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에서 (재)구성되는 카렌-민족주의: 태국-미얀마 국경 지역 카렌족 난민학교를 중심으로
(Re)constructing Karen Nationalism Beyond the Border: Focusing on a Karen Migrant Learning Center along the Thailand - Myanmar Border
1 국립부경대학교 글로벌지역학연구소
1 Institute for Global & Area Studies, Pukyong National University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26.45.1.403
초록
이 연구는 태국–미얀마 국경 지역으로 이동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사례로 카렌-민족주의가 국민국가 내부가 아닌 국경 바깥의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강화되는지를 고찰한다. 기존의 동남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는 주로 탈식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의 통합 논리나 중앙 정부와 소수종족 간의 갈등 구도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국경을 넘어 이동한 소수종족 공동체가 처한 삶의 조건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민족주의의 일상적·제도적 작동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연구는 태국 내 카렌족 난민학교와 인근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언어 교육과 역사 교육, 민족 영웅 서사, 그리고 일상적 실천이 결합되어 ‘우리-카렌’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학습되고 수행되는 과정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 경제적 취약성, 사회적 차별이라는 디아스포라적 조건 속에서 교육과 일상 실천이 카렌-민족주의를 단순한 이념이 아닌 생존과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정서적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양상에 주목한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how Karen-nationalism is reconstructed and reinforced in a diaspora space beyond the nation-state, focusing on Karen communities along the Thai-Myanmar border. Existing studies of nationalism in Southeast Asia have largely emphasized postcolonial nation-building processes or conflicts between central governments and ethnic minorities. Such approaches, however, tend to overlook the everyday and institutional mechanisms through which nationalism is produced and sustained among displaced populations living outside their presumed national territory.
Drawing on ethnographic research conducted in Karen refugee schools and surrounding village communities in Thailand, this study analyzes how language and history education, ethnic hero narratives, and everyday practices collectively shape an imagined community of “We, the Karen.” Particular attention is paid to the shared structural conditions of legal insecurity, economic vulnerability, and social discrimination that characterize the Karen diaspora. Under these conditions, education and everyday practices do not merely transmit ethnic identity but transform Karen nationalism into a social and emotional resource that provides stability, continuity, and collective meaning in precarious lives.
Ⅰ. 들어가는 말
1. 연구목적과 연구방법
이 연구는 태국–미얀마 국경을 넘어 형성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카렌족 종족 정체성과 카렌-민족주의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강화되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연구이다. 특히 태국 내 카렌족 난민학교와 인근 카렌족 마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카렌어 및 카렌 역사 교육이 카렌족의 본거지인 미얀마 국경을 넘어 태국 영토라는 타국 공간에서 정치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는 과정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카렌-민족주의가 미얀마 국가 내부에서보다 오히려 국경을 넘어선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더욱 선명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기존의 민족주의 연구는 대체로 민족주의를 국가 형성 과정이나 국가 내부의 정치적 동원 전략과 연관 지어 분석해 왔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민족주의는 탈식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 국가 통합의 논리로 제도화되어 논의되어 왔으며(Keyes 1971; Sidel 2012), 동시에 중앙 정부의 소수종족 관리·갈등이라는 정치적 구도 속에서 분석되어 왔다(Juliano 외 2020). 이러한 접근은 민족주의가 영토 국가의 틀 안에서 형성되고 작동한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공유한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이동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반드시 국가 내부에서만 형성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의 통제와 동화 정책으로부터 벗어난 공간, 즉 국경 바깥의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민족주의가 새롭게 구성되고 강화되는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카렌족과 같이 한 국가의 정치적 변경에 위치한 소수종족들, 즉 국민국가를 이룩하지 못한 소수종족들의 경우 해외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오히려 종족민족주의적 경향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 카렌족은 중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카렌족은 미얀마에서 오랜 기간 주변화된 대표적인 소수종족으로, 식민지 시기 이후 형성된 민족주의적 기획과 독립 이후 지속된 소수종족에 대한 탄압 속에서 정치적 소수자로 위치 지어져 왔다. 특히 미얀마의 공교육 체계와 국가 중심의 역사 서술은 카렌족의 종족 정체성을 억압하거나 주변화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으로 이동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는 오히려 ‘하나의 카렌’ 혹은 ‘범-카렌(Pan-Karen)’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더욱 선명하게 표상된다. 이 글은 바로 이 지점, 즉 “왜 카렌-민족주의는 국경을 넘어 더욱 강화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필자는 민족주의를 단순한 이념이나 공유된 감정으로 이해하는 기존 관점을 넘어서, 제도적 장치와 일상적 실천을 통해 학습되고 수행되며 구성되는 사회적 과정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특히 난민학교라는 제도적 공간과 학교 인근 지역에 형성된 카렌족 디아스포라 커뮤니티는 언어 교육, 역사 교육, 의례, 기념 행사 등의 민족주의를 매개하는 강력한 기제들을 통해 카렌-민족주의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핵심적인 장으로 기능한다. 이는 민족주의가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과 공간 속에서 학습되고 내면화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약 10여 년에 걸쳐 필자가 매년 두 차례 이상 방학 기간을 활용해 태국 매솟과 인근 지역의 카렌족 커뮤니티 및 카렌족 난민학교를 지속적으로 조사해 온 현지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이러한 선이해를 바탕으로 분석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2025년 2월 태국–미얀마 국경 지역인 포프라(Phop Phra)에 위치한 쑤무아키 난민학교(Thoo Mweh Khee Learning Center)에서 수행한 집중 현지조사 자료를 중점적으로 활용하였다. 해당 조사에서는 난민학교 학생, 교사, 졸업생, 카렌족 활동가 등 총 13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하였으며, 학교 수업과 기념 행사, 일상생활 전반에 대한 참여 관찰을 병행하였다. 이러한 질적 자료를 토대로 이 연구는 미얀마 국경 바깥의 교육 공간과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속에서 카렌-민족주의와 카렌족 정체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강화되는지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필자가 중점적으로 질적 조사를 수행한 쑤무아키 난민학교는 장기화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태국–미얀마 국경을 넘어 이주한 카렌족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다. 2002년 태국 딱(Tak) 주 포프라 지역에 설립된 이 학교는 현재 어린이집·유치원 과정부터 대학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규모로 형성된 카렌 난민·이주민 공동체는 태국 공교육 체제에의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자녀 교육을 위한 대안이 필요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쑤무아키 난민학교는 난민 캠프 밖에 거주하는 카렌족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대안적 학습 공간으로 출발했으며, 초기에는 소규모 초등 교육 중심이었으나 점차 중등·고등 과정과 직업교육 과정, 대학교육 과정까지 확대·개설하면서 국경 지역 카렌 디아스포라 교육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쑤무아키 난민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이주민 학교가 아닌 카렌족 이주민들이 국경 너머에서 자신들의 언어·역사·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제도적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교육은 카렌어를 중심으로 태국어·버마어·영어가 병행되며, 일반 교과뿐 아니라 공동체 윤리, 리더십, 사회 참여 교육이 강조된다. 이는 학생들이 태국 사회와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용적 역량을 동시에 습득하도록 하는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쑤무아키 난민학교는 카렌족 이주민 공동체가 난민·이주민의 자녀라는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도 교육을 매개로 미래를 설계하고 공동체의 지속성을 재생산하는 실천적 장으로 기능해 왔다.
