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디 드라마의 전환기적 양상과 장르 리미널리티 — 〈온에어〉의 혼종적 성향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Transitional Aspects and the Genre Liminality of Trendy Dramas — Focusing on the Hybrid Tendency of On Air —
1 국립부경대학교
1 Pukyong National University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26.45.1.85
초록
이 연구는 SBS 드라마 〈온에어〉(2008년)가 지닌 장르적 성격을 트렌디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라는 세 층위에서 분석함으로써, 한국 드라마 장르사의 전환기를 조망하고자 하였다. 〈온에어〉는 도시적 공간,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즉각적 감정 표출, 스타 소비 등 트렌디 드라마의 문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방송 제작 현장의 리얼리티와 직업적 갈등 구조를 전경화하여 전문직 드라마의 서사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동시에 감정의 절제, 제도적 구조의 부각, 메타 서사의 도입 등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적 성향을 선취함으로써, 이후 한국 드라마가 나아갈 새로운 감정 양식과 서사 구조를 예고하였다. 따라서 〈온에어〉는 세 장르 문법이 교차하고 융합하는 혼종적 성격을 지닌 과도기적 텍스트로 규정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단선적 진화가 아니라 복합적 장르 혼종을 통해 발전해왔음을 입증한다. 본 연구는 〈온에어〉를 한국 드라마 장르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의 지표적 사례로 규정하면서, 향후 한국 드라마의 장르적 재편과 미학적 변용을 탐구하는 데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genre characteristics of the SBS drama On Air (2008) from three dimensions—trendy drama, professional drama, and post-trendy drama—in order to explore a transitional phase in the history of Korean television drama. On Air faithfully inherits the conventions of trendy drama, such as urban settings, sophisticated lifestyles, immediate emotional expression, and the consumption of star images. At the same time, by foregrounding the reality of broadcasting production and the conflicts inherent in professional domains, it actively incorporates the narrative traits of professional drama. Moreover, through the restraint of emotions, the emphasis on institutional structures, and the introduction of meta-narratives, the drama anticipates the aesthetic tendencies of post-trendy drama, thereby suggesting new modes of emotion and narrative structures in subsequent Korean dramas. Accordingly, On Air can be defined as a hybrid and transitional text in which three genre codes intersect and converge, demonstrating that the evolution of Korean drama has not been linear but rather characterized by complex processes of genre hybridity. This study highlights On Air as a key indicator of a transitional moment in Korean drama history, and it contributes foundational insights for further inquiry into the future reconfiguration of genres and aesthetic transformations in Korean television dramas.
Ⅰ. 서론
1. 문제 제기와 대상 작품
1990년대 초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trendy drama)라는 새로운 양식을 통해 장르적 전환을 경험하며 일대 변환을 이룬 바 있다. 트렌디 드라마는 1990년대 한국 드라마의 주요한 장르로 부상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양식을 탈피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감정의 표출 가능성을 폭넓게 탐색하는 양식으로 변전하기에 이르렀다(주창윤 2007, 380-382 ; 조미숙 2014, 452-456). 여기에 스타 캐스팅과 영상 미학적 효과를 강하게 결부하여 대중문화의 산업적 측면에서 중요한 거점을 마련해 나갔다(이은애 2006, 67-82). 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가 변전하면서 정립한 중요한 양식으로서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트렌디 드라마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양식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문법과 패러다임을 개척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드라마는 기존의 트렌디 드라마의 문법과 일률적인 반복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대적 당위를 인식하였다(이은애 2007, 5-31). 이러한 인식적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장르적 변용과 양식적 대체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의 트렌디 드라마가 청년의 감정 해방과 도시화된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변화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중심으로 삼았다면, 2000년대에는 기억과 상실, 상처와 치유의 정서를 중심으로 한 감정의 내면화에 초점을 맞추었고, 2010년대에는 초월적 감정, 역사적 상처, 윤리적 관계의 감성화를 통해 수준 높은 감성 장르로 변모하려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지나면서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영향력 자체는 급속하게 감소하였지만, 트렌디 드라마의 후속 장르이자 변형 양식이 등장하면서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와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장르적 문법과 양식적 특성이 도드라지는 일련의 변화들이 생겨났다.
장르적 변화와 양식적 차이는 보다 포괄적인 차원에서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등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의 부상을 포함하여 기존의 트렌디 드라마의 문법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변혁 혹은 안티 테제로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감정과 서사의 문법을 전복하거나 재구성하는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선보였다. 거시적으로 말해서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트렌디 드라마의 발전적 대체 장르라 할 것이다.
〈온에어〉는1 기본적으로 트렌디 드라마의 영향력을 강하게 수용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고착적 문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장착한 경우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장르적 성향이 수반되면서, 메타 서사와 자기 반영성의 도입, 집단의 구조와 제도적 리얼리티에 대한 천착, 스타 이미지의 인간적 결핍에 대한 묘사 등 기존의 트렌디 드라마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특성이 발현되고 있다.
2. 선행 연구와 연구 방향
〈온에어〉는 트렌디 드라마가 추구했던 현대적 도시적 공간(감)과 경쾌한 연애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직업 영역에서 측면에서 방송 제작 현장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전문직 드라마의 전문성을 담보하고자 했다. 동시에 감정의 억제, 제도적 구조의 전면화, 메타 서사적 성격 등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요소를 선취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온에어〉는 트렌디 드라마 성향과 전문직 드라마 성향 그리고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 성향이 교차하는 과도기적 텍스트로 탄생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도기적 성향으로 인해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 장르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에어〉에 대한 기존 연구는 소략하다. 지금까지의 접근 중에는 〈온에어〉의 작품성과 진정성을 비판하고 결국 종래의 트렌디 드라마 문법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사례가 주목된다(윤석진 2008, 166-169). 또한 주현식의 연구는 메타 드라마적 특성을 바탕으로 〈온에어〉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반성적 성향을 드러냈다는 점을 밝혀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주현식 2016, 177-199).
