것이다.
둘째는 조약 질서의 수호라는 자기 규정이다. 일본은 1965년 협정과 2015년 합의를 들어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원칙의 수호자를 자임하며, 합의 이후에도 문제를 재론하는 쪽이 국제법 질서를 흔든다는 프레임을 구축해 왔다. 이 프레임이 특히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서방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발휘해 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세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조약 준수 원칙은 ‘무엇이 합의되었는가’라는 범위의 문제에 답하지 못하며, 1991년 일본 정부 스스로 개인청구권의 존속을 인정하는 해석을 취하였던 이력(Ⅳ장)은 범위 논쟁이 한국 측의 발명품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2015년 합의를 법적 구속력 없는 구두 발표의 형식으로 설계한 것은 일본 자신이므로, 그 합의의 불가역성을 조약 질서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것은 내적 긴장을 안는다. 끝으로 유엔의 조약기구들이 ‘해결 완료’ 답변을 반복적으로 기각해 왔다는 사실(Ⅳ장)은, 조약 수호의 프레임이 정작 조약에 기초하여 설치된 인권 기구들의 판단과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법실증주의 프레임은 일본 이중성의 대외적 포장으로서는 유효하게 기능해 왔으나, 이중성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끝으로 미국 변수이다. 2015년 합의가 한미일 협력을 중시한 미국의 조정 압력 속에서 성립하였고 납치문제가 미일 정상회담의 상시 의제로 대미 외교에 편입되어 있는 데서 보듯, 미일동맹은 두 사안 모두에서 일본의 선택지를 조건 짓는 환경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이중성을 만들어 낸 원인이라기보다 그 비용을 낮추어 온 조건이었다. 한미일 공조를 위해 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종용하고 대북 압박을 위해 납치 의제를 일관되게 지지해 온 미국의 전략적 수요는, 일본의 선택적 규범 동원이 서방으로부터 본격적인 문제 제기를 받지 않은 채 장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국제적 환경을 제공하였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우선순위 속에서 역사 문제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3. 이중성의 비용과 비교사적 함의
일본의 이중성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첫째, Ⅳ장에서 분석하였듯 일본의 인권외교는 수사적 함정에 빠져 있다. 납치 외교를 위해 구축한 인권의 언어가 위안부 문제의 자기모순으로 인해 북한에게 역공의 소재로 전용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이 주도해 온 북한 인권 의제 전반의 신뢰 자산을 잠식한다. 둘째, 이중성은 납치문제 해결 자체에도 역효과를 낳는다. 일본의 비일관성은 북한에게 ‘일본은 과거 청산부터 하라’는 방어 논리를 제공하고, 납치문제를 인권의 보편 의제가 아니라 한일·북일 역사 분쟁의 일부로 격하시킬 빌미를 준다. 자국민 구출이라는 목표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중성은 비합리적 전략인 것이다.
비교사적 시야는 이 사례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가해와 피해의 위치성에 따른 이중 기준은 일본의 전유물이 아니다. 홀로코스트 청산의 모범으로 불리는 독일은 헤레로·나마 학살에 대해 2021년에야 제노사이드를 인정하면서도 법적 배상이 아닌 개발 협력의 형식을 고수하였고, 일본계 수용에 대해 1988년 공식 사과와 보상을 입법한 미국은 선주민 정책에 대해 같은 수준의 청산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일본에 식민지 책임을 묻는 한국 역시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2023년 법원의 국가배상 판결이 나오기까지 정부 차원의 인정에 소극적이었다. 위치성에 따른 규범의 선택적 적용은 강대국과 중견국을 가리지 않는 구조적 유혹이다. 다만 일본 사례의 특수성은 그 동시성과 강도에 있다. 가해 사안과 피해 사안이 동일한 규범 범주에서,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국제기구를 무대로, 동일한 정부에 의해 정반대로 처리되는 사례는 드물며, 바로 그 동시성이 이중성을 외교적 부채로 전환시키는 조건이 된다. 이 관찰은 동북아 차원의 함의로 이어진다. 한일, 북일,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 지역의 역사·인권 의제는 양자 관계의 인질이 되어 왔으며, 위치성을 초월하는 일관된 원칙의 수립 없이는 어느 국가의 인권외교도 상대의 역공 앞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분석은 한국 외교에 대해서도 세 가지 함의를 갖는다. 첫째, 일본의 비일관성에 대한 비판은 외부 규범의 부과가 아니라 일본 자신의 천명에 근거하는 내재적 비판으로 구성될 때 가장 방어 가능하다. ‘납치문제에서 귀국이 말하는 원칙을 위안부 문제에 적용하라’는 요구는 반일 민족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논리적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둘째, 내재적 비판의 설득력은 비판 주체 자신의 일관성에 비례한다.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문제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한국 대일 역사 외교의 신뢰 자산과 무관하지 않으며, 위치성을 초월하는 일관성의 요구는 한국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셋째, 납치문제와 북일 과거 청산이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만큼, 향후 북일 교섭이 재개되는 국면에서 위안부·강제동원을 포함한 식민지 책임 의제가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부재 속에 거래의 대상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한국 외교의 과제로 남는다.