이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II 장에서는 미얀마 내부에서 형성된 카렌족 종족 정체성과 카렌-민족주의의 역사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카렌-민족주의가 국가 내부에서 어떤 한계와 제약에 직면해 왔는지 살펴본다. III 장에서는 국경을 넘어 태국 매솟과 인근 지역으로 이동한 카렌족 디아스포라 형성 과정을 간략하게 고찰한다. IV 장에서는 난민학교를 중심으로 언어, 역사, 영웅 서사, 생활환경을 통해 (재)구성되는 카렌-민족주의의 구체적 작동 방식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국경 너머의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재)구성되는 민족주의의 특징을 정리하고, 카렌-민족주의와 정체성 형성이 국경지역에서 살아가는 삶의 전략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이론적 배경
민족주의와 종족 정체성은 오랫동안 특정한 영토와 국가의 틀 안에서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정치적·사회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왔다. 기존의 민족주의 이론에서 민족은 근대 국가 형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그러나 강제 이주, 내전, 난민 발생이 일상화된 현대 세계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국가 내부의 현상으로만 이해하는 접근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국경을 넘어 이동한 난민과 디아스포라 집단의 사례는 민족 정체성이 반드시 특정 영토에 고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국경 바깥의 공간에서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선구적으로 제기한 연구 중 하나가 리사 말키(Liisa H. Malkki)의 후투족(Hutu) 난민 연구이다.
말키는 탄자니아에 형성된 후투족 난민촌을 분석하며 난민들이 단순히 ‘뿌리 없는 존재(rootless people)’가 아니라, 오히려 난민촌이라는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더욱 강력한 종족적·민족적 서사를 구성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Malkki 1992, 30-35). 말키에 따르면 난민촌은 기억과 역사가 집적되는 장소이며, 난민들은 강제 이주 경험을 집합적 서사로 재구성함으로써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재확인한다(Malkki 1995). 이는 민족이 영토적 고정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과 제도, 담론 속에서 서사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말키의 논의는 민족주의를 ‘탈영토화된 민족(deterritorialized nation)’이라는 관점에서 재사유하게 만든다. 이 관점에서 민족은 더 이상 국가 영토에 종속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동과 추방, 경계의 경험 속에서 재구성되는 정치적·문화적 산물이다. 난민촌은 국가의 주변부에 위치한 임시적 공간이지만, 동시에 민족의 기억과 역사가 축적되고 재현되는 중심 공간으로 기능한다5).
코헨 역시 디아스포라를 민족 정체성의 약화가 아니라, 국가 바깥에서 민족주의가 재구성되는 조건으로 이해하였다. 코헨의 논의에서 디아스포라 민족주의는 교육과 종교, 공동체 조직을 통해 본향에 대한 집합적 기억과 서사, 본국으로의 귀환의 상상을 유지·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코헨에 의하면 이주한 국가에서 불안전한 지위와 시민권의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도 위의 기제들을 통해 민족적 소속감은 오히려 강화된다(Cohen 2008). 이상의 연구들은 국경을 넘어 형성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출발점을 제공한다.
한편 이 연구와 관련해 민족주의가 교육과 제도를 통해 재생산된다는 점을 강조한 연구들도 주목된다. 앤더슨이 강조한 인쇄자본주의와 교육 제도는 국민을 동일한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이다. 국가 통합 과정에서 선택된 박물관화된 유적들은 국가의 문장(regalia)으로 재배치되는데, 무한한 복제 가능성을 토대로 대량생산되어 국가의 전역에 교과서 등을 통해 배포된다(앤더슨 2018, 271-274). 또한 스미스는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면서도 신화와 기억, 상징이라는 전근대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Smith 1986, 1991). 이러한 논의는 민족주의가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학습되고 전승되는 지식 체계라는 점을 시사한다.
정상적(?) 공간으로, 난민을 그 질서에서 이탈한 비정상적 존재로 묘사하는 사고 방식을 비판한다. 말키에 의하면, 난민들은 추방과 폭력의 경험을 토대로 역사 서사와 민족 신화를 구성하고, 집단 기억을 조직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에서 민족적·정치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형성한다(Malkki 1995, 52–79, 84–101). 이러한 분석은 난민이 단순히 뿌리를 상실한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정치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정체성의 뿌리를 구성해 나가는 주체임을 보여준다(Malkki 1992, 36–38; Malkki 1995, 222–231).