선행 연구의 시야를 해외로 넓혀도 〈온에어〉에 대한 관심을 소략한 편이다. 한국 드라마의 장르와 특성을 다룬 연구에서 〈온에어〉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연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콘텐츠)에 집중된 인상이다(Hassim et al. 2019; Yoon et al. 2025). 하지만 일부 연구에서 트렌디 드라마의 위상에 대해 논구한 바 있는데, 김현미의 연구에서는 대만에 끼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을 다루면서 트렌디 드라마의 역할을 조명한 바 있고, 이때 혼종성(hybridity)이 언급되기도 했다(Kim, Hyun Mee. 2005). 다만 이 경우에도 〈온에어〉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해외 학자 중에서 〈온에어〉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경우는 발견되지만(Oh 2018, 53-81), 제작 상황과 장소 섭외에 관심이 한정되면서 작품 자체의 특성과 장르적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온에어〉에 대한 연구에서 이러한 기존 시각의 양립과 혼란은 기실 〈온에어〉가 트렌디/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문법을 공유하고 있으며 경계 지대에 놓은 과도기적 작품이라는 전제를 깊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더구나 〈온에어〉에는 실질적으로는 전문직 드라마의 요소도 강하게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의 성향은 트렌디 드라마와 전문직 드라마의 경계에도 놓여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온에어〉와 같이 세 장르의 문법이 접변하면서 형성되는 과도기적 특성에 대한 연구는 체계적으로 시행되지 않은 상태라고 할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선행 연구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에어〉를 사례로, 트렌디 드라마적 문법의 수용과, 이에 전문직 드라마적 성향의 첨가, 그리고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적 요소의 선취라는 세 층위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은 한국 드라마 장르의 전환과 진화를 규명하는 데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결국 이 연구는 한국 드라마의 장르적 발전이 단선적 진화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 문법의 교차와 혼종(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밝히는 데 그 최종적 목적을 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온에어〉의 과도기적 특성은 이후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OTT 환경 속에서 다시 어떤 장르적 재편을 겪고 있는지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전망이다.
Ⅱ. 연구 방법과 관련 이론
이 연구에서는 SBS 드라마 〈온에어〉를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장르사의 전환기적 텍스트로 규정하고, 해당 작품에 나타난 트렌디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교차 양상을 분석하여, 장르 혼종의 방식과 그 의미 구조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반영된 다양한 현상을 조명하고 그 의의를 정리하기 위하여 장르 혼종성 이론을 비롯하여 과도기(리미널리티) 이론 그리고 메타서사(자기반영성) 이론을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한 분석 근거를 활용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기본적인 장르 인식은 장르 혼종성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장르는 일정한 서사 규칙과 형식적 관습을 공유하는 고정된 범주로 이해되어 왔으나, 이러한 관점은 장르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의 텍스트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이 연구는 장르를 고정된 틀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 산업적 조건, 수용 양식이 중첩되며 구성되는 유동적 범주로 이해한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Mikhailovich Bakhtin)에 따르면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단일한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적 언어와 가치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다성적 공간이며, 이러한 다성성은 장르 내부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Bakhtin 1982; 김욱동 1988). 이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텍스트 안에 서로 다른 장르 문법이 병존하는 현상은 장르 규범의 붕괴가 아니라, 오히려 장르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며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제이슨 미텔(Jason Mittell)의 TV 장르 이론은 본 연구의 방법론을 더욱 구체화하는 데 유효하다. 미텔은 장르를 텍스트 내부의 형식적 특징에 한정하지 않고, 제작 관행, 산업 구조, 편성 전략, 시청자 해석과 수용 방식이 함께 만들어내는 문화적 실천(cultural practice)으로 정의한 바 있다(Mittell 2004).
이 이론에 따르면 특정 시기의 드라마에서 장르 혼종이 두드러지는 현상은 개별 작가나 연출자의 실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당대 방송 산업과 시청 환경이 요구하는 서사적 타협과 변형의 결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이 연구는 이러한 ‘장르 혼합’의 관점을 수용하여, 〈온에어〉에 나타난 트렌디 드라마적 감정 문법과 전문직 드라마적 리얼리티, 그리고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적 자기성찰이 결합되는 양상을 산업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발생한 장르 재편의 징후로 분석하고자 한다.
아놀드 반 제넵(Arnold Van Gennep)은 사회적 전환 과정을 ‘분리(Separation)–전이(Liminality)–통합(Incorporation)’의 세 단계로 설명하면서, 그중 전이 단계가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가 모두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문턱’의 상태임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리미널리티(liminality)는 변화가 실제로 발생하는 결정적 국면을 가리키는데, 이 시기는 불안정하지만 새로운 질서가 실험·형성되는 창조적 시기에 해당한다(Arnold Van Gennep 2019; 아놀드 반 제넵 2022).
리미널리티는 사회·정치·제도·문화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턱의 상태’(‘문지방성’)(장용규 2024, 55-63), 즉 기존 질서로부터 분리되었으나 새로운 질서로 아직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중간 단계를 가리키는 개념을 가리킨다.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리미널리티를 사회 구조가 일시적으로 느슨해지고, 기존 규범과 위계가 흔들리는 ‘구조와 반 구조의 역동’으로 확장하여 이해한 바 있다(Turner 1995; 빅터 터너 2005). 이 연구는 이 리미널리티 개념을 장르사적 맥락에 적용하여, 〈온에어〉가 위치한 200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 환경을 트렌디 드라마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감정 양식과 제도적 리얼리티가 전면화되기 직전의 ‘과도기’로 파악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이러한 연구 방법론은 장르 혼종성 이론을 통해 〈온에어〉의 복합적 장르 구성을 분석하고, 리미널리티 이론을 통해 이러한 혼종이 발생한 역사적·장르사적 조건을 규명하며, 메타서사 이론을 통해 혼종 장르가 텍스트 내부에서 자기 성찰의 형태로 구현되는 방식을 해명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갈래 이론의 결합은 〈온에어〉를 단순한 예외적 작품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 장르사가 전환 국면에서 선택한 과도기적 실험의 집약체로 규정하기 위한 이론적·방법론적 토대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Ⅲ. 〈온에어〉에 수용된 트렌디 드라마의 요소
1. 도시 공간의 세련미와 내면 공간의 상징성
〈온에어〉의 공간적 배경은 전형적인 도시 이미지와 세련된 소비 성향을 갖춘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방송국 사무실, 대형 호텔 로비, 고급 레스토랑과 각종 클럽, 마시지 숍과 단란주점이 그러하고, 해외 촬영지로 여러 차례 소개되는 대만의 풍경도 그러하다. 대만의 주요 관광지(가령 지우펀)와 호텔 그리고 리조트는 〈온에어〉의 촬영지이면서, 동시에 극중극인 〈티켓 투 더 문〉의 주요 배경으로도 기능한다.