Ⅶ. 결론
본 연구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라는 두 개의 중대 인권침해 사안에 대하여 취해 온 대응을 6대 차원에서 교차 비교하였다29). 세 가지 연구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대응은 사실 인정, 책임 인정, 법적 논리, 피해자 처우, 교육과 기억, 정체성의 모든 차원에서 비대칭적이며, 그 비대칭은 우연한 편차가 아니라 위치성(가해/피해)과 정확히 일치하는 체계적이고 방향적인 패턴이다. 둘째, 이 패턴은 1965년 체제의 미청산이라는 구조, 보수 정치의 비대칭적 유인이라는 국내정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정체성의 세 층위가 상호 강화하며 만들어 낸 산물이다. 셋째, 그 결과 일본의 인권외교는 수사적 함정에 빠져 있으며, 납치 외교를 위해 구축한 인권의 언어는 유엔 무대에서 북한의 역공 소재로 전용되어 일본의 신뢰 자산을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용은 북한 선전의 신뢰도와 무관하게, 동일한 비일관성을 독립적으로 지적해 온 유엔 조약기구들의 반복된 권고를 통해 확인된다.
본 연구의 기여는 세 가지이다. 이론적으로는 ‘위치성에 따른 이중성’을 측정 가능한 개념으로 정식화하고 6대 차원의 비교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조직화된 위선과 수사적 함정 이론을 동아시아의 역사·인권 정치로 확장하였다. 방법론적으로는 동일 정부 내 가해·피해 사안의 교차 비교라는 준실험적 설계를 통해, 국가의 규범 동원이 사안의 성격이 아니라 국가의 위치에 의해 결정됨을 통제된 조건에서 보였다. 실천적으로는 일본의 비일관성에 대한 비판이 외부의 규범 부과가 아니라 일본 자신의 천명에 근거하는 내재적 비판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한국 대일 외교와 국제 인권 담론에 방어 가능한 논거를 제공하였다.
‘위치성에 따른 이중성’이라는 본 연구의 핵심 개념은 일본 사례를 넘어 일반화될 잠재력을 갖는다. 전쟁 책임, 식민 청산, 과거사 보상의 영역에서 거의 모든 국가는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함께 보유하며, 자국의 피해에 적용하는 원칙과 자국의 가해에 적용하는 원칙 사이의 거리는 그 나라 역사 정치의 성격을 측정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본 연구가 제시한 6대 차원 모델은 이 거리의 측정 도구로서, 독일·미국·한국을 포함한 비교 사례 연구의 공통 프로토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계와 과제도 분명하다. 북한 측 1차 자료와 일본 정책 결정의 내부 자료에 대한 접근은 제한적이었고, 유엔 무대 발언의 정량 분석은 기존 연구가 정리한 2012년까지의 자료에 주로 의존하였으므로 이후 기간에 대한 동일 기준의 갱신이 요구된다. 한국 정부와 북한의 전략이라는 수용 측 변수는 통제의 대상으로만 다루어졌으며, 단일 국가 사례라는 점에서 이론의 일반화에는 추가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 위치성에 따른 이중성이라는 본 연구의 분석틀을 독일, 미국, 한국 등의 사례에 적용하는 비교 연구, 그리고 다카이치 내각 이후 일본 정치의 우경화 국면이 두 사안에 미치는 영향의 추적은 후속 과제로 남긴다. 등록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한 자릿수로 줄어든 지금, 위치성을 초월하는 원칙의 일관성이야말로 인권규범의 보편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본 연구의 결론은 일본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모든 국가를 향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