전술한 연구들을 토대로 필자는 쑤무아키 난민학교와 같은 비국가적 제도가 카렌-민족주의와 종족 정체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국가 중심적 분석 틀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민족주의 이론의 경향성에서 벗어나 국경 너머 태국 영토에서 형성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사례로, 민족주의가 국경 너머의 공간에서 어떻게 학습되고 제도화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난민학교와 인근 카렌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언어 교육, 역사 서사, 민족 영웅의 재현, 그리고 카렌족으로서의 일상적 실천이 결합되어 ‘우리 카렌’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다.
Ⅱ. 카렌족 정체성 형성의 역사적 과정
1. 카렌족의 기원과 언어·종족적 다양성
카렌족은 미얀마 동부와 태국 북서부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분포된 대표적인 대륙 동남아 산악민 집단 중 하나로, 티베트–버마어파(Tibeto-Burman)에 속하는 카렌어군(Karenic languages)을 사용하는 종족 집단이다(김인아, 2010, 31-32). 미얀마 내에서는 인구 규모가 비교적 큰 소수종족으로 분류되지만, ‘카렌족’이라는 범주는 단일하고 동질적인 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렌족은 언어, 종교, 지역적 분포에 따라 다층적으로 분화된 이질적인 집단들의 느슨한 연합체에 가깝다.
언어학적 분류에 따르면 카렌어군에는 스고(Sgaw), 뽀(Pwo), 버다웅(Padaung) 등 여러 방언 집단이 포함되며, 이들 간에는 상호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카렌어는 동일한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는 버마어와 비교했을 때 어순과 문법 구조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카렌어가 오랜 기간 몬어, 타이어, 버마어 등 주변 언어 집단과의 접촉 속에서 독자적인 언어적 변형을 겪어왔음을 시사한다(Thurgood 외, 2016). 이러한 언어적 다양성은 카렌족이 본질적으로 단일한 문화 공동체라기보다는,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 적응해 온 복수의 하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카렌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계 내에서 일관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중앙아시아 혹은 중국 남부 지역에서 기원하여 남하하였고, 이후 현재의 미얀마 동부 산악지대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역시 카렌족을 하나의 연속적인 역사 주체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카렌족’이라는 집합적 범주는 근대 이전부터 자명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식민지 통치와 근대적 분류 체계 속에서 점차 고정·강화된 측면이 크다.
카렌족의 구전 전통 속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황금책’ 신화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신화는 조상이 하늘의 신으로부터 책을 받았으나 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로 문자 문명의 상실과 민족적 박탈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서사화한다. 이 신화는 후일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성서 발견과 개종 서사로 재해석되면서 카렌족 종족 정체성 형성과 민족주의 담론의 중요한 상징 자원으로 활용되었다(Gravers, 2007). 이는 카렌족 정체성이 단순히 ‘전통’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외부 세력과의 접촉과 재해석을 통해 구성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카렌족은 언어적·종교적·지역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카렌족’이라는 단일한 범주로 점차 묶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 바로 영국의 식민 지배와 기독교의 전파였다.
2. 식민 지배, 기독교 전파, 그리고 카렌 정체성의 변화
카렌족 종족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 된 사건은 19세기 영국의 식민 지배였다. 영국 식민 통치 이전에도 카렌족은 미얀마 동부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다양한 하위 집단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들을 하나의 종족 범주로 통합하는 일관된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식민 통치가 본격화되면서 행정과 통치를 위해 종족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근대적 범주화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카렌(Karen)’이라는 종족 범주는 점차 고정된 집합적 정체성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영국 식민 정부는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종족별 차이를 강조하는 분리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버마족 중심의 저지대 사회와 산악 지역 소수종족은 정치적·문화적으로 구분되었고, 카렌족은 버마족과 구별되는 ‘산악민 소수종족’으로 위치 지어졌다. 특히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일부 카렌족 엘리트들은 식민 행정 체계 내에서 통역, 하급 관리, 군·경 조직의 구성원으로 포섭되면서, 영국 식민 질서 속에서 상대적으로 우대받는 ‘문명화된 소수자(civilized minority)’로 재현되었다(Gravers 1999).
이러한 과정은 카렌족 내부에서 종족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식민지 시기 선교사들은 카렌족에게 문자 교육과 학교 교육을 제공하며, 종족 정체성을 종교적·문화적 차원에서 체계화하였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은 카렌어 성경 번역, 카렌어 문자 체계의 정착, 학교 설립 등을 통해 카렌족 사회 내부에 새로운 지식 체계와 상징 자원을 도입하였다. 이는 카렌족 정체성이 구전 중심의 느슨한 공동체에서 문자와 텍스트를 매개로 한 집합적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1832년 미국인 선교사 조나단 웨이드(Jonathan Wade)가 버마 문자를 변형하여 카렌어 문자 체계를 정립한 사건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ajah 2002, 526). 문자화된 카렌어의 등장은 단순한 의사 소통 수단의 확장을 넘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집합적 범주를 상상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후 카렌어 성경의 번역과 보급, 카렌어 잡지와 출판물의 등장(The Morning Star 등)은 종족 내부의 소통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켰으며, 카렌족을 하나의 상상된 공동체로 묶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Keyes 1977, 56; South 2008, 2; 김인아 2014, 37-39에서 재인용).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카렌족의 구전 신화인 ‘잃어버린 황금책’ 전설이 선교사들에 의해 전략적으로 재해석되었다는 점이다. 이 신화는 카렌족 조상이 신으로부터 황금빛 책을 받았으나 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로, 문자 문명의 상실과 민족적 박탈의 경험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선교사들은 이 신화를 성서의 발견과 동일시하며, 카렌족의 기독교 개종을 ‘잃어버린 책을 되찾는 과정’으로 의미화하였다. 이러한 재해석은 카렌족의 종족 정체성을 기독교적 세계관과 결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카렌-민족주의 담론에서 기독교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식민지 시기 기독교 선교와 문자 교육은 카렌족 정체성을 전환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문자와 인쇄물을 통해 공유되는 언어와 역사, 종교적 서사는 ‘우리 카렌’이라는 통합적 범주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카렌족 정체성이 자연발생적인 문화적 유산이 아니라, 식민지 권력과 선교 활동, 근대적 교육 제도가 결합된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화와 기독교 중심의 정체성 형성은 동시에 카렌족 내부의 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을 주변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불교나 정령신앙을 유지하던 다수의 카렌족은 기독교 중심의 종족 서사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었으며, 이는 이후 카렌족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교육을 매개로 형성된 문자화된 종족 정체성은 이후 카렌-민족주의가 정치적 이념으로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토대를 제공하였다.