이러한 ‘트렌디’한 공간감과 ‘소비적’ 이미지는 트렌디 드라마가 관습적으로 활용해 온 ‘도시적 소비문화의 미장센 효과’에 해당한다. 이러한 미장센을 통해 공간의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은 트렌디 드라마가 개발하여 주력해 온 드라마 문법의 결과이기도 하다(김남석, 2025, 25-30). 특히 이렇게 포착된 풍광은 작품의 동시대성과 시청자의 현실감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화면을 일종의 소비하고 관광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더구나 이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배가시키는 상징적 장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도시 공간의 활용과 수용은 분명 내면적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인물들의 삶을 현대적 성공과 세련미의 지표로 받아들이게 유도하며, 트렌디 드라마가 지향했던 소비적 욕망을 공유하도록 종용하기 때문이다(임미주, 2022, 136-138).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소비 패턴이 다양화되고 분산되는 현상이 가시적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에도 중요한 도시적 트렌드로 작동하고 있었고(성영애 외, 2014, 240-250), 이로 인해 도시 공간과 소비 욕구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텔레비전 드라마는 이러한 상관성을 시각적 이미지로 조율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고 해야 한다. 다만 〈온에어〉에서는 비단 소비 욕구와 도시적 감각만을 구현하기 위한 공간만을 포착하고 있지는 않다. 〈온에어〉에서 주목하는 공간은 내면적 정황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공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적 공간성과 공간적 상징성은 또한 드라마의 속도감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방송국에서의 냉정한 회의 내용, 촬영장에서의 촉박한 촬영 일정, 계약 과정에서의 치열한 대화 장면은 모두 속도감 있는 호흡을 형성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는데, 이때 생성되는 긴박한 호흡은 도시적 리듬과 청춘의 속도감을 동시에 구현하는 기능도 아울러 수행한다. 따라서 〈온에어〉의 배경은 단순히 화려함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드라마의 장르적 속성 자체를 관철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1990년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양식으로 부상한 트렌디 드라마는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장르로, 초기부터 청춘 남녀의 감정 표출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았다. 표출된 감정의 경쾌한 리듬은 도시적 삶과 이에 따른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원조 격 작품인 〈질투〉는 이러한 삶의 변화와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기반으로, 달라진 서사와 그에 따른 경쾌한 리듬을 상징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박성수, 1997, 4-8; 임미주, 2023, 141-172).
10여 년이 지나 제작된 드라마 〈온에어〉 역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바탕으로 그들이 그려내는 새로운 삶의 리듬에 무심하지 않고 이러한 리듬을 도시적 공간을 중용하여 그려내려 했다는 점에서는 트렌디 드라마의 속성을 여전히 고수한 경우이다. 이 작품에서 이러한 리듬을 체감하고 구현하는 주요 수단이 공간이며, 공간의 변화와 전환은 그러한 리듬을 서사와 화면에 구현하는 동력이다.
특히 〈온에어〉에서 주목하는 이러한 공간 구성―대형 호텔 로비, 고급 레스토랑, 각종 클럽, 마시지 숍, 단란주점, 해외 촬영지와 리조트 그리고 저택, 기획사, 방송국, 작업실―은 해당 장르를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담론과 사회적 언어가 교차하는 장으로 이해하는 장르 혼종성 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서사 텍스트는 특정한 진리를 독점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가치·이념·관점이 대화적 관계(dialogic relation)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미결 상태로 남는 선택을 지향한다(김욱동, 1988; 박은영, 2004, 2-12).
〈온에어〉의 도시 공간 역시 기본적으로는 트렌디 드라마의 소비적 미장센을 계승하는 동시에, 이후 전문직 드라마의 제도적 리얼리티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성찰적 시선을 수용하기 위한 혼종적 장르 무대로 작동할 가능성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온에어〉가 다양한 공간의 수용을 통해 비단 트렌디 드라마의 특징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지(유사)와 함께 이를 넘어서고자 했다(차이)는 사실을 별도로 기술해 둘 필요가 있다.
2. 연애의 직접적 노출과 감정의 즉각적 표출
트렌디 드라마의 핵심 서사 중 하나는 세련된 도시적 환경 위에서 개성적으로 자라난 젊은 남녀가 그려내는 연애 서사이다. 〈온에어〉 역시 전문직 인물들―방송계 종사자들―의 직업적 애환과 상호 갈등을 그리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맺는 정서적 교류와 사랑의 서사가 주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승아를 둘러싼 이경민과 메니저 장기준의 관계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송윤아를 둘러싼 매니저 장기준과 이경민의 관계가 다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얽히고설킨 구도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구도는 종반부에 도달해서야 간신히 연애 상대가 정리되는 지연된 동향을 선보였다. 결국 감독 이경민과 작가 서영은, 그리고 배우 오승아과 매니저 장기준은 서로 다른 이성과의 결합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동성의 상대와는 경쟁 관계를 이루는 복합적 구도를 형성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감정 표현의 방식이다. 〈온에어〉의 인물들은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곧바로 드러내며, 종종 격앙된 언어와 표정으로 상대와 충돌한다. 이러한 즉발적인 감정 표출은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서사 문법으로, 갈등의 누적보다는 즉각적 폭발을 통한 극적 효과에 치중하는 양상을 내보인다.
주연 배우 오승아와 대본 작가 서영은 사이의 신경전, 배우 보호자로서 장기준과 배우의 활용자로서 이경민 사이의 기 싸움은 모두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극적 긴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니 감정의 표출은 폭발과 화해, 고조와 안정을 반복하는 주기성을 보인다. 결국 이러한 감정 표출 효과는 시청자에게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며, 사건의 전개를 감정적 리듬에 맞추어 진행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도록 만들고 있다.
3. 스타 이미지의 소비와 카메오 출현의 효과
〈온에어〉의 또 다른 특징으로 스타 출현을 통한 소비의 극대화 전략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드라마 제작 현장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스타들이 ‘자기 자신’으로 등장하는 카메오 장면이 자연스럽게 삽입될 수 있었다. 전도연, 이효리, 김정은, 엄지원, 강혜정, 이천희, 이서진, 김제동, 김성민, 김민준 등 다양한 연예인들이 특별 출연하는데, 이러한 스타들의 등장은 〈온에어〉가 궁극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서사적 긴장(감)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시청자들의 시청 욕구를 자극하여 출연 화면 그 자체를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거두는 데에 특장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병헌, 정우성 등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연예계에서 스타들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이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스타들을 통한 동시대의 동향을 드라마의 제작 배경으로 삼는 부수적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스타 이미지는 시청자의 관극 효과와 현실적 배경을 환기하는 일종의 소비 효과를 창출한다고 해야 한다.
어떻게든 스타 이미지를 화면 내에 반영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관객(시청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방식은 트렌디 드라마 이후부터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요한 전략으로 이미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트렌디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는 양식적 선택을 감행한 〈온에어〉도 이러한 전략에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없었고, 어떤 경우에는 더 교묘하게 그 전략을 활용하는 아이러니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트렌디 드라마는 스타 시스템을 활용하여 새로운 양식으로서 동력을 양산한 바 있다(이은애, 2007, 20).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트렌디 드라마 이전에도 활용된 방식이었고, 텔레비전 드라마 이외에도 영화와 방송 전 분야에서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방식이었지만, 트렌디 드라마는 이를 젊은 시청자층 나아가서 1990년대 감수성을 가진 세대의 기호를 충족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삼는 데에 성공했다(황인성, 1999, 231-241).
