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경제참모본부의 식민지적 유산과 제1공화국 기획처의 탄생

박성진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발행: 2016년 1월 · 71권 0호 · pp. 29-67

DOI: https://doi.org/10.33334/sieas.2016.35.2.29

본문 보기

초록

제1차 대전 이후 1920-30년대에 일본과 만주국에서 등장했던 경제참모 본부는 미래 총력전의 핵심 기관으로 활동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그러한 움직임이 등장했는데, 1936년 8월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는 경제참모본부의 역할과 필요성을 일찍이 인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937년 7월 중일전쟁의 발발과 확전은 미나미 지로의 구상에 상당한 굴절과 변형을 가져왔다.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 기구로는 최초로 ‘기획’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획부가 설치되었지만, 국가총동원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기획부는 일본 본토 기획원의 하위 부서에 머물렀다. 1945년 8월 해방과 이후 미군정의 경제기획기구에서는 미국식 기획 제도가 접목되었다. 이후 헌법과 정부 조직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경제문제에 관한 계획을 하는 강력한 관청”을 설립한다는 데 대체적인 합의를 이루었고, 그 결과 7월 제헌헌법과 정부조직법을 통해 계획경제의 핵심 기관으로 기획처가 탄생했다. 기획처는 경제 문제 전반에 대한 종합적 조사, 예산 편성의 심사와 사무, 부처간 정책 조정 등 경제참모본부 본연의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만주국 관료 경험을 가지고 있던 정현준 비서 실장은 기획처의 운영 방향 설정과 과장급 인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1949년 전반기 급변하는 정치적 사건들 속에서 기획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자유경제론을 주장하던 재무부와 상공부에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1950년 6월 한국전쟁의 발발은 기획처와 계획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결국 제1공화국에서 경제참모본부는 애초의 구상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사라졌지만 1961년 7월 신설된 경제기획원은 한국형 경제참모본부가 재탄생한 모델이었다. 군대식 위계질서, 전쟁 작전 수립을 방불케 하는 기획성, 고지 점령과 같은 목표지향성과 신속성, 전방위적 협력이 강조되는 합동성,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지식의 전문성 등 경제기획원에서 구현된 경제참모본부의 본연의 기능이 바로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끈 중요한 요인이었다.
키워드: 한국경제참모본부총력전만주국식민지 유산기획원기획처