3. 미얀마 독립 이후 소수종족 탄압과 카렌-민족주의의 정치화
1948년 미얀마의 독립은 다종족 사회로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재편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으나, 카렌족을 비롯한 다수 소수종족에게는 정치적 배제와 폭력의 역사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 시기 영국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카렌족, 특히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일부 집단은 행정과 군사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Mendelson 1961; Gravers 2007). 그러나 독립 이후 미얀마 정부는 이러한 식민지적 권력 배치를 급진적으로 재편하면서 버마족을 중심으로 한 단일 민족 국가 건설을 지향하였다.
이 과정에서 카렌족은 국가 형성의 핵심 협상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1947년 체결된 삥롱 협정(Panglong Agreement)은 샨족, 카친족, 친족 등 일부 산악민 집단에게 자치권과 향후 분리 가능성을 약속하였으나, 카렌족은 이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었다. 이로 인해 카렌족은 독립 이후 미얀마 연방 내에서 정치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채, 소수자로서의 주변화된 지위를 감내해야 했다.
정치적 배제는 곧바로 무력 충돌과 저항으로 이어졌다. 1947년 카렌 민족연합(Karen National Union, KNU)의 결성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KNU 는 카렌족의 종족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한 최초의 대표 기구로 자결권 확보와 연방 내 자치, 독립 국가 수립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였다. 1949년 시작된 무장 봉기는 미얀마 정부와 군부에 대한 조직적 저항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된 내전의 핵심축을 형성하였다.
KNU 를 중심으로 전개된 카렌-민족주의는 두 가지 차원에서 강화되었다. 첫째, 미얀마 정부와 군부는 ‘공통의 적’으로 재현되었으며, 종족 간 경계가 적대적으로 고착되었다. 공통의 적으로서 미얀마 정부와 군부, 그리고 그들이 소수종족인 카렌족에게 가한 탄압은 카렌족에게 단순한 억압의 경험을 넘어 ‘우리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집합적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였다(홉스봄 외 2004, 516). 반복되는 군사 작전, 강제 이주, 마을 파괴는 카렌족 내부에서 핍박과 저항의 서사를 축적시켰으며,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Callahan 2003).
둘째, 카렌-민족주의는 기독교와 결합하면서 조직적·이념적 응집력을 획득하였다. 식민지 시기 형성된 기독교 기반의 교육 네트워크와 교회 조직은 독립 이후에도 카렌족 공동체의 핵심적인 인프라로 기능하였다. 성서 번역, 기독교 학교, 교회 중심의 공동체 조직은 카렌-민족주의를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닌 일상적 실천과 윤리 체계로 내면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로써 카렌-민족주의는 종족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된 형태로 정치화되었다(McConnachie 2014).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 중심의 민족주의는 카렌족 내부의 종교적 다양성을 포괄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불교 혹은 정령신앙을 신봉하는 다수의 카렌족은 KNU 중심의 민족주의 담론에서 주변화되었으며, 이는 내부 균열로 이어졌다. 이러한 긴장은 1994년 민주카렌불교도군(Democratic Karen Buddhist Army, DKBA)의 결성으로 가시화되었다.
DKBA 의 등장은 카렌-민족주의가 단일하고 일관된 이념이 아님을 드러낸다. 오히려 카렌-민족주의는 외부의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통합적 담론인 동시에, 내부의 종교적·지역적 차이를 재배열하고 위계화하는 정치적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NU 를 중심으로 한 무장 저항은 미얀마 내에서 카렌-민족주의가 가장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형태의 ‘종족 민족주의’로 전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95년 KNU 본부가 위치한 마네플로(Manerplaw)의 함락은 카렌족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하였다(Pongsawat 2007, 131). 군사적 패배는 카렌족의 정치적·군사적 역량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난민 발생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다수의 카렌족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카렌-민족주의의 실천 무대 또한 미얀마 내부에서 국경 지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얀마 독립 이후의 카렌-민족주의는 국가 내부에서 점차 제약과 한계에 봉착한 정치적 기획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와 군부 권력 하에서 카렌-민족주의는 지속적인 군사적 충돌과 인적 손실을 감내해야 했으며, 내부 분열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경은 단순한 탈출 경로를 넘어 카렌-민족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떠오르게 된다.
Ⅲ. 국경을 넘은 이후: 태국 영토 내 카렌족 디아스포라의 형성
1. 내전, 분열, 난민 만들기: 국경을 향한 이동의 정치적 조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얀마 독립 이후 전개된 카렌-민족주의는 국가 폭력과 탄압, 구조적 배제 속에서 급진화되었으나, 동시에 지속 가능한 정치적 해법을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이후 미얀마 군부의 군사적 공세와 KNU 내부의 분열은 카렌족 공동체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카렌족의 이동은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나 자발적 이주라기보다 강제 이주의 성격으로 변모하였다.