이러한 트렌디 드라마의 성향과 문법은 2000년대 중반 시점에서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다시 취합된다. 그 결과 〈온에어〉는 1990년대 이후 방송계를 장악한 트렌디 드라마의 장점과 그러한 장르적 배경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배우들의 이름을 직간접적으로 호명하려는 전략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통해, 트렌디 드라마가 걸어온 새로운 이력과 스타 선택의 기준을 서사적 차원에서 환기할 수도 있었다.
시청자들은 가상의 배우 오승아가 연기하는 세계 속에서, 동시대의 현실에서 시청자 스스로 보고 접하고 선택하는 실제 배우들의 틈입과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대 한국 배우들의 이미지를 통해 〈온에어〉 속 연예계를 그려낼 수 있었고, 그 위에 현실 속 현장감을 덧붙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비록 가상의 스타로 창출되었지만 톱스타이자 국민 배우 오승아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은 당대 스타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하며, 오승아를 통해 표현하는 당대의 분위기는 실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해야 한다.
4. 여성 인물의 욕망과 자율적 여성상의 지향
트렌디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와 달리 여성 인물을 단순한 ‘비련의 희생자’로 그리지 않는다. 배우 오승아와 작가 서영은은 바로 이러한 특징을 구현하는 대표적 인물(형)이다. 오승아는 대중에게는 화려한 스타지만, 스타라는 허울에 갇혀 연예계 관습과 시스템에 억압당하는 여배우로 처신하지 않는다. 방송 작가 서영은 역시 남성 중심의 방송 제작 환경 속에서 자신의 창작 권위와 자율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작가로 등장한다.
특히 오승아의 자존심, 서영은의 창작 욕망은 모두 여성 주체의 능동적 선택과 결단을 강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드라마들이 여성 인물을 보다 다층적으로 그려내는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온에어〉가 여전히 트렌디 드라마의 장르적 문법을 유지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트렌디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민주화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남녀 차별 혹은 위계 차에 도전하는 성향을 견지해왔다. 남성의 돌봄을 받거나 가부장의 권위 아래 수동적인 인물로 전락하거나 운명과 관습에 짓눌려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대하고, 사회적 권익과 성적 자기 결정성 그리고 남녀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여성상을 창출하고자 했다. 〈온에어〉에서도 이러한 여성상은 그대로 수용되었고, 나아가 착하지 않은 여주인공과 고분고분하지 않은 방송 작가의 이미지를 투영한 도전적 여성상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러한 여성상의 지향은 트렌디 드라마의 지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하겠다.
Ⅳ. 〈온에어〉에 부가된 전문직 드라마의 요소
트렌디 드라마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도시화와 소비문화 확산 속에서 등장했다. 이 유형의 드라마는 빠른 감정 전개와 감각적 스타일이 특징이다. 반면 전문직 드라마는 2000년대 후반―특히 2007-2008년 집중 편성―기존 드라마의 상투성(장르적 고착성)에서 탈피하여 직업(전문직종)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적 풍조를 반영한 드라마 장르이다(이원 2012, 68-75). 이 장르는 특정 직업 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트렌디 드라마의 안티 테제로 전문직 드라마가 주 목되었고, 장르적 연계로 인해 트렌디 드라마가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대체 장르가 전문직 드라마라는 견해도 존재한다(조민준, 217-218). 하지만 전문직 드라마는 트렌디 드라마 이전에도 존재했고, 결과적으로 두 장르는 공존했으며, 서로 혼합하여 중간 변이 장르로 나아가기도 했다는 점에서 선후 혹은 생사의 관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두 장르는 공통점을 상당 부분 지니고 있다. 우선, 트렌디 드라마와 전문직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현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려는 성향을 취하고 있다. 또한 두 장르 모두 개인의 성장 서사를 중시한다. 트렌디 드라마는 감정적 성숙을 강조하고 전문직 드라마는 직무 수행과 책임 인식을 통해 의식의 성장을 보여 주는 데에 능하다.
한편, 두 장르는 상당한 차이점도 지니고 있다. 주지하듯 트렌디 드라마는 감정 중심 서사이다.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서사의 흐름을 이끌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배경 공간은 사적이고 소비 중심적이다. 전문직 드라마는 해당 직업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 관련 기능(전공) 중심 서사를 목표로 삼는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사건과 과업 수행이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배경 공간은 주로 공적이고 제도적이다.
감정 표출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트렌디 드라마는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어서 사랑, 분노, 유혹, 질투가 과장되기 일쑤이고 미화되어 표현되는 성향도 강하다. 반면 전문직 드라마는 서사적 측면에서 감정 표현의 절제를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 직업적 특성상 책임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감정이 억제되거나 조절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트렌디 드라마는 개인의 자율성과 욕망을 긍정하고, 전문직 드라마는 사회적 책임과 제도 안의 딜레마를 강조하려는 성향이 우세하다는 차이도 확인된다.
1. 방송 제작의 현장성과 직업 묘사의 구체성
〈온에어〉가 담보한 가장 독보적인 장점은 방송 현장과 제작 과정을 소재로 선택하여 사실감을 높여 텔레비전 서사로 재현한 점이다. 방송 제작 분야를 독자적인 전문 영역으로 삼아, 트렌디 드라마가 구현하지 못한 전문적 직업의 세계에 보다 근접하고자 한 것이다.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는 정작 직업 세계의 전문성을 살려 서사적 기능을 확보한 설정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시대적 변화나 인물의 배경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우세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상대적이기 때문에 트렌디 드라마가 직업 영역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했다거나 그 비중에 무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트렌디 드라마를 통해 발견된 직업의 세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직업 세계의 중요성을 더 비중 있게 주장하는 드라마 양식이 고안되었고, 점차 독립된 장르로 정착되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직업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그에 따른 묘사는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확인된다(경향신문1994/07/12, 4). 감정의 표현과 시대의 트렌드를 중시하는 성향으로 인해,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서 선택된 직업은 그 해당 세계가 지니는 전문성의 영역을 드러내는 설정이기보다는 인물의 사회적 지위나 대외적 이미지를 보여 주는 설정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다(경향신문1992/12/16, 14 ; 한겨레1994/03/20, 10).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와 전문직 드라마는 점차 그 영역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트렌디 드라마의 생성과 흐름 속에서 전문직 드라마의 존재 가능성이 이식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전문직 분야를 드라마 서사에 수용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2. 이에 1990년대 중반부터 트렌디 드라마와 차별화된 전문직 드라마 양식이 생성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드라마가 새로운 각광을 받는 분기된 흐름이 생겨났다(동아일보 1993/10/19, 21). 이렇게 분기된 전문직 드라마 장르에서는 소재로 선택된 직업 세계의 전문성을 서사의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해당 분야의 깊이에 더욱 천착하려는 성향이 더욱 우세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문직 드라마는 2000년대 이후부터 그 가치와 유용성을 폭넓게 인정받기에 이르렀다(이원 2012, 68-75).
