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조선후기 碩齋 尹行恁(1762~1801)의 經世的 입장과 정치 路程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부산대학교 한문학과
발행: 2024년 1월 · 87권 0호 · pp. 1-38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24.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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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윤행임은 21세의 젊은 나이에 정치생활을 시작하여 1801년 유배되어 賜死되는 19년간의 정치 인생을 걸어왔다. 정조와의 만남은 그의 정치적 노선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얼소통’과 ‘내시노비혁파’ 문제에 대해서는 정조의 탕평적 입장을 대변하는 데 힘썼고, 서학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정조가 가까이했던 신서파 남인 세력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비교적 온건한 대응과 교화적 정책을 택했다. ‘유성한·윤구종 사건’·‘책 궤짝 사건’·‘신유사옥’에 대한 정치적 입장과 대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三學士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尹集(1606~1637)의 후손인 윤행임의 정치적 목적은 오로지 국가와 왕에 대한 忠誠心으로 일관하였다. 이것이 벽파 호론의 논리를 수용하면서 낙론의 시파적 정치 행동을 펼친 윤행임의 사상철학과 정치 성향이 구별되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고는 석재 윤행임의 경세적 입장과 정치 路程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동안 그의 당색은 주로 낙론 중심의 시파나 호론 중심의 벽파로 보았지만, 그는 어느 당여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정조와 그 정책을 철저히 수행하고 계승하는 데 힘을 기울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