마네플로의 함락(1995년)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카렌족에게 ‘사실상의 수도’와도 같은 장소였던 마네플로의 함락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를 넘어 카렌-민족주의가 미얀마 영토 내부에서 더 이상 안정적인 거점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후 미얀마 군부는 국경 지역의 마을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고, 강제 이주, 마을 소각, 민간인 학살이 반복되었다. 이에 많은 카렌족들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이동하면서 카렌족 공동체는 점차 디아스포라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난민’이라는 법적·제도적 지위는 카렌족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취약성과 제약을 부과하였다.
한편 카렌족 내부의 종교적·정치적 분열 또한 카렌족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KNU와 DKBA의 대립은 일부 카렌족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위협으로 작용하였고, 이는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경을 넘는 선택은 단지 국가 폭력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내부 갈등으로부터의 거리두기이자 카렌 반군으로 징집되는 것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국경 지역은 카렌족에게 물리적 이동의 경로이자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잠정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완충지대로 기능하였다.
2. 국경도시 ‘매솟’: 중첩된 경계의 공간
매솟(Mae Sot)은 태국 북서부 딱(Tak) 주에 위치한 국경도시로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육상 교차점 중 하나이다. 매솟은 오랜 기간 무역과 인적 이동의 통로로 기능해 왔으며, 특히 미얀마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난민, 무국적자, 이주노동자, NGO 활동가들이 집중되는 다층적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매솟은 단순한 국경 도시라기보다 서로 다른 법적 지위와 사회적 위치가 중첩되는 다층적 경계 공간이라 할 수 있다(한유석, 2022, 161).
카렌족에게 매솟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리적으로 카렌주(Karen State)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매솟은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탈출 경로이자 목적지였다. 동시에 매솟은 태국 국가의 중심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지닌 주변부 공간으로, 중앙 정부의 직접적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작동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은 카렌족이 집단적으로 정착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매솟의 사회적 경관은 다양한 경계가 중첩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난민촌, 이주노동자 거주지, 비공식 시장, NGO 사무소, 종교 시설, 그리고 학교들이 도시 공간 전반에 산재해 있다. 이들 공간은 명확하게 분리되기보다는 상호 침투하며, 카렌족의 일상은 이러한 중첩된 경계 속에서 구성된다. 예컨대 한 개인은 난민 신분으로 난민촌에 거주하면서도 비공식 노동자로 시장에서 일하고, 자녀는 난민학교에 다니는 복합적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공간적 조건은 카렌족의 정체성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매솟에서 카렌족은 미얀마 국민도 태국 시민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 놓이게 되며, 이는 국가 정체성에 기반한 소속감을 약화시키는 한편 종족 정체성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즉, 국적과 시민권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카렌족’이라는 정체성은 가장 현실적인 자기 규정의 기준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처럼 매솟의 국경도시적 성격은 카렌족의 민족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미얀마 내부에서 무장투쟁과 국가 대항 정치로 한정되었던 카렌-민족주의는 매솟이라는 공간에서 교육, 언어, 일상 실천을 매개로 한 비군사적이고 제도화된 형태로 재구성될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전환의 핵심에는 난민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3. 난민학교의 등장과 그 의미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이동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가장 핵심적인 제도 중 하나는 난민학교이다.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에는 미얀마 내전이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 이후 다수의 난민촌과 비공식 정착지가 형성되었으며, 카렌족을 포함한 소수종족 공동체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설립된 교육기관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난민학교는 태국 정부의 정규 교육 체계에 편입되지 않은 채 NGO, 종교 단체, 그리고 종족 공동체의 자원을 기반으로 운영되어왔다.
난민학교의 등장은 단순히 교육 기회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실용적 대응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국경을 넘은 이후 카렌족 공동체가 직면한 구조적 조건, 즉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 공교육 접근의 제약, 언어 장벽 등에 대한 집단적 대응이자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재구성 전략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태국의 공교육 체계는 난민 신분 아동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태국어 중심의 교육을 강제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카렌족 아동들에게 교육적 배제와 정체성 혼란을 동시에 초래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난민학교는 단순한 대안 교육 기관이 아니라, 종족 공동체의 존속과 재생산을 위한 핵심적인 제도적 장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난민학교는 카렌족에게 언어와 역사, 종교적 가치가 통합적으로 전달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미얀마 내부의 공교육 체제에서는 카렌어 사용과 카렌족 역사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국경 너머 난민학교에서는 오히려 카렌어가 수업 언어로 사용되고 카렌족의 역사와 민족 서사가 교육 과정의 중심에 배치된다. 이는 국가 중심의 동화 교육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에서 종족 정체성이 제도적으로 재구성되는 조건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Ⅳ. 국경 너머에서 피어나는 카렌-민족주의
1. 난민학교: 카렌-민족주의 재생산의 제도적 공간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이동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난민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난민학교는 카렌족 아동과 청소년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공간인 동시에, 종족 정체성과 민족주의가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는 제도적 장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난민학교를 민족주의가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장소가 아니라 기획되고 학습되는 정치적 공간으로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주와 디아스포라라는 위치성은 종족 정체성을 약화시키거나 해체하는 조건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맥락 속에서 종족 정체성이 재구성되고 강화되는 계기로 기능하기 때문이다(Gravers 2007; Horstmann 2011).