〈온에어〉 역시 직업 세계의 전문성을 전경화하려는 제작 성향과 시대적 추세에 적극적으로 응한 작품 가운데 하나였으며, 여타의 작품과 차별적으로 드라마 제작 과정을 서사의 전면에 배치하여 방송국과 연예계를 전문적으로 관찰하는 파격을 단행한 경우였다. 이러한 〈온에어〉의 위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온에어〉는 직업 세계의 전문성을 전경화하려는 징후를 통해 기존 드라마 문법인 트렌디 드라마로부터 이탈하려는 징후를 내보였고(분리, Separation), 드라마의 제작 과정을 서사의 전면에 배치하면서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을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했으며(전이, Liminality), 이러한 과정이 담보하는 파격을 통해서 드라마 제작 규범(문법)의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그 규범이 느슨한 국면을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통합, Incorporation), 리미널리티가 가리키는 문턱의 국면을 드라마 작품을 통해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온에어〉는 기존의 장르 규범에서 새로운 장르 규범으로 이행하는 ‘문턱’의 상태를 솔직하게 노출한 작품이었다(아놀드 반 제넵 2022).
이에 따라 〈온에어〉는 첫 회부터 시상식 풍경을 제시하면서, 방송국과 연예계의 유착 관계를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각 회 차마다 실제 방송국 회의실에서 오가는 편성 논의, 제작비 확보를 위한 광고주 설득, 촬영 일정을 둘러싼 긴박한 조율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매니지먼트 회사와 연예인의 관계, 방송국과 제작 자본의 역학 관계, 각종 비리와 관습의 폐해 등까지 다루고자 하였다.
특히 촬영 현장의 세부 묘사는 ‘현장성의 극대화’라는 효과를 창출하였다. 카메라 셔터가 연이어 터지고 조명과 세트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배우와 스태프가 긴박하게 호흡을 맞추는 광경은, 사실상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장성을 부여하였다. 〈온에어〉에서는 이러한 방송과 드라마 관련 정보들이 〈티켓 투 더 문〉이라는 극중극의 형태로 제시되는 가상(삽입) 드라마(서사)와 교차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 한 편이 담보하는 내적 오락성뿐만 아니라 외적 관련성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도록 종용한다.
이러한 일련의 장치와 장면들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단순한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산업적 집합체이고 노동의 결과물라는 점을 암시적으로 시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3 실제 방송 종사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을 투영된 것으로 인식했으며,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미디어 산업의 내막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온에어〉는 전문직 드라마의 미학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며,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형성한 사례라 할 것이다.
2. 직업적인 권위 의식과 분야별 갈등의 구조
전문직 드라마는 흔히 직업 세계에서 발생하는 권위와 자율성의 충돌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온에어〉에서도 방송국 PD(감독), 드라마 작가, 연예인(배우), 매니저(기획사 대표)가 개입된 상호 이해관계와 권위의 역학 관계 그리고 역할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을 구조화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방송과 드라마라는 제작 콘텐츠를 중심으로 서로 대립하고 상호 협력하는 위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PD 이경민은 전체 제작을 총괄하는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만, 작가 서영은은 대본 창작이야말로 드라마의 핵심 이라 주장하며 연출자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
〈온에어〉에서는 연예인은 쉽게 탄생하지만 배우는 좀처럼 탄생할 수 없는 기본적인 요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배우의 연기가 중시되지 않고 배우의 인기가 중시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차적 요인은 배우가 아닌 스타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고, 배우가 되지 못하고 상업용 연예인이 될 수밖에 없도록 추동하는 기획사의 문제에서도 그다음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적 현상 이면에는 소위 말하는 스타 시스템이 도사리고 있다. 연예인을 소비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그 소비 대상을 시스템을 이용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양성하여, 그 양성된 결과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으로서 스타 시스템이 한국 연예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스타 시스템은 방송사, (외주)제작사, 매니지먼트 기획사의 이권과 권력이 타협하여 인정된 막강한 운영 체제이기도 하다(박종렬 2010, 80-83).
〈온에어〉는 방송사와 제작사 그리고 매니지먼트 기획사 사이의 알력과 협력을 보여 줌으로써, 방송과 연예계의 실상을 드러내고 모순된 체제를 인정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민요정’으로 설정된 오승아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녀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배우로 소속사와 갈등을 빚을 뿐만 아니라 제작사나 관계자 심지어는 시청자(팬)와도 충돌을 벌이곤 하는 설정이 배우가 되기보다는 스타가 되도록 양성된 시스템 때문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풍경은 배우가 아니라 스타가 되어,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아닌 흥행성이나 시청률을 우선시해야 하는 풍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기획사 대표 진상우(혹은 장기준)는 자본과 계약 논리를 내세워 제작에 관여하면서 또 다른 권력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 제작을 담당하는 외주 제작사 그리고 인적 자원을 담보한 연예 기획사의 삼분 구도에 인기를 권력화한 스타의 지분 에 개입되는 4분 구도의 상황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박은희 외 2007, 80-82).
이처럼 자본가(방송국)-제작자(외주 제작사)-참여자(스타)-관리자(연예 기획사)로 이루어진 사분 구도는 방송 과정과 드라마 제작을 전문 분야로 삼는 세계에서 생성될 수 있는 긴장 구조를 전문직 드라마의 서사로 재창출한 결과이다. 동시에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역학 관계를 보여 준 입증 사례라고 하겠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갈등 축과 역학 관계는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직업적 정체성과 전문가적 권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립과 갈등 구조는 전문직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독특한 긴장감에 해당하며, 동시에 직업 세계의 복잡성을 현실감 있게 드러내는 장르상 고유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3. 연예 산업계의 명암과 투자 자본의 양면성
〈온에어〉는 드라마 제작이 단순히 창작자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계약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 역시 폭넓게 인정한 작품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계약 조건, 투자금, 시청률 보장 여부 등을 언급하는데, 이러한 조건과 그에 따른 제작 환경은 작품 전개의 중요한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령 〈온에어〉에서 제작하는 작품 〈티켓 투 더 문〉의 첫 방송 시청률이 높게 나오자 제작진과 관련자들이 모두 희색을 띠며 기뻐했지만, 곧 시청률이 저하되고 경쟁 드라마의 시청률이 상승하자 난색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온에어〉에는 배우와 소속사 간의 계약 갈등, 방송국과 제작사 사이의 이익 배분 협상, 해외 촬영을 둘러싼 제작비 논란 등이 서사적 설정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들은 실제 방송 산업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결과여서,방송계와 연예계의 실상을 노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오승아가 루머와 스캔들에 휘말리는 장면은 연예 산업의 계약 구조가 스타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규율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녀는 스타이지만 동시에 상품으로서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획사와 언론 그리고 방송국 역시 그녀의 이미지 유지(보존)에 직접 개입한다. 이처럼 스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도와 계약이 삶을 통제하는 구조는 전문직 드라마의 산업적 리얼리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Ⅴ. 〈온에어〉에서 선취한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적 요소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가 개척하고 개발한 연애와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 구조를 계승하되, 감정의 발생 배경에서 개입되는 사회 구조나 제도의 맥락 역시 강조하는 변화를 추구했다. 등장인물의 감정은 개인의 사적 정념으로만 소비되지 않으며, 공적 상황이나 공동체적 윤리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할 무엇으로 인정된다. 감정은 타인 혹은 집단과의 관계 안에서 실현되기에, 그러한 감정 발생과 소통의 정당성은 타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정동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와 구별된다.