난민학교의 제도적 성격은 그 운영 방식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쑤무아키 난민학교를 비롯한 다수의 카렌족 학교에서는 교과과정이 단순히 읽기·쓰기·수학과 같은 기초 교육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렌어 수업, 카렌족 역사 교육, 민족 영웅에 대한 학습, 종족 의례와 기념일 행사가 교과과정과 일상 활동 속에 통합되어 있다. 이는 난민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가 아니라 특정한 정체성과 세계관을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내면화하는 제도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난민학교는 국가 교육 제도의 부재를 임시로 대체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난민학교는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공하지 않는 교육, 즉 카렌족의 언어와 역사, 집단적 기억 등을 적극적으로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얀마 내부의 공교육 체제에서는 카렌어 사용이 제한되고, 카렌족의 역사는 공식적으로 교육되지 않는다. 반면 국경을 넘은 난민학교에서는 이러한 억압된 지식이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이는 민족주의가 국가 내부가 아니라 국가 외부의 공간에서 제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난민학교의 제도적 효과는 학생들의 자기 인식에서도 확인된다. 인터뷰에 참여한 다수의 학생과 졸업생들은 자신들이 미얀마 내부에 있을 때는 ‘버마 학교 학생’ 혹은 주류가 아닌 ‘소수종족’으로 인식되었으나, 난민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카렌족’으로 자각하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적인 교육과 생활 경험을 통해 형성된 학습의 결과이다. 이는 다양한 이주 경로와 배경을 지닌 연구 참여자들이 난민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을 매개로 유사한 민족주의적 서사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들이 ‘카렌어 교육’, ‘카렌 역사’, ‘민족 영웅 서사’에 대해 반복적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말하는 현상은 민족주의가 개인의 감정 차원이 아니라 제도화된 교육과 집단적 실천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난민학교는 학생들에게 카렌족으로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해 제시하며, 이를 통해 집합적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구성한다.
또한 난민학교는 교육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학교 인근 마을에 함께 거주하며, 학교 행사와 마을 생활이 긴밀히 연결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와 역사, 가치관은 교실 밖의 일상에서도 반복적으로 재현되며, 이는 민족주의가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수행되는 실천으로 정착되는 조건을 제공한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적 공간은 “문화적 동질성을 재생산하는 장소”(Gupta 외 1997)로서 카렌족의 종족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 언어: 스고-카렌어와 범-카렌(Pan-Karen) 정체성
언어는 집합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매개로 기능한다. 난민학교에서 주요 교육 언어로 사용되는 스고-카렌어(Sgaw Karen)는 다양한 방언을 사용하는 카렌족 내부의 언어적 차이를 조정하는 공통 언어(중앙어)로 작동하며, ‘하나의 카렌족(Pan-Karen)’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을 상상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맥락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정치적·민족적 경계를 구성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논의와도 부합한다(Bauman 외 2003). 난민학교에서는 스고-카렌어를 중심으로 역사 교육과 문화 교육, 종족 의례, 기념일 행사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일상적인 학습과 실천을 통해 카렌족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카렌족은 스고, 뽀, 버다웅 등 여러 방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간의 언어적 차이는 상당하다. 미얀마 내부에서는 이러한 언어적 분절이 카렌족 내부의 분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국경 너머에 형성된 공간, 즉 난민학교에서 스고-카렌어가 공통어이자 교육 언어로 제도화되면서 종족 통합이 더 강화된다.
난민학교에서 스고-카렌어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단순한 교육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가장 편안하고 친숙한 언어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동시에 형성하는 효과를 낳는다.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들은 미얀마 학교에서 버마어로 수업을 들을 때 느꼈던 긴장감과 소외감을 반복적으로 언급한 반면, 난민학교에서 카렌어로 수업을 들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정서적 경험은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 형성의 핵심 매개로 만든다.
“여기서는 선생님이 카렌어로 가르쳐요. 우리가 쓰는 말로 배우니까 훨씬 이해가 잘 돼요. 그리고 마음이 편해요.” (쑤무아키 학교 학생 2, 여, 16세)
“버마 학교에서는 버마어만 써야 해서 늘 긴장했어요. 여기서는 친구들도 다 카렌어를 쓰니까 편하고, 수업도 재미있어요.”(쑤무아키 학교 학생 3, 남, 17세)
“카렌어로 노래 부르고 공부하니까 ‘진짜 우리 학교’ 같아요. 내가 카렌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져요.”(쑤무아키 학교 학생 4, 여, 18세)
이와 같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언어로 교육을 받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카렌어의 사용자이자 주체로 인식하게 된다. 즉 이러한 발화는 언어 사용이 인지적 이해를 넘어 정체성의 감각을 형성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학생들은 카렌어로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경험을 통해 ‘카렌어 사용자’라는 사실을 ‘카렌족의 일원’이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더 나아가 스고-카렌어의 제도화는 다양한 하위 집단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상위 정체성, 즉 범-카렌(Pan-Karen) 정체성을 가능하게 한다. 난민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각기 다른 지역과 종교적 배경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언어로 교육을 받고 같은 역사 서사를 학습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차이를 지우는 도구라기보다 차이를 포괄하는 상징적 틀로 작동한다. 이처럼 국경을 넘은 디아스포라 공간에서 스고-카렌어는 가장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통합 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아이들이 카렌어로 자기 역사를 배우는 건 단순한 교육이 아니에요. 언어와 역사가 만나면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죠.”(쑤무아키 학교 교사 1, 여, 30세)
“같은 언어로 배우는 건 단결을 만들어 줘요. 학생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카렌어로 공부하면서 하나의 카렌이 된다고 말하곤 해요.” (국제개발협력단체 인턴 1, 쑤무아키 학교 출신, 남, 22세)
교사 1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학생들은 카렌어로 카렌족의 역사를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우리는 카렌족이다’라는 자각에 점차 도달하게 된다. 미얀마의 공교육 체제에서는 미얀마어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져 카렌족의 역사에 접근할 기회가 제한적이었으나, 난민학교에서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역사를 배우는 경험이 가능해지면서 언어와 정체성이 긴밀하게 결합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더 나아가 교육 내용이 탄압과 저항의 역사적 서사와 맞물려 있기에, 학생들은 자신의 현재 삶의 조건을 과거의 집단적 경험과 연결 지으며 카렌족 정체성을 점진적으로 내면화한다. 특히 국제개발협력단체 인턴 1의 진술처럼, 동일한 언어로 동일한 내용을 학습하는 교실 환경은 학생들 사이에서 카렌족으로서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3. 역사와 영웅: 교육을 통한 카렌-민족주의 만들기
“역사를 배우며 자랑스럽다”
“카렌족으로서 정체성을 깨달았다”
이 두 문장은 카렌족 연구 참여자들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진술을 집약한 것이다. 질적 연구 과정에서 다수의 인터뷰 참여자들이 동일한 내용을 일관되게 언급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조사에서는 거의 모든 연구 참여자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같은 인식을 표명하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난민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카렌족 역사 교육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한 민족적 서사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내면화하도록 하는 과정으로 작동한다. 여기에서 민족 서사는 자연스럽게 계승되거나 일시적인 감정적 각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선택적으로 구성되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사회적·정치적 산물로 이해된다.