한국 드라마의 포스트 트렌디 성향은 i) 감각적 미학의 강화와 그에 대한 사회적 회의/불온시의 병존(임미주 2022, 163-169), ii) 로맨스의 ‘소비 판타지’ 성향에서 ‘자기 관리’ 혹은 ‘전문성’ 문법으로의 이동(Yoshida 2011), iii) 전문직 직업 세계의 전경화(송치혁 2025, 151-171), iv) 장르 혼종의 지속이라는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박장순 2008, 53-54). 특히 트렌디 이후 국면에서 감각·회의·계층적 자기관리 욕망이 뒤엉킨 장이 형성된다는 논의는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과 맞물린 문화적 형식으로 파악하게 한다.
1. 메타 서사성의 성취와 자기 반영성의 선취
〈온에어〉는 텔레비전 드라마 작품 속에서 또 다른 텔레비전 드라마가 기획·제작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방식을 통해 메타 서사적 형식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남녀의 연애 사연이나 스타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서사를 탈피하여, 텔레비전 드라마가 기획·구상·준비·제작·송출되는 전 과정 자체를 서사의 주제로 삼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소재로 삼으면서 생겨나는 자기 반영성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주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힐 수 있다. 허구의 산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자기 반영성을 통해 예술(드라마)의 존재 이유가 허구의 생성에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자기 반영성 역시 이러한 허구적 성향을 통해 텔레비전 드라마가 산업적·사회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도록 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성희 2022, 231-239).
〈온에어〉가 자기 반영성을 발휘하는 순간,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관람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이면적 사고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온에어〉에서 연출자, 극작가, 연예인, 매니저 그리고 방송국, 광고주 등이 목을 매는 것은 시청률인데, 그 시청률이 실은 현실에서 시청자의 교묘한 선택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시청률의 주체가 되어 한 작품의 생사(기획, 구상, 제작, 연습, 방영,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관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시청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식적 충격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일련의 충격은 그동안 메타시네마가 견지했던 매체의 허구성과 시각적 거리감에 대한 인식을 이끌어내고 영상(매체) 스스로 자기 반영 적 장치를 통해 제작·생산·변형·수용 과정을 서사를 통해 드러내도록 유도함으로써, 영상과 매체를 이루는 조건과 형식에 대해 생각하도록 종용하는 기능을 창출한다(박매화 외 2025, 173-174). 〈온에어〉 역시 이러한 인식적 충격을 가하기 위하여 메타 서사에 천착했고, 이러한 형식적 천착은 트렌디 드라마의 문법에 균열을 가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2. 집단의 구조적 맥락과 제도적 실상의 접점
〈온에어〉에서 방송국, 기획사, 제작사와 같은 집단적 구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본질적 요소로 제공하는 일종의 기호이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이 직면하는 갈등은 개인적 사랑이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조건과 구조적 체제에 의해 발생한다.
이러한 제도에 대한 관찰 혹은 제도 구현의 리얼리티는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가 지향하는 사회 구조적 맥락의 반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적 선택은 궁극적으로 그 개인만의 의지나 판단의 결과만은 아니다. 그 개인이 속한 집단, 단체, 사회 혹은 소속에서 해당 개인과의 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일종의 합의된 선택이며 공유된 자율인 셈이다. 그렇다면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가 집단보다 앞세운 개인의 위상과 가치는 다시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에서 재고된다고 할 수 있다.
집단 업무와 연대 책임이라는 문제와 연관될 경우, 개인의 선택보다는 집단의 의견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개인적 가치관이 우세한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에서 타자와 집단 그리고 공유와 연대의 문제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트렌디 드라마가 침윤했던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유도하여, 제작자를 비롯하여 시청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고 반성의 시각을 확보하도록 종용한다. 이러한 역할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가 제도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근원적으로 개인 서사를 사회 구조 속에 위치시키려는 성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3. 스타 이미지의 활용과 인간적 결핍의 접목
트렌디 드라마에서 스타는 주로 소비와 동경의 대상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그들은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대상이었고, 흠모하는 상대였다. 〈온에어〉에서 스타는 다소 다른 존재로 그려진다. 대중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대상이자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이미지는 동일하지만, 스타성의 외적 표출 뒤에 감추어진 내적 고뇌 역시 그려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온에어〉에서는 국민요정 오승아를 화려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인간적 결핍과 불안의 존재로 묘사한다. 그녀는 대중 앞에서는 당당하고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지만, 사적인 공간에서는 외로움과 불안감 그리고 연예 산업의 혹독한 규율에 시달리는 폐쇄적 인물로 존재한다.
이러한 인물 묘사는 인간의 진정한 실체를 주목하고 그 문제점을 서사 내에 용해하려는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목표와 부합한다. 그것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가 인간이 지닌 영웅적 면모가 화려한 일면을 강조하는 문법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내재된 약점과 한계, 고민과 갈등, 불균형과 불안감을 드러내어 인간에 대한 자문을 이어가려는 의도를 강하게 견지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온에어〉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스타 이미지를 단순한 동경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의 결핍과 상처를 드러내어 그 스타를 인간화하는 경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온에어〉는 2000년대 후반 드라마가 보여 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문제의식을 선취적으로 구현한 작품에 해당한다. 메타 서사와 자기반영성을 통해 드라마 제작의 구조와 권력을 성찰하게 하고, 감정의 지연과 억제를 통해 서사적 긴장을 새롭게 구축하며, 집단적 구조와 제도의 실상(리얼리티)을 전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개인의 감정을 사회적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는 작품의 생산력을 생성했다.
또한 스타 이미지를 인간적 결핍과 병치함으로써, 스타를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닌 성찰의 대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양면성이자 상충적 특징은 〈온에어〉가 단순한 트렌디 드라마의 변주가 아니라, 2010년대 이후 한국 드라마가 보여 줄 산업 비판적 리얼리즘과 자기반영적 서사의 선행적 사례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귀중한 사례임을 시사한다.
Ⅵ. 트렌디 드라마와 전문직 드라마,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통합적 의의
1. 장르적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양식적 변주
〈온에어〉는 트렌디 드라마의 계승과 변주, 그리고 새로운 장르 문법의 탐색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1990년대 중반부터 그 조짐을 드러내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전문직 드라마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 감정 구조를 넘어 직업 세계와 산업적 현실을 서사 전면에 배치한 실험적 성격의 사례이기도 하다.
〈온에어〉는 연출가와 방송 작가가 발딛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탐색을 목표로 삼았고, 이에 따라 응당 PD 와 작가 역시 관련 정보와 전문 지식으로 구현해야 할 직업 세계로 재선택될 수밖에 없었다. 〈온에어〉는 나아가 이러한 방송 드라마 제작 현장을 일종의 메타 드라마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들이 제작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티켓 투 더 문〉은 다양한 측면에서 드라마와 연예계의 거울로 작용한다. 메타 드라마는 감정의 객관화를 통해 억제 효과를 강조하는 형식이다. 거울 효과를 통해 텔레비전 드라마란 무엇인가, 혹은 이를 시청하는 행위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온에어〉는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문법을 선험적으로 실험하고 그 기능을 선제적으로 시사하는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세 장르의 중첩 지대에 머물면서, 각 장르의 특성을 균등하게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사례이며 동시에 과도기적 특성뿐만 아니라 한계 역시 가감 없이 노출한 경우라고 하겠다.
미텔(Mittell 2004)의 장르 이론에 따르면, 장르는 언제나 과정(process)에 속하며, 특정 시점의 장르는 안정된 규칙 체계라기보다 변화 중인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한 작품이 장르적 유동성을 지니거나 단일한 장르 개념으로 파악되기 곤란하다는 평가는 그 자체로 예외적 상태를 가리키는 평가가 아니라 장르 변화가 가시화되는 정상적인 국면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2. 개인적 감정의 서사와 집단적 구조의 서사
〈온에어〉가 가진 중요한 미학적 성과는 개인적 감정과 산업적 리얼리티를 병치한 점이다. 서영은과 이경민의 로맨스, 오승아와 장기준의 갈등은 트렌디 드라마의 감정 문법을 충실히 따르지만, 그 감정은 방송 산업의 구조적 압박 속에서 전개된다는 차이를 지닌다. 예컨대 연애 감정의 고조는 단순히 두 인물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청률이나 계약 조건이라는 외적 제약에 의해 방해받는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집단적 구조와 개인 서사의 교차 구조이다. 방송국, 제작사, 기획사라는 집단적 제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삶과 감정을 결정짓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한다.
개인의 감정은 제도와 계약, 시청률과 광고주, 언론과 대중이라는 집단적 조건 속에서 규정된다. 이러한 조건들은 개인의 선택과 감정이 온전히 자율적이지 않고, 사회적 구조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빅터 터너는 기존 사회 구조(structure)가 일시적으로 해체되거나 위계나 규범 혹은 역할이 무력화되는 상황을 ‘반 구조(anti- structure)’로 파악했는데,4 이때의 상황을 중대한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고 창조적 생산이 실험되는 상황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은 〈온에어〉가 기존 멜로드라마나 트렌디 드라마와 분리되고, 나아가서 그러한 장르적 한계 내에 한정되었던 개인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빅터 터너 2005).
이처럼 개인적 욕망과 감정이 제도적 맥락과 충돌하며 전개되는 방식은 전문직 드라마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시선을 동시에 담고 있다. 과거의 트렌디 드라마가 개인적 서사에만 집중했다면, 〈온에어〉는 산업적 현실을 병치함으로써 한국 드라마가 더 이상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 수 없음을 선언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산업화·세계화된 방송 환경 속에서, 드라마 역시 개인의 삶과 제도의 구조를 통합적으로 재현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했음을 반영한다.
3. 스타 이미지의 노출과 주체적 자아의 긴장
트렌디 드라마에서 스타는 소비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을 트렌디 드라마에서 애용하는 흥행의 방식이었고, 제작의 요건이었다. 〈온에어〉는 당대의 스타들이 다수 출연하여 각축하는 서사를 자랑하는 트렌디 드라마 요소를 강하게 함축한 작품이었다(김민영 2025, 9-11).
이러한 거대한 인기와 나약한 내면을 동시에 보여 주는 서사는 트렌디 드라마의 스타 소비적 속성을 전복하거나 적어도 문제화할 수 있었다. 시청자는 스타의 화려한 모습에 매혹되면서도, 동시에 그 뒤에 존재하는 결핍과 상처를 성찰하는 이중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성찰은 2010년대 〈괜찮아 사랑이야〉, 〈나의 아저씨〉 등에서 본격화되는 결핍과 치유의 서사를, 〈온에어〉를 통해 선행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온에어〉는 스타를 ‘소비’하는 대상에서 ‘성찰’의 대상으로 변환시키는 이행 과정을 보여 주며,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정서적 기반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계하여 〈온에어〉에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사건까지 수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스타 오승아와 그녀의 추락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일련의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연예인과 스폰서의 문제를 다룬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오승아와 장기준이 직면한 치명적인 사건(위기)은 섹스 스캔들이다. 〈온에어〉는 ‘O 양 비디오’로 대변되는 당시 섹스 비디오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오승아가 비슷한 사건(허위로 판명)에 휘말리는 에피소드를 과감하게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온에어〉는 현실 사건을 소환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실제 기억을 환기하는 효과를 쟁취할 수 있었다.
O 양 사건과 〈온에어〉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쪽은 현실에서 벌어진 스캔들이고, 다른 한쪽은 허구적 서사임에도, 두 경우 모두 스타 이미지와 사생활의 충돌(윤태진 2011, 32-35), 여성 스타의 취약성(인물과사상 2000, 157-159), 언론과 대중의 무책임한 소비(상업적 프레임)(이유현 2002, 30-36 ; 최믿음 외 2017, 99-107), 그리고 연예(방송) 산업의 구조적 폭력성(성 상품화)을(김성천 2020, 25-48)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에어〉는 O 양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 하지 않았음에도, 그 사건이 드러낸 현실과 같은 권력 구조를 은유적으로 재현하는 작품으로 읽힐 수 있다.