미얀마 내부의 공교육 체제에서는 카렌족의 역사와 정치적 경험이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인터뷰에 참여한 다수의 학생과 졸업생들은 미얀마에 거주하던 시기에 자신이 속한 종족 집단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학습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들은 버마족 중심의 국가 서사를 중심으로 교육받으며 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카렌족은 주변적 존재로 묘사되거나 서사에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난민학교에 입학한 이후 카렌족 역사 교육을 통해 ‘존재 규정의 공백’이 점차 채워지기 시작한다. 난민학교의 역사 교육과정은 미얀마 독립 이후 카렌족이 겪은 정치적 배제와 군사적 탄압, 그리고 이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강조되며, 학생들의 기억 속에 카렌족 민족주의 서사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역사 교육은 사실 전달을 넘어, 학생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규범적이고 집단적인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교육을 통한 카렌-민족주의 형성 과정에서 민족 영웅에 대한 서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카렌-민족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소바우지(Saw Ba U Gyi)와 보미야(Bo Mya)가 있다. 이들은 난민학교의 교과서와 교실 벽면의 사진, 기념 행사, 노래와 연극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현되며, 카렌족 정체성과 민족주의를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기준점으로 기능한다.
소바우지는 카렌-민족주의의 정치적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영국 식민지 시기 서구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지식인이자, 1947년 카렌민족연합(KNU)을 창설한 초대 의장이다. 소바우지는 카렌족의 자결권과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며 미얀마 정부에 도전하였고, 1950년 미얀마 정부군에 의해 암살되면서 ‘카렌의 순교자’로 기억되었다. 난민학교에서는 그의 삶과 죽음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카렌족이 지켜야 할 정치적·윤리적 원칙의 원천으로 교육된다.
“아이들은 소바우지를 단순한 역사 인물로 배우지 않아요. 그는 우리가 왜 싸웠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으로 가르쳐집니다.” (쑤무아키 학교 교사1, 여, 30대)
“소바우지의 사진이 교실마다 붙어 있어요. 우리는 그를 매년 추모해요. 그의 말은 우리가 카렌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약속이에요.” (쑤무아키 학교 학생 1, 여, 17세)
특히 소바우지가 제시한 ‘카렌의 네 가지 이념적 원칙’7)은 난민학교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원칙들은 교과서와 수업, 기념행사에서 반복적으로 암송되며, 학생들에게 민족적 신념이자 삶의 규범으로 제시된다. 교사와 학생들은 이 원칙을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카렌족으로 살아가기 위한 윤리적 기준으로 이해하였다.
“카렌의 네 가지 원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학생들은 그것을 삶의 규칙처럼 외워요. ‘우리는 결코 무릎 꿇지(항복하지) 않는다’8)는 말은 그들에게 희망이에요.” (국제개발협력단체 직원 1, 남, 30대)
이러한 발화는 민족 영웅 교육이 과거 회상의 차원을 넘어 현재의 삶을 규율하는 도덕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바우지는 난민학교에서 ‘과거의 지도자’가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징적 기준으로 살아 있다.
보미야는 카렌-민족주의의 군사적·실천적 측면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카렌민족해방군(Karen National Liberation Army, KNLA)의 지도자로서 오랜 기간 무장 투쟁을 이끌었으며, 이후 KNU 의장을 역임하며 카렌족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난민학교에서 보미야는 단순한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한 ‘아버지(Father Bo Mya)’로 호명된다. 이는 폭력적 투쟁의 이미지를 완화하고 헌신과 보호의 윤리로 재해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보미야는 실천하는 영웅이에요. 소바우지가 이상을 세웠다면, 보미야는 그 이상을 지키려 싸운 사람이죠. 그의 이야기는 역사 시간에, 또 카렌 순교자의 날(Karen Martyrs’ Day) 행사에서 늘 등장합니다.” (쑤무아키 학교 교사 2, 남, 40대)
“보 미야 장군은 우리에게 ‘용기’예요. 어릴 땐 그냥 전쟁 이야기로 들었는데, 지금은 그분이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쑤무아키 학교 학생 5, 남, 18세)
“보 미야는 무기를 든 사람이라기보다, ‘우리를 지켜낸 사람’으로 기억돼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그를 ‘Father Bo Mya’라고 부르죠.”