결국 O 양 사건과 〈온에어〉를 교차해 읽는 작업은 한국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연예 산업 내부의 권력 구조와 모순을 드러내는 문화적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온에어〉는 화려한 트렌디 드라마의 외양을 지니면서도, 실제 연예계의 어두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한 전문직 드라마의 시선을 확보하면서, O 양 사건이 현실에서 폭로한 문제를 드라마적 형식으로 은유하는 과도기적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4. 전문인으로서 자의식과 인간으로서 성장통
〈온에어〉는 직무를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갈등을 조성하고 그러한 갈등을 통해 인물 각자가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의식을 형성하고 변화시키고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일정한 목표를 둔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출연 인물들은 자기 업무와 자신의 전문 분야에 상응하는 독자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가령 드라마 작가 서영은은 시청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무명 작가 시절 어려웠던 자신의 입지를 변화시킨 일등 공신이 자신의 드라마가 가진 대중성, 그러니까 시청자들의 선호도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서영은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예술 작품이기보다는 오락용 상품이라는 통념을 고수하고 시청자의 구미와 눈높이에 맞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서영은의 생각은 김은숙이 각종 매체와 밝힌 ‘엔터테인먼트 작가’로서의 생각과 상당 부분 부합된다 (방송작가 2011/02/, 5).
하지만 신임 PD 이경민은 다른 작품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 기존의 작품은 식상한 문법의 고루한 반복일 따름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 마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성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기존의 문법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작품을 제작할 기회가 찾아왔고, 그것도 시청률과 영향력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발휘하는 서영은 작가와 협업할 기회가 찾아왔다.
두 사람의 처지와 가치관 그리고 창작관은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킨다. 최초에는 서영은이 시청률을 버리지 못했고, 이경민은 진정성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자, 서영은은 자신의 드라마에서 시청률만큼 중요한 가치를 찾아냈고, 이경민은 작품성 못지않게 중요한 시청률의 힘을 절감했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응당 직업적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해야 했고, 그 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서영은은 대본 수정 과정에서 PD 와의 대립을 겪었지만 결국 창작자와 협업자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었고, 이경민은 제작 과정에서의 수많은 위험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위험 상황을 통해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진정한 ‘연출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스타 오승아와 매니저 장기준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그들 역시 연예인과 연예매니지먼트사 사장이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충돌하고 분열하지만, 결과적으로 화합하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여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인식적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었다.
결국 직업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성장 서사는 시청자에게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시청자는 전문적 종사자로서 각종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성장 과정을 보며, 전문직이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과 삶의 목표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확인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성장한다는 것의 진정한 정체가 전문직 드라마가 지니는 고유한 미학적 가치이며, 〈온에어〉가 단순한 트렌디 드라마를 넘어 동시대 드라마의 지평을 확장한 중요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온에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묻힌 PD, 방송작가, 연예인, 기획사 사장, 방송국 종사자와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이면과 아픔을 보여 주고 그 고난을 딛고 성장하는 인물의 내면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전문인으로서의 자의식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 의식을 통합적으로 성취하려는 의도를 지닌다고 하겠다.
5. 장르 전환의 시기와 작품의 과도기적 위상
이상의 분석을 종합하면, 〈온에어〉는 트렌디 드라마의 화려한 도시적 감성과 감정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전문직 드라마의 직업적 갈등과 산업적 리얼리티를 수용하고, 나아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자기 반영성과 제도 비판을 선취한 작품으로, 서로 다른 장르 문법이 완전히 분화되기 이전의 과도기적 국면, 즉 리미널리티(liminality)에 위치한 전환기적 텍스트로 이해될 수 있다.
기존 사회 구조(여기서는 장르 문법)가 일시적으로 해체되었지만 이러한 해체는 그 자체로 혼란이기보다는 새로운 장르적 관계를 모색하는 일종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아놀드 반 제넵 2022), 그 결과 장르적 전이와 통합을 설명할 수 있는 단계를 보여 줄 수 있다. 나아가 기존 트렌디 드라마 문법에 작용하는 반 구조(anti-structure)의 여력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빅터 터너 2005).
더불어 이러한 서사적 실험과 혼합적 특성은 한국 드라마 장르사가 단선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 문법이 교차·융합되는 과정과 흐름을 겪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동시에, 〈온에어〉가 이러한 변환기의 접점에서 과도기적 성향을 자연스럽게 수용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온에어〉에 대한 기존의 시각과 평가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 드라마가 1990년대의 트렌디 드라마에서 출발하여, 2000년대 전문직 드라마를 거쳐, 2010년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진화와 연속적인 변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Ⅶ. 결론 : 장르 전환기 텍스트로서 〈온에어〉의 의의
이 연구는 텔레비전 드라마 〈온에어〉(2008년)를 트렌디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라는 세 장르 문법의 교차점에서 분석하였다. 우선, 〈온에어〉는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가 구축한 장르 문법을 충실히 계승하였다. 다음으로, 〈온에어〉는 방송 제작 현장과 연예 산업의 구조를 서사 전면에 배치하여 전문직 드라마의 성향을 효과적으로 수용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온에어〉는 감정의 절제, 제도적 구조의 전면화, 메타 서사의 도입 등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성향을 선취하였다. 이렇게 선취된 성향은 단순히 트렌디 드라마 문법의 반복이 아니라, 그 문법의 한계에 대한 저항과 전복을 예고한 시도였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할 때, 〈온에어〉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혼종성’과 ‘과도기성’에 찾을 수 있다. 세 장르적 문법이 접촉하여 간섭하고 충돌하며 그 영향력이 상호 교차하며 축조해 낸 독특한 양식은, 한국 드라마가 선형적 진화 아니라 장르적 교차와 융합을 통해 발전해왔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트렌디 드라마적 요소는 여전히 대중적 흡인력을 담보했고, 전문직 드라마적 요소는 리얼리티와 제도적 성찰을 강화했으며,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적 요소는 새로운 감정 양식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따라서 〈온에어〉는 특정 장르에 귀속되지 않는 ‘혼종적 텍스트’로 규정될 수 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드라마 장르사의 전환기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장르의 혼종성은 때로 모호성 과 불안정성을 수반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장르의 갱신과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온에어〉를 2000년대 중후반의 특정 작품으로 한정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의 한류 드라마 연구로 확장될 수 있는 이론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이 연구에서 다룬 장르 혼종성은 플랫폼 중심 제작 환경에서 더욱 가속화되고 구조화된 양상으로 작금에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OTT 환경이 장르를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글로벌 유통과 알고리즘 기반 편성 전략 속에서 유동적으로 조합·변주되는 범주로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장르 혼종성의 강화는 플랫폼 중심 제작 환경이 내포한 구조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OTT 환경에서의 장르 혼합은 창작의 자유를 확장하는 동시에, 시청자 취향 데이터와 글로벌 시장 논리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서사적 실험을 규격화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때 장르 혼종은 미학적 실험이기보다 시장 친화적 전략으로 환원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 연구는 〈온에어〉를 장르 전환기 텍스트로 규정함으로써, 한국 드라마의 장르 혼종성이 단선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산업 환경과 미학적 요구가 충돌하는 리미널한 국면에서 발생한 역사적 실천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OTT 이후 한류 드라마 연구에서 장르 혼합을 단순한 성공 공식이나 트렌드로 환원하지 않고, 플랫폼 권력과 창작 주체의 긴장 관계, 그리고 그 극복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