“보 미야는 전쟁 영웅이기보다는 우리를 지켜준 사람으로 배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Müller 2020, 31).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요.” (국제개발협력단체 인턴 2, 여, 21세)
이와 같은 재현은 민족 영웅의 서사가 단순히 무장 투쟁을 미화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적 윤리와 책임의 서사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난민학교에서의 역사 교육은 폭력을 정당화하기보다는 폭력의 경험을 도덕적 교훈과 집단적 기억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난민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와 민족 영웅에 대한 교육은 카렌-민족주의를 하나의 학습 과정으로 구성한다. 학생들은 카렌어를 매개로 카렌족의 역사를 배우고, 민족 영웅의 삶과 원칙을 암송하며, 기념일 행사와 의례를 통해 이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이러한 교육과 실천의 축적을 통해 카렌-민족주의는 개인의 자발적 감정이나 선택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습득되어야 할 지식과 태도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역사와 민족 영웅에 대한 교육은 국경 너머에서 (재)구성되는 카렌-민족주의의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기억의 정치이자 윤리적 가치의 교육이며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야 할 필연적 내용이 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형성된 민족주의는 다음 절에서 논의할 생활세계와 일상적 실천 속에서 더욱 공고화된다.
4. 일상적 공간 ‘카렌족 마을’: 동질적 삶의 공간과 일상 실천의 장
앞선 절에서 살펴본 언어 교육과 역사·영웅 서사는 난민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을 통해 카렌-민족주의를 학습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학습이 지속적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실 안의 교육을 넘어 일상적 생활세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이 절에서는 난민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 세계가 카렌-민족주의를 어떻게 일상 속에서 체화시키는지를 분석한다.
카렌족 난민학교와 인근 카렌족 마을은 교육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학교 주변에 함께 거주하며, 학교 수업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상징, 가치관은 곧바로 카렌족 가정과 공동체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카렌어로 공부하며 집에서도 카렌어로 대화를 나눈다. 학교 행사에서 연행된 노래와 춤, 연극은 마을 잔치와 종교 행사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일상적 구조는 카렌족 정체성이 특정 시간과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의 리듬 속에 스며들도록 만든다.
특히 언어의 일상적 사용은 ‘카렌다움(Karen-ness)’을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난민학교와 마을에서는 카렌어가 단순한 교육 언어가 아니라 생활 언어로 사용된다. 이는 학생들에게 카렌어 사용이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학생들은 미얀마 내부에서 버마어를 사용할 때 경험했던 긴장과 위계의 감각에서 벗어나, 카렌어를 사용하는 공간에서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느낀다.
의복과 음식, 종교 의례 또한 카렌다움의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교 행사나 종족 기념일, 종교 의식에서 카렌 전통 의복이 착용되고 카렌 음식이 공유된다. 이러한 실천은 종족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표현’한다기보다, 일상 속 반복적인 습관과 관행을 통해 몸에 익히는 과정에 가깝다. 학생들과 주민들은 자신들이 특정한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일상적 실천을 통해 카렌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이러한 일종의 ‘수행성’은 특히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경을 넘어 형성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 경제적 취약성, 사회적 차별이라는 공통의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일상적 실천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안정성과 연속성을 제공한다. 즉, 카렌다움은 단순한 문화적 표현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적 삶을 견디게 하는 사회적·정서적 자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9)
또한 이러한 일상적 공간은 난민학교에서 학습된 민족주의를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정치적 역동으로 전환시키는 장이 되기도 한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배운 역사와 영웅 서사를 마을 행사에서 연극과 노래로 재현하고, 기념일 행사에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기억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카렌-민족주의는 개인의 머릿속에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공동체적 실천 속에서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난민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카렌족만의 일상적 전유 공간은 카렌-민족주의를 학습된 지식에서 체화된 정체성으로 전환시키는 핵심적인 장이다. 언어와 역사, 상징과 의례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될 때, ‘우리 카렌’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은 추상적 표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회적 현실로 존재하게 된다.
Ⅴ. 나오며
지금까지 태국–미얀마 국경 너머에서 형성된 카렌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사례로 민족주의가 국가 내부가 아니라 국경 바깥의 공간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강화되는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난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 언어, 역사 서사, 그리고 일상적 실천이 결합해 ‘우리 카렌’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학습되고 수행되는 과정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연구는 카렌-민족주의가 미얀마 국가 내부에서 무장 투쟁과 정치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형태에서 벗어나, 국경을 넘은 이후 교육과 일상적 실천을 매개로 한 제도화된 민족주의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얀마 내부의 공교육 체제와 국가 중심의 역사 서술은 카렌족 정체성을 억압하거나 주변화해 왔으나, 국경 바깥의 난민학교에서는 오히려 카렌어 교육과 카렌 민족만의 역사 교육이 가능해지면서 카렌-민족주의가 체계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는 민족주의가 반드시 국가 권력과 결합된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종족 정체성과 민족주의가 교육 제도를 통해 재생산되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여기에서 민족주의는 자연스럽게 계승되거나 일시적인 감정적 각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제도와 환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학습되고 실천되며 유지되는 사회적·정치적 구성물로 이해된다. 카렌족 난민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교육과 역사 교육, 민족 영웅에 대한 서사적 재현, 그리고 이를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실천은 교육이 종족 정체성과 민족주의를 다음 세대로 전승하고 강화하는 핵심적인 매개임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국경 너머에서 (재)구성되는 카렌-민족주의는 단지 정체성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국경이라는 제도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실천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난민학교를 중심으로 학습된 ‘우리 카렌’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은 이후 교육, 노동, 이동과 같은 일상적 실천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전략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경은 민족주의를 약화시키는 외부 조건이 아니라, 민족주의와 시민성이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는 실험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는 카렌족이 국경 지역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시민성을 수행하며 ‘경계시민’으로 살아가는지를 분석하는 후속 연구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